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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시적 언어로 표현된 깊은 사유의 시간들 - 손연자 빨래하는 날 글 그리그리나무 꿈속의 메렝게 오빠의 친구 어느 일요일 권력의 색 내 언어의 빛깔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부록 도미니카공화국 소개 라틴 춤의 기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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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렴, 아나 로사.”/ 엄마가 말했다. / “강을 한번 보렴.” / 난 보았다. 엄마의 갈색 무릎 주위와 물집이 잡힌 붉은 손가락 사이로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엄마의 살갗에 젖은 키스를 남겨 두고서. / “이 물은 다시는 이 길로 지나가지 않을 거란다. 바다로 흘러갈 거야. 이 물은 파도와 만나 거품을 일으키고 물고기들과 헤엄을 치다가 때에 따라 살며시 혹은 거칠게 배를 쓰다듬으며 지날 거야. 내 옆에서 이렇게 재빨리 빠져나가는 이 물은 세상을 돌고 돌 거야. 도미니카공화국에서도, 내 곁에서도 멀리 떠나가서. 하지만 항상 같은 하늘, 같은 태양 아래서 흐르겠지.” / 엄마가 말했다. / 난 엄마가 한 번에 그렇게 많은 말을 하는 걸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가까이서 강을 들여다보았지만 난 엄마가 그 안에서 보았던 모든 것들을 다 볼 수는 없었다. / “네가 바로 이 강물이야, 아나 로사.” / 엄마가 속삭였다. / “하지만 바다를 만나기 위해선 도중에 바위를 부드럽게 흘러 넘어야 한단다. 그러면 네가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어.” / 엄마는 상냥하게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갈색 눈에는 어두운 밤하늘의 조각달처럼 근심이 서려 있었다. ― 〈빨래하는 날〉 중에서
갑자기 집 안에 산들바람이 불어와 오빠의 수첩 표지가 나부끼며 펼쳐졌다. 빈 페이지들은 바람으로 가득 찼고 간절히 글을 기다리는 그 사랑스런 공백들을 내게 보이면서 한 장씩 넘어갔다. ‘그래, 몇 장만 쓰고 찢어 내면 될 거야’라고 난 생각했다. 과리오 오빠는 절대 눈치채지 못하겠지. 난 연필을 들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 그래서 난 글을 썼다. 우선 한 장을 쓰고, 그 다음에 한 장, 또 한 장씩. 내가 사랑하는 이사벨 데 토레스 산과 소수아 해변에 대한 이야기로 다섯 장을 채우고 나서야 연필을 멈추었다. 남자애들에 대해서도, 내 다정한 친구 그리그리나무에 올라가는 일에 대해서도 썼다. (중략) 갑자기 불이 꺼졌다. 또 정전이다. 뭐, 차라리 잘 되었다. 안 그랬으면 쉬지 않고 글을 써댔을 테니까. / 주머니 속에 있는 종이를 만져 보았다. 두세 장만 더 쓰자. 아무도 모를 거야. 난 발가락 끝을 세워 살금살금 들어가서 촛불을 켰다. 식탁에 앉아 촛불 아래서 글을 썼다. 한 장씩 쓰다 보니 결국 오빠의 수첩에는 더 이상 빈 공간이 남지 않게 되어 버렸다. / 그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나 로사, 거기 있니?” / 엄마였다. 난 발딱 일어서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첩을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 〈글〉 중에서 어느 일요일, 하늘까지 치솟는 / 푸른 금빛 파도와 함께 / 폭풍이 불어닥쳤어요. / 코코넛나무가 세차게 흔들렸죠. / 거짓을 속삭이는 / 유령 구름과 춤을 추듯이. // 그리고 비가 내렸어요. / 모래 위에 그려진 날카롭고 창백한 말들이 / 내 인생을 바꿔 버렸죠. / 별도, 달도, / 노래도, 이야기도, / 나를 찾아내지도 숨겨 주지도 못해요. / 오빠도 언니도 / 엄마도 아빠도 / 나를 붙들지도 진정시키지도 못해요. // 비가 하는 말들은 터널 속으로 떨어졌어요. / 내가 누구인지 / 그 진실에 어두운 구멍을 남겨 두고서. / 난 누구일까? / 이 일요일의 폭풍이 다 말해 버리기 전에 / 제발 나에게 알려 주세요.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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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공화국의 어느 해변가 마을에 사는 열두 살 소녀 아나 로사. 막내인 아나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아나는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그리그리나무 위에 올라가 마을을 내려다보며 글을 쓰는 시간을 가장 사랑한다. 아나의 꿈은 바로 작가가 되는 것. 그러나 폭압적인 정권의 지배를 받는 이곳에서 아나는 자신의 꿈을 입 밖에 내는 일조차 조심스럽다.
하지만 아나는 포기하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와 동화를 붙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너무 가난한 탓에 글을 쓸 만한 노트나 공책 하나를 갖는 것도 어렵다. 기껏해야 포장지나 종이봉투에 끼적이는 것이 전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에 큰오빠가 일할 때 쓰는 수첩을 몰래 숨겼다가 집 안이 발칵 뒤집히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나의 머릿속에서 떠다니던 말들이 멈추고 오빠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앙헬의 다정스런 눈빛과 미소로 가득 찬다.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된 아나. 첫사랑의 설렘도 잠시, 출생의 비밀을 깨닫고 혼란스러워 하지만 가족들의 애정 어린 보살핌 속에 잘 이겨낸다. 그러던 중, 정부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 마을을 팔아, 호텔을 짓겠다는 정책을 발표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에 반발하며 과리오 오빠를 내세워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땅은 이미 팔린 상황. 결국 아나의 열세 번째 생일 날 과리오 오빠의 주도하에 시위가 벌어지고, 아나는 눈앞에서 참담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마을을 지켜낼 수 있을까? 아나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작가의 꿈을 키워 나갈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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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소년문학상 수상
국제독서협회 ‘주목할 만한 책’ 미국도서관협회 ‘주목할 만한 책’ 북리스트 ‘올해의 책’ 카리브 해의 초록 바다보다 넓고, 강렬한 태양보다 뜨거운 사랑을 먹고 자란 열두 살 소녀의 꿈과 희망 오늘의 청소년 문학 시리즈 일곱 번째 책. 초록 바다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나라 도미니카공화국의 어느 해변가 마을을 배경으로, 작가를 꿈꾸는 열두 살 소녀의 성장기가 펼쳐진다. 각 장 서두에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감수성이 묻어나는 시가 실려 있으며(총 8편), 주인공 아나 로사와 그 가족들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이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져 있다. 비록 글을 쓸 공책 하나 가질 수 없는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지만,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꿈을 키워 나가는 아나와, 그 꿈을 응원하고 지켜주려는 가족들의 모습은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서로를 보듬어 나가는 끈끈한 가족애와,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꿈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 소설은 도미니카의 이국적인 풍광과 어우러져 독자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책은 어른들에게는 설레던 시절을 추억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청소년들에게는 초록빛 꿈의 소중함을, 미래를 찾는 사람에게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부록으로 이 소설의 배경과 분위기를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도미니카공화국에 대한 정보를 새롭게 추가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은빛 언어가 하늘에서 쏟아진다. 파란 언어가 나란히 떠다닌다…….” 사춘기 소녀의 감성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시와 이야기들 아나 로사의 머릿속에는 수백 가지 말들이 떠다닌다. 은빛 파도와 초록 바다, 파란 하늘과도 같은 갖가지 빛깔의 단어들을 아나는 한 편의 시와 이야기로 담아낸다. 아나 로사의 꿈은 바로‘작가’가 되는 것. 하지만 이곳에서 대통령이 아닌 누군가가 작가가 되는 일은 드물다. 정부가 언론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정부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써내는 용감한 작가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다. 아나는 소중히 간직해 온 꿈을 엄마에게 꺼내놓지만, 엄마조차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나의 취미는 그리그리나무 위에 올라가 글을 쓰는 것이다. 언니인 앙헬라는 나무 타는 일 따윈 숙녀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꼬집지만, 아나에게 이곳은 더없이 안락한 장소다. 나무에 올라서면 온 세상은 아나의 발아래 놓인다. 그리그리나무의 여왕이 되어, 발밑에 펼쳐진 도미니카의 아름다운 풍광을 내려다보는 장면은 한 폭의 그림을 들여다보는 듯 섬세한 묘사로 그려져 있다. 이 책에는 각 장을 시작하는 첫 부분마다 아나 로사가 자기만의 언어로 쏟아낸 시가 실려 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아나 로사의 감정을 대변하는 이 시들은 사춘기 소녀의 수줍고 예민한 떨림을 느끼게 한다. 웃음과 감동으로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전하며, 끈끈한 가족애를 보여 주는 소설 누구나 꿈꿀 수 있지만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또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아나 로사가 가난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사랑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아나에게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현명하게 살림을 꾸려 나가는 엄마, 온종일 현관에 앉아 럼주를 마시는 일이 전부인 아빠, 하루에 두 곳에서 일을 하며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큰오빠 과리오, 해변에서 관광객들에게 의자를 내주는 일을 하는 둘째 오빠 로베르토, 예쁜 앙헬라 언니가 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소설 속에서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속 깊은 사랑을 보여 준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과리오 오빠가 일할 때 꼭 필요한 수첩을 몰래 훔쳐 낸 아나. 이 때문에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한바탕 소란을 겪지만 엄마의 현명한 대처와 아빠의 배려, 과리오 오빠의 말 한마디는 죄책감에 맘 졸이는 아나의 마음을 녹아내리게 한다. 아빠는 춤을 잘 추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아나를 위해 날렵한 춤꾼으로 변신한다. 리듬감이 없는 아나를 위해 바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해변가에서 파도의 출렁임을 느끼게 하여 결국 춤을 추게 만드는 애끓는 부정(父情)을 보인다. “그들은 다음번에 무슨 짓을 할 것인가?”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 아픈 비극 아나와 가족들에게도 시련이 닥친다. 이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없애고, 호텔을 짓게 하겠다는 정부의 일방적인 발표가 있었던 것. 선조 때부터 터 잡아 온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 갑작스레 불어 닥친 개발의 바람은 청천벽력과 다름없는 소식이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과리오 오빠가 앞장서게 되고, 아나는 오빠를 도와 마을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신문사에 보낼 원고의 초고를 쓴다. 이들은 폭력 대신 말의 힘으로 정부관계자들과 대적하려 하지만, 공사는 예정대로 강행되고, 결국 아나의 열세 번째 생일날 시위가 벌어진다. 가족을, 집을, 마을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더 많은 부를 가져다줄 거라는 이유로 오랜 삶의 터전을 불도저로 짓밟고 서슴없이 폭력을 일삼는 정부관계자들의 모습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개발이라는 도식뿐 아니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대화가 아닌 폭력을 동원해 힘없는 이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행태 또한 마찬가지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폭파 위기에 처한 구럼비 바위를 지키려는 강정마을 사람들, 4대강 사업을 사력을 다해 저지하던 환경단체들……. 소설 속 아나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수백 년 동안 보존되어 온 자연환경과 역사가 깃든 마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과 겹쳐지며,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을 돌아보게 한다. 꿈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난의 순간들을 이겨내야 한다. 견디기 힘든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그 꿈을 지워버릴지, 아니면 당당히 마주할 것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아나의 이야기는 큰 힘이 된다. 우리는 아나와 그 가족에게 닥친 비극을 엿보며 삶을 긍정하고 그 고통을 담담이 받아들이는 자세를 배우게 된다. 아픔을 껴안고 견뎌낸다면, 그 기억이 먼 훗날 밤하늘을 수놓는 별처럼 빛나는 날들을 만들어 주리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