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불씨
2. 감골 소녀 3. 꽃샘추위 4. 경성 5. 섭섭이 6. 유코 할머니 7. 유성기 8. 겁탈 9. 도망 10. 베레모 11. 파랑새 극단 12. 신인 가수 선발 대회 작가의 말 |
김미승의 다른 상품
|
“선생님, 신식 가요 많이 아세요? 가요 좀 가르쳐 주세요, 네?”
필순의 가슴은 수많은 질문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 날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워도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간신히 잠이 들면 꿈속에서 자신이 신여성이 되어 뾰족구두를 신고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걷는 꿈을 꾸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짓말처럼 발목이 아팠다. --- p.28 다른 건 몰라도 필순은 일본 순사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벌벌 떠는 일본 순사가 무섭지 않은 날이 온다면……. 그런 날이 올 수 있다면, 조선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필순은 마른 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빼꼼 세상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생각의 잎이 자라나고 있었다. --- p.29 필순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유성기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나팔꽃 한 송이가 어두운 상자 속을 막 뚫고 나와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필순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유성기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직 감동에 빠지기엔 일러. 진짜는 소리야. 한번 들어 볼래?” 섭섭은 중요한 비밀이라도 가르쳐 주는 양 낮게 속삭였다. “그래도 될까? 마님이 아시면…….”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필순의 눈은 이미 상자 위에 얹혀 있는 검은색 원형 판에 꽂혀 있었다. --- p.97 ‘괜찮아, 잘될 거야.’ 필순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섭섭을 구하자면 용기를 내야 했다. 여덟 살에 아버지가 권번에 팔아 버렸다는 아이, 권번에서도 쫓겨나 일본인 집에서 식모살이를 해야 했던 아이, 안주인에게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울지 않던 아이, 겁도 없이 안주인의 유성기를 틀어 놓고 춤을 추며 노래하던 아이, 신식 가요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아이,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도와야 할 아이다. 더구나 섭섭은 필순이 낯선 경성에 와 처음으로 마음을 나눈 동무다. 동무가 불행의 나락으로 빠질 걸 알면서도 모른 체할 순 없다. --- p.126 나는 놀랐습니다. ‘저고리 시스터즈’가 결성된 1930년대 후반 일제 강점기는 내 머릿속에 어둡고 아픈 시대로만 기억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우리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희생을 당했습니다. 많은 소년들이 징용에 끌려가고, 소녀들은 군수업체 여공이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정말 안타깝고 슬픈 역사지요.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꿈을 꾸고, 그 꿈에 도전하고, 엎어지고, 또 일어나 도전하면서 어두운 시대를 건너온, 용기 있는 청소년들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말」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