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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
2. 줄광대 3. 건방진 신문팔이 4. 황홀한 실종 5. 눈길 6. 선학동 나그네 7. 소문의 벽 8. 자서전들 쓰십시다 9. 다시 태어나는 말 10. 얼굴 없는 방문객 11. 개백정 12. 뺑소니 사고 13. 시간의 문 |
Lee Chung Joon,李淸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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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날이 밝기 전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우리는 어찌 되었던가. 나는 차를 타고 떠나가 버렸고, 노인은 다시 그 어둔 속의 눈길을 되돌아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건 거기까지뿐이었다. 노인이 그 후 어떻게 길을 되돌아갔는지는 나로서도 아직 들은 바가 없었다. 노인을 길에 혼자 남겨두고 차로 올라서 버린 구 순간부터 나는 차마 그 노인을 생각하기가 싫었고, 노인도 오늘까지 그 날의 뒷얘기는 들려 준 일이 없었다. 한데 노인은 웬일로 오늘사 그 날의 기억을 끝까지 돌이키고 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장터 거리로 들어서서 차부가 저만큼 보일 만한 데까지 가니까 그 때 마침 차가 미리 불을 켜고 차부를 나오는구나. 급란 김에 내가 손을 휘저어 그 차를 세웠더니, 그래 그 운전수한 사람들은 어찌 그리 길이 급하고 매정하기만 한 사람들이더냐. 차를 미처 세우지도 덜하고 덜크렁덜크렁 눈 깜짝할 사이에 저 아그를 훌쩍 실어 담고 가 버리는구나.' '그래서 어머님은 그때 어떻게 하셨어요?' 잠잠히 입을 다문채 듣고만 있던 아내가 모처럼 한 마디를 끼어 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다시 노인의 이야기가 두려워지고 있었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 다음 이야기를 가로막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럴 수가 없었다. 사지가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온몸이 마치 물을 먹은 솜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따. 몸을 어떻게 움직여 볼 수가 없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달콤한 슬픔, 달콤한 피곤기 같은 것이 나를 아늑히 감싸 오고 있었다. '어떻게 하기는야. 넋이 나간 사람마냥 어둠 속에 한참이나 찻길만 바라보고 서 있을 수 밖에야.... 그 허망한 마음을 어떻게 다 말 할 수가 있을 거나......' 노인은 여전히 옛예기를 하듯 하는 그 차분하고 아득한 음성으로 그 날의 기억을 더듬어 나갔다. --- p.133-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