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뿌리에는 가시가 없다·10 뿌리·11 숙임에 대하여·12 비밀번호 관리자·13 섭리·14 존재하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15 벽·16 꽃샘추위와 봄바람 이유·17 바라보는 곳에 희망이 있다·18 벼락·19 하늘이 그린 수채화·20 꼭짓점·21 해방·22 악 소리·23 꿈속에서 거짓과 싸우다·24 까마귀 소리·25 본향·26 정신의 힘·28 이식 당한 단풍나무·29 희망 없는 황금시간·30 잠결의 시·31 시간 꽃·32 부드러운 길·33 낙엽길·34 한겨울 파도·35 하늘 산책·36 2부 학교 가는 길·38 뜨거운 밥상·39 서산버스정류장·40 폐차·41 걱정만 해댄다면·42 친하지 않아서·43 퉁퉁한 구박·44 아직은 다행이다·45 세수 사랑·46 대화 상대를 찾아서·47 초가을·48 제비·49 고독한 행복·50 잘 왔다·51 군자 단풍·52 잃어버린 왁새·53 코로나 정국·54 햇살 튀는 초겨울 아침·55 팽이는 쉬고 싶다·56 아득한 굴밭·57 지게·58 딱새와 백미러·59 선녀의 무지개·60 꿈속의 시험·61 화나 이글스·62 사랑 사과·63 차단된 기다림·64 돌아가신 아버지·65 고향은·66 빗방울·67 3부 비겁자들·70 식민사관·71 역사 비극·72 역사는 혼이다·75 어메이징 그레이스(낙원 조선)·76 환단고기·78 단군조선 흔적·81 한 뿌리·82 기자조선과 위만조선·84 환함에 대하여·85 개천절·86 제사장의 나라·88 태극기·89 정안수·90 진달래꽃·91 효孝·92 마니산 참성단·93 찔레꽃·94 함께 가는 길·95 국사 독립·96 해설 | 권온_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쓰는 삶, 사람, 사랑·98 |
志山
|
곡괭이로 가시나무를 캐내면서 알았다
뿌리에는 가시가 없다는 것을 밑동에서 가지 끝까지 촘촘하게 둘러싼 가시 건드리기라도 하면 단번에 푹 찔러 피 철철 흘리게 할 것처럼 날카로운 방어 태세를 취하며 야금야금 땅굴 파듯 자드락길 밑으로 밭둑 밑으로 뿌리의 길을 만들어 고추밭까지 영역을 넓혀온 나무 그런데 이 지독한 가시나무조차 뿌리에는 날카로움이 전혀 없다 사람의 근본도 그렇지 않을까 ---「뿌리에는 가시가 없다」중에서 비틀거리듯 뻗어나간 뿌리를 본다 돌을 만나면 감싸듯 돌아나간 뿌리를 본다 굴곡 많은 인생살이처럼 뿌리 중에 고속도로처럼 쭉 뻗은 것은 단 한 가닥도 없다 눈 비 바람을 견뎌내며 다른 나무들의 가지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 뒤틀리듯 뻗은 가지들 못지않게 캄캄한 곳에서 힘겨운 생을 이어가는 뿌리의 모습이 어쩌면 깊은 한숨 몰아쉬는 어느 인생인가도 싶다 ---「뿌리」중에서 푹 숙였다가 꼿꼿해지길 반복하는 대나무 굴종과 허세의 모습을 반복하는 광대 같다 하지만 대나무는 굽힐 수 있는 만큼 굽혀댄 것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텨 휘어졌던 것 세찬 바람 앞에 자발적으로 조아린 것이 아니라 팽팽한 곡선으로 자존심을 유지했던 것 ---「숙임에 대하여」중에서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려는데 다섯 번이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암호가 올바르지 않다고 인터넷 세상 속의 나와 대면하지 못하게 했다 인터넷 세상의 내가 또 다른 나의 일부분이듯 이 세상의 나는 다른 세상의 나의 일부분일까 오십여 년 동안 마음속을 들락거리며 근원적인 나를 만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나 결계라도 쳐놓은 것인지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는 것인지 아직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만나지 못했다 ---「비밀번호 관리자」중에서 성격 급하게 수시로 깔짝거려도 도무지 열리지 않는 자물통이 있다 아무리 소리쳐 부르고 쾅쾅 두드려대도 대답 없고 꿈쩍 안 하는 봉인된 문이 있다 어느 순간 스스로 자물통이 풀리고 삐걱대는 소리조차 없이 활짝 열리는 운명의 문 그런 현상을 혹자는 세월의 답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하게는 하늘의 열쇠다 문의 주인에게만 적정한 때 제공되는 ---「섭리」중에서 꽃처럼 화려한 인생이라 잘난 척 마라 붉은 장미꽃이 초록 잎사귀 없이 돋보이더냐 독한 가시 선인장이라 비방하지 마라 순한 꽃 피워내는 여린 속을 통찰해 보았는가 울퉁불퉁 모과 못생겼다 흉보지 마라 얼마나 그윽한 행복향기인가 존재하는 것에는 하늘의 뜻이 있다 함부로 내뱉어 상처를 주지 마라 ---「존재하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중에서 눈만 뜨면 보이는 게 벽이고 벽 속에서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참으로 허물기 어려운 벽이 하나 있다 마음이란 철벽 한순간에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죽음의 손아귀조차 허물지 못하는 독기 휘몰아치는 태풍도 닿지 않고 쫙쫙 쏟아지는 폭우도 적시지 못하고 색깔마저도 수시로 바뀌어 형용하기 어려운 쌓고 쌓아 두께도 넓이도 높이도 알 수 없는 마음이란 벽 겹겹으로 칭칭 동여맨 어둠침침한 벽 속에서 오늘도 온종일 웅크린 마음 하나 ---「벽」중에서 꽃샘추위가 해마다 반복되는 까닭을 이제야 알았다 한겨울에도 버티던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세찬 바람에 펄럭펄럭 떨어지는 걸 보고 알았다 작년 잎사귀를 떨어뜨려 새싹 돋을 자리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왜 해마다 사월이면 바람이 그리도 잦은지 이제야 알았다 동백 꽃봉오리를 엄지와 검지로 살살 쓰다듬다가 알았다 문지를수록 한 잎 한 잎 피는 꽃잎을 보면서 사월 바람이 꽃과 새싹 틔우는 도우미라는 것을 ---「꽃샘추위와 봄바람 이유」중에서 인생살이 갑갑하여 대문 밖으로 나왔다 의미 없이 그저 멍하니 바라본 무논에는 백로 한 쌍이 유유히 먹이를 찾고 있다 백로의 하얀색에 초점이 머무는 동안 마음이 잔잔해지고 어느 순간 개구리 소리 들려온다 실금처럼 살랑대는 무논의 실바람도 보인다 써레질해놓은 저 논에는 조만간 모내기가 시작되겠구나 하는 희망 심기 감각이 돌기 시작한다 풍경에 심취될수록 끝없이 추락하던 마음의 우물 속으로 빛줄기가 스며들고 있다 ---「바라보는 곳에 희망이 있다」중에서 벼락이 쫓아온다 흠칫흠칫 종종걸음치는데도 째려보듯 날카롭게 번쩍거리며 바로 옆과 앞과 뒤에 확확 떨어진다 어린 시절 칠월의 그 여느 날처럼 고함치며 화를 내듯 천둥까지 쳐대면서 정수리에 꽂기라도 할 것처럼 성큼성큼 쫓아온다 죄를 지으면 벼락 맞아 죽는다는 말을 자주 듣던 초등학교 시절 벼락이 치면 잘못한 일들이 번쩍 떠올라 화들짝 놀라곤 했는데 저지른 죄들이 첩첩 쌓인 지금은 만성이 되었는지 천진하던 시절 같은 두려움이 아예 없어 차라리 더 괴롭다 ---「벼락」중에서 |
|
강흥수는 2001년 첫 시집 『마지막 불러보는 그대』를 출간하였고 2002년에는 〈한국시〉와 〈공무원문학〉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오늘날까지 20년 이상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한국시 대상, 공무원문학상, 한남문인상 등을 수상하면서 문단 안팎에서 상당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시집 『비밀번호 관리자』는 그가 상재하는 여덟 번째 시집이 된다. 이 글은 시인의 최근 시집에서 14편의 시를 엄선하여 시 세계의 핵심을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강흥수는 이번 시집에서 근본, 근원, 고향, 정신 등을 탐색한다. 또한 그는 시골 출신, 섬 출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순수하고 순박한 방식으로써 드러낸다. 시인이 제공하는 따뜻한 마음은 때로는 뜨거운 마음으로 치솟는다. 이제 감동 가득한 시 세계를 만날 시간이 되었다.
곡괭이로 가시나무를 캐내면서 알았다 뿌리에는 가시가 없다는 것을 밑동에서 가지 끝까지 촘촘하게 둘러싼 가시 건드리기라도 하면 단번에 푹 찔러 피 철철 흘리게 할 것처럼 날카로운 방어 태세를 취하며 야금야금 땅굴 파듯 자드락길 밑으로 밭둑 밑으로 뿌리의 길을 만들어 고추밭까지 영역을 넓혀온 나무 그런데 이 지독한 가시나무조차 뿌리에는 날카로움이 전혀 없다 사람의 근본도 그렇지 않을까 -「뿌리에는 가시가 없다」 전문 가시나무에는 가시가 있다. 무수한 가시들이 가시나무의 “밑동에서 가지 끝까지 촘촘하게 둘러싼” 상태이다. 바늘처럼 뾰족한 가시에 찔린다면 “피 철철 흘리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는 온몸으로 “날카로운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지독한 가시나무조차” 가시를, 피를, 방어 태세를 해제하는 영역이 있다. 그것은 바로 뿌리이다. 강흥수에 의하면 “뿌리에는 날카로움이 전혀 없다” 또한 “뿌리에는 가시가 없다” 시인의 독창성은 식물의 뿌리를 “사람의 근본”으로 연결한다. 지독하게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한 가시나무가 피를 생산하듯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도 대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무수한 피를 흘리게 된다. 가시나무에게 뿌리가 있듯이 사람도 근본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 모두의 내부에는 아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려는데 다섯 번이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암호가 올바르지 않다고 인터넷 세상 속의 나와 대면하지 못하게 했다 인터넷 세상의 내가 또 다른 나의 일부분이듯 이 세상의 나는 다른 세상의 나의 일부분일까 오십여 년 동안 마음속을 들락거리며 근원적인 나를 만나고자 부단히 노력했으나 결계라도 쳐놓은 것인지 비밀번호를 잘못 입력하는 것인지 아직 단 한 번도 나 자신을 만나지 못했다 -「비밀번호 관리자」 전문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시적 화자 ‘나’는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사이트에 접속하려”다가 “다섯 번이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나’는 “암호” 또는 패스워드 오류로 인해 “인터넷 세상 속의 나와 대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강흥수는 ‘나’를 복합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다. 시인은 ‘나’를 3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나’는 “이 세상의 나”, “인터넷 세상의 나”, “다른 세상의 나”로 구분된다. 이 시를 읽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바는 일차적으로 인터넷 세상의 나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 포털사이트 접속에 문제가 생긴 경험을 갖고 있을 테다. 이와 같은 장면은 인터넷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의 일상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작품의 개성은 ‘다른 세상의 나’라는 표현에서 빛을 발한다. 강흥수는 “오십여 년 동안”, “근원적인 나”와의 만남을 기대하였다. 그것은 또한 “나 자신”과의 만남이기도 하다. 시인의 기대감을 우리에게 적용할 수도 있겠다. 우리도 언젠가 다른 세상의 나, 근원적인 나, 나 자신을 만나게 될까? 시인의 말 권두시 ― 훌륭한 시란 덕유산 자락 사탄마을의 용추폭포 다이빙 소리 우렁차고 주위 솔잎들 생글생글하다 경치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던 중 뛰어난 사진작가는 소리까지도 찍어내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이 웃자고 한 말 속에서 문득 시소설이란 새 장르가 무성해지는 현 문학세계에서 좋은 시를 넘어선 훌륭한 시란 무엇일까 골똘하다가 인생을 절절히 묘사하는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덕유산의 소변줄기처럼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같이 사진처럼 잠잠히 서 있지만 활력 탄탄한 소나무같이 굴곡 많은 산길 같은 생활을 실감나게 표현하여 독자들 마음에 산울림 같은 파동을 일으키는 시 그런 시가 훌륭한 시이지 않을까 아름드리 소나무처럼 고요히 고찰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