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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인의 말
I. 기억은 안개 속 너머 그림자 14 건란(建蘭) 16 1950년대 1 17 1950년대 4 18 1950년대 5 19 ‘보리수’와 눈물 20 고추잠자리 21 간짜장 22 배꽃 23 톰보 연필 24 새벽에 본 노란 별 25 실례했습니다 26 범오동 매축지 27 때아닌 사과나무꽃이활짝 피었다 Ⅱ. 일상을 밟고 가는 소리들 30 일원론(一元論) 31 얼굴 없는 걸인 32 만취(滿醉) 33 까불지 말자 34 우짜끼고 35 진국 36 브람스를 좋아하는 이유 37 5분만 더 38 무덤과 알리바이 39 증명사진 40 바다장어의 독백 42 피아노 독주 43 김종삼 44 몽상하는 촛불 45 게으르고 싶은 날도 있다 46 부분과 전체 47 새벽기도 가는 길 48 술 먹기 좋은 날 49 발효 50 우기는 놈이 장땡이다 52 경첩도 때로는 소리를 지른다 53 빗소리 듣기 54 진례에 살다 Ⅲ. 구름 위에서 졸고 있는 요양병원 56 고흐의 「구두 한 켤레」 57 달맞이꽃의 수면장애 58 「웃는 자화상」 59 생몰년도 60 생존 전략 61 냉이의 고독 62 메아리 63 숀 코너리의 황혼 64 멋쩍었습니다 65 늙어버린 해마(海馬) 66 최선을 다하지 말자 67 오줌이 잘 안 나오네 68 수면 내시경이 다녀갔다 69 중환자실 공기는 가볍다 70 사망선고 노트 71 흉부 사진 72 권태 73 얕게 얕게 74 흔들리지 않으면 바람꽃이 아니다 76 착한 치매 77 인과율을 말하다 78 흔적 79 폐렴은 하얗다 Ⅳ. 풀꽃이 노니는 자연 82 자연의 침묵 83 월아산(月牙山) 84 청춘사업 85 송광사 공기는 다르다 86 햇빛을 밟고 가다 87 무무산방(無無山房)에서 일박(一泊)하다 88 꽉 찬 적요(寂寥) 89 엽서 90 폐가와 라일락 91 부요한 순백 92 소리쟁이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93 낙화 94 황매산 철쭉 95 꽃마리의 작별은 환하다 96 풀꽃 이름 찾기 98 장가계 원가계에서는 잔나비가 주인이다 100 엉겅퀴는 스러져간다 102 휘파람새의 사투리는 세상을 보는 해학이다 103 안개꽃 104 개망초에게 후회는 없다 105 닭의 장풀의 팔랑귀 해설 108 존재와 사물의 언어적 결합과 시적 묘미_손희락(시인,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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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걸려 있는 영도다리 좌판 위엔 카바이드 가스등이 불길하게 너울댄다 피난 올 때 부적으로 따라온 이데올로기처럼 가스등 밑에 쭈그리고 앉은 그는 앉은뱅이가 되어 좌판 위에 자식새끼처럼 말쑥한 만년필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다의 밤안개가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한 시대가 뼛속까지 스미고 있었다 ---「1950년대 1」중에서 칠순 잔치를 고사한 건 이제야 누런 평야가 눈에 들어온 것입니다 키도, 얼굴도, 학교 성적도, 치부(致富)도 한낱 지나가는 헛바람이었습니다 슈바이처는 더더구나 아니었구요 말년에는 시 나부랭이를 붙잡고, 믿음만이 생명을 활짝 피게 한다고, 죽도를 잡고 검선일여(劍禪一如)한다고, 촐랑대면서 인생의 초점을 맞추어 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어정쩡하게 수미일관(首尾一貫)한 겁니다 칠순을 맞이하면서 결심했습니다 남은 생애 최선을 다하지 말자고요 그건 도로(徒勞)라는 걸 경험으로 이미 아니까요 제 묘비명이 생각났습니다 ‘한세상 어정쩡하게 살다 갑니다 실례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물건’을 제 보물로 여기면서 데리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실례했습니다」중에서 전체를 보려고 산엘 간다 하늘이 가깝다 손짓하는 푸름, 저 멀리 아래 아득히 부분이 서로 머리를 들이밀고 서 있다 이 풍진(風塵) 세상 눈먼 하루살이 하루를 사느라 바쁘다 전체에 자유하려고 또 산에 오른다 ---「부분과 전체」중에서 알몸이 흑백으로 드러나 있다 연부 조직은 먼 산으로 물러나 있고 바람과 강물이 흐르고 있다 눈부신 하얀 늑골 사이로 바람은 흩어져 나오고 폐포 잎잎이 떨고 있다 강물은 사행으로 돌아져 나가고 강변에 부딪히는 소리 아득하다 저 허공에 걸린 노아의 방주 그 골짜기에 내리는 흑백의 적막 ---「흉부 사진」중에서 시냇물이 반짝이네요 오랜 세월 깊게만 들어가려 했어요 수도 없이 가지를 벋은 어둠속에서 눈물도 한숨도 분노도 깊게 깊게 몸부림쳤지요 하지만 이젠 가지 끝에서 얕게 얕게 팔랑거릴게요 서산 너머 가는 노을도 저를 닮았군요 제가 할 것이라곤 흔적 없이 잦아드는 것뿐이에요 얕게 얕게 ---「얕게얕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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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2004년에 첫 시집 『모호한 중심』을 내고 19년만입니다. 돌아보니 저의 정신이 걸어온 초라한 오솔길이었습니다. 홀로 시를 쓴 것이 아니라 같이 동무해 준 분들이 있었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뭔가 멋있는 ‘시인의 말’을 써야겠다고 머리를 굴리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이문재 시인이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 아니고 시만 생각하는 사람이 시인이다’라는 말에 감명받아 한동안 따라 하다가 그마저 지쳐버렸습니다. 이제는 생긴 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유롭고 싶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정이겠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려 합니다. 2023년 6월 김명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