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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묻지 않는다
김귀례
시와사람사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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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사람 서정시선

이 상품의 태그

목차

시인의 말 · 9

제1부 산수유에게 말 걸기

산수유에게 말 걸기
당신에게
오독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입동 경고는 봄부터 시작되었다
원시림에서 걸어나온 그녀
난민
해가 지지 않는 배달의 나라
엉겅퀴
이동권은 아줌마의 이름이 아니다
꽃들은 묻지 않는다
그날 그곳의 온도
다음에
울컥
저기압
바람에게 붙잡힌 바람
내가 라면을 먹을 때
미럭곰차두 2
불쏘시개
아스퍼거증후군
오토바이
폭설
역전 국밥
쌍둥이의 이름은
골목길이 부활할 수 있을까

제2부 두루말이 화장지를 위하여

아다지오 미소
두루말이 화장지를 위하여
미얀마 양곤항에서
영혼의 건축가
그 많던 그들은 어디 갔을까
우리가 우리에게 회초리를 들면 안 될까요
시의 눈동자
아직도
가을에는 영혼을 수선하게 하소서
길 위에서 길을 가르치다
정전
저울 속에 피는 꽃
깃발
녹내장나무
상처 난 사과에는 아버지가 살아요
스무 살 봄을 불러들여
기대어 사는 일은

제3부 한수제 배롱나무 앞에서

겨울 들판은 나체로 눕는다
약령시장을 서성이는 처방전
풍경
달맞이꽃
애기단풍
강아지로 오셨을까
하얗고 가벼운 옷 한 벌 입혀
스쿨존
돌림 노래
체중계
나이아가라 폭포
동백꽃 두 송이 기도인 줄 아시나요
짱뚱어가 춤을 춘다
한수제 배롱나무 앞에서
다만 내가 아니었을 뿐
은행잎의 마음
무안 사거리 반점에서
오랜 눈부심

제4부 볼레로와 골덴바지

볼레로와 골덴 바지
“예” 입속말로 녹아드는 그녀
대답은 낙엽이 되어 그 집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대를 한 줄도 읽지 못했네
아버지의 식사
그믐달을 켜다
엄마는 아장아장
압력밥솥
그 배는 안동역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출항

작품론
슬픔을 견디는 두 가지 방법 / 황정산

저자 소개 1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전남 중학교 국어교사로 퇴직하였다. 《시와사람》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촛불』, 『꽃들은 묻지 않는다』가 있다. 시빚기 동인, 진선미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60쪽 | 240g | 125*200*10mm
ISBN13
9788956657097

책 속으로

손 잡아주기조차 미안해서
말 걸기조차 망설여져서
상위마을 하위마을 할 것 없이
긴급 구조 깃발을 샛노랗게 펄럭인단 말이지

폭풍 속 뗏목처럼
신음하고 표류하는 애비 가슴에
해열제로도 식힐 수 없이 들끓는 어미 마음에
산동마을 그 멀리서라도
절망 대신 봄날을 살려주고 싶단 말이지

유채꽃밭 가던 길
움직이지 말라는 얘기만 믿고
순진하게 따라하던 가지런한 눈망울들이
잠들지 못하고 눈 부릅뜨며 진혼하는
노란 굿판을 벌인단 말이지

추모의 펼침막마저 가위질하며
진실을 저울질하는 이들의 뒷짐 진 침묵과
간직해야 할 마음의 습지가 사라지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어
충혈된 눈물을 방울방울 매달았단 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긴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자식을 끝내 기다리느라
어둠 속을 살아가는 엄마 아빠를 수혈하며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준단 말이지.
---「산수유에게 말 걸기」중에서

당신의 이름을 씁니다
정의의 반대 칸에

그날
장검으로 찌른 건 민주주의였고
곤봉으로 내리친 건 자유와 평화였습니다

빨리 셔터 문 내리고 제복 입고 퇴근하세요 학생처럼 보이면 끌려가니까 절대 손에 책 들고 다니지 마세요 곤봉에 맞아 버스로 끌려가는 시민들을 차마 볼 수 없다는 전남신협연합회의 전언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의 일터는 도청 앞 분수대였습니다 전일빌딩을 맴돌던 총성과 유탄은 무섭지 않았습니다 매일 치약과 랩을 도시락처럼 챙겨 최루탄을 이겨야 했습니다 분수대로 가다 금남로 5가에서 만난 그를 잊지 못합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 태극기에 덮여 리어카에 실려가던 상처투성이 발을

눈물조차 말라버린 상무관. 만사지와 상여소리는 음료수병의 꽃 한 송이로 대신하고 즐비한 관 앞에서 말을 잃어버린 시간들의 무게는 저울질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억울한 죽음이 그나마 행운이라는 역설이 더 슬픕니다 그날 이후 돌아오지 않는 찾지 못한 이들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탄생한 날에
도청 앞으로 돌진하던 장갑차를 향해
정조준한 총구는 목과 날개를 부러뜨렸습니다
숨쉬기도 미안한 오열하는 오월이었습니다

그날 국가는 우리가 적이었습니다
그날의 하늘은 오늘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직도 애도되지 않은 슬픔 외에
정조준 해야 할 무엇이 남아 있는지 묻습니다

스스로를 유배시키며 태풍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기 바다에 정박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당신에게」중에서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지

빗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콩닥콩닥
짝짓기만을 위해 땅 위로 기어 올라온다고
그래서 너희들의 귀향 따위는 터무니없다고 예단했지
포식자 같은 땡볕에 의한 헛된 죽음일 뿐이라고

너와의 첫 만남은 삼십 년 전
시골학교 시멘트 계단의 널부러진 죽음이었지
예초기가 지나간 풀밭 같이 피멍이 들었었지
오늘 공원 산책로에서의 해후는 피난행렬 같았어
매미의 떼 창에 빠져 그때처럼 또 밟을 뻔했지

마르고 구부정한 노인의 꼬챙이가
동백나무 숲으로 조심스럽게 너를 옮기는 걸 보았어
눈물이 핑 돌았어 성호경을 그었어
노인은 공원을 한 바퀴 돌며 너희 모두를 구한 후
가까운 나무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지
나는 그동안 공원을 네 바퀴 돌았어

흙을 먹고 토하고 헤집어야 하는 슬픈 사랑과
비온 뒤 목숨을 건 오체투지를 손가락질 했지
걱정 없이 체온이 유지되는 땅 속을 버린 채
불볕을 포복하는 너의 절박함을 수박 겉핥기 했지

작은 흙 알갱이들과 손잡고
네가 만든 떼알구조 덕분으로
식탁이 채워지는 것을 잊는 것처럼
열탕과 혹한 속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닐집이
태풍으로 무너지는 그 참담한 소식은
여우비처럼 태풍과 함께 바로 소멸되었지
그들이 기른 채소와 쌀이 저녁 밥상을 차렸어

이제는 네가 정독되어야 할 시간이야
밟으면 꿈틀거리는 것들과 함께.
---「오독」중에서

그날
신문의 1면에는**
또 다른 김용균 1,200명을
위패처럼 나란히 세워놓았다

활자처럼 살아난 이들이 무언의 말을 하고 있다
입사 3일 만에
명복을 누리려고 일한 것이 아니었노라고

“한 달에 이틀 쉬고. 급여는 150만원보다 조금 높아. 6개월에서 1년 정도 부사수 하다가 사수 달면 300만원부터 시작한대”

자신의 나라에서 몽골 군대처럼 취급당하는
그들을 공격하는 현대판 산재는
팔만대장경도 막아내지 못했다

같은 일 하는 사람들
같은 방식으로 죽고 있지만

가난이 집요하게 죽음으로 대물림되는
대한민국의 킬링필드

베테랑 선원의 몸이
어선원들의 산재 박물관이 되어가는 지금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경향신문 기사 제목. 제22회 국제 엠네스티 언론상 수상.
**2019년 11월 21일 [경향신문]. 2018년 1월 1일부터 2019년 9월 30일까지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 중 ▲떨어짐 ▲끼임 ▲깔림 ▲무너짐 ▲물체에 맞음 등의 사고를 당한 1,200명의 이름으로 1면을 가득 채움.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중에서

우리가 꽃 봄의 크루즈에 취하고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는 사이
만주벌판을 떠돌던 동포들처럼
보따리 쌌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태어난 고국에 대한 사무침 떼어놓고
단잠과 단꿈을 향해
등대 없이 항해를 감행한 그들에게
우리는 왜놈 순사였다
횡포를 휘두르는 만주국 지주였다
갈대 늪처럼 황량한 벌판인 조국에서
그들의 이름은 까레이스키였다

갈대배처럼 떠돌이가 되었어도
모든 희망이던 어린 자식들이
엄마의 나랏말을 몰라서
“불이야” 고국어로 수없이 외쳤을 절규는
화마 속에서 녹아내리고 질식사했다
---「입동 경고는 봄부터 시작되었다」중에서

때 아닌 폭설을 맞은 후에도
초미세먼지처럼 채찍 맞으며
하루 빨리 사라져야 했다

멱살 잡힌 바람처럼 떠돌던 그들에게
여명의 불씨가
살아있기나 한 것일까

연해주가 되어버린 엄마의 나라에서
또 다른 까레이스키가
아픈 밤이다.

*2018.11.7. 화재로 죽은 고려인 아이들 영전에 바칩니다
---「생의 입춘 시작되기도 전에」중에서

말을 버리고 표정도 감춘 채
그녀만의 원시림으로 떠났다네

숲은 어둡고 밝고 따뜻하고 차갑고
고요하고 신비롭고 활기와 무기력이 교차하는
낯설음의 시작이었네

힘이 센 침묵을 몸으로 살아내며
종일토록 질문하며 물음표와 잠들었네
백만 년 동안 말하지 않은 것들과 마주했네
아름드리 너도밤나무가 그녀를 끌어안았네
무너졌던 탄성의 허리 스스로 곧추세우고
요동치는 꽃대를 달랠 줄 알게 된 선물이라네

자신과 화해하며 천천히 걸어 나온 그녀는*
모든 출구는 새로운 입구임을 증명했네
그녀가 우리를 다시 찾은 날
우리가 그녀를 되찾기 위해
첫눈카페**로 향하며 기쁨을 파종한 날
개망초들의 합창 밤새 울려 퍼졌네
금계화와 흰나비의 춤사위도 별빛 속에 쏟아졌네

달이 되어 돌아온 그녀는
달맞이꽃 된 우리의
눈빛을 하나하나 얼싸 안았네.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선 문우.
**일주일에 한 번 시를 공부하는 카페.

---「원시림에서 걸어나온 그녀」중에서

출판사 리뷰

슬픔을 견디는 두 가지 방법
― 황 정 산
(시인·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슬픔은 인간에게 아주 근원적인 감정이다. 채울 수 없는 욕망의 빈자리에 의해 생기는 것이 바로 슬픔이라는 감정이다. 인간의 욕망은 결코 채울 수 없는 결핍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인간은 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끝없는 욕망의 충족을 통해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그 슬픔을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이 더욱 확대되고 그것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 충족 수단이 상품의 형태로 무한히 확대되는 것은 지금 이 시대가 그만큼 더 슬픔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귀례의 시들은 이 슬픔을 다루고 있다. 그가 다루는 슬픔은 한 개인의 내면의 슬픔에서부터 가족이나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슬픔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들에 나타난 슬픔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다. 그가 보여준 슬픔에 자세히 다가가 보자.

2. 슬픔의 근원
김귀례의 시를 읽으면 슬프다. 이 시집의 거의 모든 시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들은 시인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슬픔을 과장하거나 독자로 하여금 감상적으로 그 슬픔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슬픔의 근원에 가닿아 있다. 그래서 무엇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다음 시는 김귀례 시인의 시들이 어떤 지향을 보여줄지 예감하게 만든다.

비밀의 방에 입실했어
어둠이 깃을 치기 시작하는 시간이었지

우리는 시의 눈동자를 만나고 싶어했지

누구는 꽃만이 세상의 멍을 지울 수 있다며
맨드라미와 씨름하다가 달려오고
누구는 노점상 할머니의 추위가 눈에 밟혀
가슴 한 편에 눈발을 대신 싸들고 나타나고
누구는 스승의 봉분 앞에서
양은도시락 추억을 울먹였지

돌아가서
다른 문을 열었어
불빛은 희미했어
불법주차 차량처럼 일상이 견인된 채
그녀는 밥도 국도 뎁히지 못하고 저녁을 포기했지
누르지 못한 버튼은
누군가와 함께 가야만 하는 두려움이었던 거야

인생을 스스로 뎁히기 힘든
어두운 거실 속 식어버린 그녀를 위해
별들이 잠들 때에야 저녁밥상을 차렸지

그날 그녀의 눈 속에
젖은 시의 눈동자가 있었어.
- 「시의 눈동자」 전문

시를 공부하기 위해 어둑해지는 저녁 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모두 시의 눈동자, 즉 시안詩眼을 찾고자 한다. 그런데 거기 모인 시인들이 시의 요체인 그 시안을 “세상의 멍”이나 “노점상 할머니”, “스승의 봉분” 등 슬픈 것들로부터 찾는다. 우리의 정서 중 가장 근원적인 정서가 바로 슬픔이기에 이 슬픔을 말하지 않고는 시의 눈동자를 들여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시인은 이 시 모임을 끝내고 들어와 자신이 돌봐야 할 가족-아마도 병든 노모로 보이는-을 위해 늦은 저녁을 준비한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그 노모의 슬픈 눈 속에서 시를 만난다. 이렇듯 김귀례 시인에게 시는 슬픔을 만나는 일이고 슬픔을 찾아가는 길이다. 시인에게 슬픔은 우선 가족으로부터 기인한다.

집이 기울고 있다
똑같은 물음이 반복되며 빨라진다
물음만이 초가의 서까래를 지탱하고
물음이 다시 서까래를 무너뜨린다

처마의 윗니 두 개가 없어진 집이다
물컵에게 행방을 물어도 알지 못한다
혹한에도 끄떡없던
아랫니 떠난 지 반 년이 지났다

물음마저 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맨몸으로만 입국이 가능한 그곳
...(중략)...

기울어져가는 집을
버티고 있는 한 마디
“나는 다 먹었다. 너 먹어라”
생선 한 토막 살코기 몇 점 남은 밥상에서
미리 써놓은 유언장처럼
메아리 되어 물음 위를 맴돌고 있다.
- 「대답은 낙엽이 되어 그 집에 도달하지 못한다」 부분

집이 기울고 있다는 말은 낡은 집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족 구성원들이 죽거나 떠나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것을 고향집에 돌아와 느낀다. 그 느낌을 시인은 “처마의 윗니 두 개가 없어진” 모습으로 비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 기울고 있는 집은 “물음마저 버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맨몸으로만 입국이 가능한 그곳” 즉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 낡은 집에서 이제 부모님 중 한 분만 남아 가족 간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려 애쓰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시의 제목을 “대답은 낙엽이 되어 그 집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길게 달았을까? 물음은 가장 쉬운 관심의 표현이다. 그리고 사람 사이에 물음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 사이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노모는 물음을 통해 끝없이 가족 간의 관계를 되돌리고 과거의 안온했던 집을 되살리고자 한다. 하지만 시인은 그런 노모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없다. 낙엽이 되어 나뭇잎이 나무를 떠나듯 이미 이별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귀례 시인의 또 다른 시들에서 이 슬픔은 가족에서 사회로 확대된다.

썰물 같은 사람들만 모여 살까요. 서해 만조 수위 같은 사람들만 고시원에 모여 들까요 조선시대 걸인들의 보금자리였던 청계천이 있는 이곳 종로구에 희망을 걸었던 것일까요

다닥다닥 붙은 방문 닫아 건 칠흑 같은 사람들 한 줌 재를 택했을까요 행운의 숫자 일곱에 희망을 걸었을까요 일곱이서 함께 손잡고 고통의 강 넘으려 했을까요
조개로 바닷물 퍼내는 듯, 외줄타기로 오지탐험가로 살아온 그들 죽음은 9시 뉴스에 잠시 회자되고 말면 그뿐인가요. 그들 앞에 따뜻한 숙면이 부끄러운 불면의 밤은 하루쯤이면 되는 건가요

...(하략)...
- 「우리가 우리에게 회초리를 들면 안 될까요」 부분

시인은 고시원 화재 사건으로 희생된 일곱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시를 썼다. 그것은 슬프고도 안타까운 사건이다. 특히 그들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사회가 만든 재난이기도 하다. 가난 때문에 고시원에 모여들고 결국 그 열악한 환경 때문에 그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죽음은 9시 뉴스에 잠시 회자되고 말” 뿐 우리의 뇌리에서 금방 사라질 것이다. 시인은 회초리를 드는 심정으로 그 슬픔을 기록한다. 자신의 몸에 고통을 각인하여 그 슬픔을 쉽게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다음 시는 좀 더 사실적이다.

그날
신문의 1면에는
또 다른 김용균 1,200명을
위패처럼 나란히 세워놓았다

활자처럼 살아난 이들이 무언의 말을 하고 있다
입사 3일 만에
명복을 누리려고 일한 것이 아니었노라고

“한 달에 이틀 쉬고. 급여는 150만원보다 조금 높아. 6개월에서 1년 정도 부사수 하다가 사수 달면 300만원부터 시작한대”

...(중략)...

베테랑 선원의 몸이
어선원들의 산재 박물관이 되어가는 지금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부분

김용균은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이다. 시인은 그 사건을 알린 그 당시 신문기사의 표제를 그대로 시의 제목으로 삼아 현장감을 강조하고 그 사건의 슬픔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은 한 사람의 죽음에 있지 않고 매일매일 수많은 노동자가 김용균과 같은 위험과 죽음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슬픔과 고통을 강요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인가 시인은 우리에게 통렬하게 묻고 있다. “오늘도 /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는 마지막 구절은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3. 슬픔을 기억하기
슬픔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빨리 그 슬픈 일을 잊으라고 한다. 하지만 슬픔은 쉽게 잊히지 않고, 또 잊는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 깊은 곳에 내재하여 더 큰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그렇게 마음속에 넣어둔 슬픔은 화가 되어 폭력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정신을 파괴한다. 반대로 슬픔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하여 우리의 의식으로 끌어내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 때 슬픔은 비통함이 되지 않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또 다른 에너지로 변화된다. 다음 시가 그것을 보여준다.

두 달째 사과를 사와요
상처 난 사과만 사와요
이유를 묻는 어머니에게 대답하지 않아요

사과 파는 할머니에게서 아버지를 만나요
상처 난 사과에는 아버지가 살아요
팔지 못한 사과 밥 대신 쌀밥을 달라고 떼를 썼던
어린 시절이 불쑥 가로등처럼 켜져요

...(중략)...

오늘도 상처 난 사과를 사와요
아버지가 우리의 저녁밥이었듯이
상처 난 사과도 밥이 될 수 있어요.
- 「상처 난 사과에는 아버지가 살아요」 부분

시인은 상처 난 사과에서 아버지를 떠올린다. 가난 때문에 상처 난 사과로 끼니를 대신했던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이다. 그러기에 상처 난 사과에는 가난과 그 가난의 시절을 견디려는 아버지의 노동의 고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아버지에 대한 슬픈 기억을 시인은 상처 난 사과에 간직하여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 노력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시인에게 든든한 삶의 뒷배로 아직 살아계시고 있다고 생각된다. 김귀례 시인은 슬픔을 기억하기 위해 꽃의 이미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슬픔을 아름다운 꽃으로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정원에 핀 꽃만이 꽃이 아니다
하루에 서너 번씩 고물상 저울 속에
숫자로 피어나는 꽃

눈발 흩날리는 새벽 골목길로 출근을 한다
어제 저녁 모아둔 폐지 40kg에
이천 원

가슴에 철심 박은 수술을 한 후에도
칼바람 부는 저녁까지 인사하듯 굽은 허리를 숙인다

암으로 누운 아들을 건사하며 아흔을 향해가는
저울 속에 피는 꽃

오지 않는 계절은 없다며
꽃을 피우기 위해
폐지처럼 버려지며 폐지를 줍는다

어둔 골목 가로등 아래
아들에게 봄 햇살 가득 채워주고 싶은
붉게 녹슨

한 송이.
- 「저울 속에 피는 꽃」 전문

폐지를 줍는 노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아니 그 존재 자체가 슬픔이다. 생활고의 슬픔과 노년의 쓸쓸함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을 노인은 보내고 있을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눈발 흩날리는 새벽”과 “칼바람 부는 저녁”이라는 시간적 배경으로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슬픔을 “저울 속의 피는 꽃”으로 바꾸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폐지의 무게를 알리는 저울 속의 숫자가 노인에게는 꽃처럼 아름다운 형상으로 나타나고 그 꽃으로 노인은 슬픔을 견디고 있다. 다음 시의 소금꽃도 이와 비슷하다.

오지 않는 사람들은 소금꽃으로 피어난다

하얀 결정으로 부신 사연들이
침몰하거나 수장되거나 부유하다가
이곳
아직도에 도달한다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만 있는 삶이 모여드는 섬
고통 없는 섬이 존재하지 않듯이
아픔 없는 배는 정박하지 않는 섬
아직도

오십 년이
다시 하얀 기다림으로 부서지고
갈등을 구워야하는 오늘이 닳아가고
박음질 당하는 기다림은 잠을 잊는다

텅 빈 우편함은 먼지바람이 오가고
소금꽃이 된 아들을 기다리는
등 굽은 제주도 할망
밀려오는 파도에 하얗게 부서진다

희망버스는 아직도에 아직 오지 않고
서해 끝
격렬비열도가 울음을 운다.
- 「아직도」 전문

“아직도”는 채우지 못한 욕망을 강조해주는 부사어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연기되는 욕망 충족을 표현하는 가장 간단한 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이 “아직도”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아직도 가야 할 곳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직도”이다. 과거의 슬픔을 위로하고 치유하고자 한 “희망버스”마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그곳이 또한 “아직도”이다. 그곳이 우리 역사의 아주 큰 비극을 경험한 제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그 아직도의 이미지를 하얀 소금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하얀 소금은 슬픔의 결정이다. 슬픔이 꽃으로 피어 바로 그 소금 결정이 된 것이다. 시인은 우리와 우리 사회가 겪은 슬픔을 아름답고 햐얀 결정으로 만들어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겨두고자 한다.

4. 또 다른 슬픔과의 연대
슬픔을 견디는 또 하나의 방법은 다른 슬픈 존재들과 연대하는 방법이다.

구제의류 매장 앞에
불 꺼진 노인 앉아 있다

그를 맴돌던 떠돌이별도
은백양나무에 걸린 꽃내음달도
이제 빛을 내지 못한다
맞은편 은혜교회의 찬송가도
종일 쉬지 못한 태양광 가로등도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중략)...

허물어진 연민으로
빛바랜 표지석이 된 노인에게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구절이 있다
‘나는 당신입니다’

오늘도
밤을 켜는 점등인 없는 휘어진 골목이 외롭다
- 「정전」 부분

시인은 도심 한 구석에 앉아 있는 노숙자 노인을 보고 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슬픔을 떠올린다. 그 슬픔을 시인은 “불 꺼진 노인”이라는 감각적 표현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슬픔을 하늘의 별도, 교회의 은총도, 가로등이라는 국가의 시설로도 지울 수 없다. “나는 당신입니다”라는 구절로서 그 슬픔을 함께 하는 것만이 우리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시인은 생각하고 있다.

단 한 번도 묻지 않았지

빗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콩닥콩닥
짝짓기만을 위해 땅 위로 기어 올라온다고
그래서 너희들의 귀향 따위는 터무니없다고 예단했지
포식자 같은 땡볕에 의한 헛된 죽음일 뿐이라고

...(중략)...

흙을 먹고 토하고 헤집어야 하는 슬픈 사랑과
비온 뒤 목숨을 건 오체투지를 손가락질 했지
걱정 없이 체온이 유지되는 땅 속을 버린 채
불볕을 포복하는 너의 절박함을 수박 겉핥기 했지

작은 흙 알갱이들과 손잡고
네가 만든 떼알구조 덕분으로
식탁이 채워지는 것을 잊는 것처럼
열탕과 혹한 속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닐집이
태풍으로 무너지는 그 참담한 소식은
여우비처럼 태풍과 함께 바로 소멸되었지
그들이 기른 채소와 쌀이 저녁 밥상을 차렸어

이제는 네가 정독되어야 할 시간이야
밟으면 꿈틀거리는 것들과 함께.
- 「오독」 부분

시인은 지렁이를 보고 이 땅의 가장 낮은 것들을 생각한다. 지렁이들이 기어 나와 햇볕에 말라 죽는 고통을 보고도 왜 그들이 그래야 하는지를 한 번도 묻지 않고, 그들의 절박함을 무시해 왔음을 시인은 반성하고 있다. 이런 지렁이를 대하던 평소의 태도는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 같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위치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지렁이들의 삶이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우리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고 있음을 생각한다. 외국인 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 사회의 번영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밟으면 꿈틀거리는” 약한 존재들이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님을 시인은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네가 정독되어야 할 시간”이라고 시인은 다짐한다. 시인은 이런 약한 것들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만들어 그들과 연대한다. 이런 슬픔을 나누는 행위가 슬픔을 만들어 낸 우리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의미 있는 실천이라고 시인은 믿고 있다. 다음 시는 이러한 연대를 구체적인 사실로 강조해 보여주고 있다.

서툰 한국말로 “불이야 불이야”
불길처럼 가스배관을 타고 올라
십여 명의 사람을 살려 내었다

불법체류자로 내쳐진 너는
치료도 거부한 채 달아나
변두리 공사장을 떠돌며
불안 속에 지내야 했다

엉겅퀴의 가시가
스코틀랜드를 구한 적이 있었다
낯선 너의 이름을
엉겅퀴라 불러주고 싶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날아온 붉은 새 한 마리
알리
너의 국적은 사랑이다.
- 「엉겅퀴」 전문

이 시에 등장하는 알리는 2020년 강원도 양양군 원룸 화재 사건 때 2층으로 올라가 여러 사람을 구한 카자흐스탄 출신 불법체류자이다. 그는 스코틀랜드를 구한 엉겅퀴처럼 이 땅에 하찮은 존재로 살아왔지만 국적과 출신과 “변두리 공사장을 떠돌며” 지내는 자신의 불안한 처지와 상관없이 불행 앞에 뛰어든 용감한 연대의 정신을 보여준 인물이다. 약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이 슬픈 존재들의 연대가 지금 우리 사회를 그나마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고 있음을 이 시는 우리에게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5. 맺으며
김귀례의 시들을 읽으면 슬프다. 세상이 모두 삶의 상처와 이루지 못할 꿈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시는 이 슬픔을 분노와 증오의 언어로 토로하지 않는다. 또한 슬픔을 애상적 감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슬픔의 기원을 찬찬히 되짚어 들어가 그 슬픔의 기억을 선명한 이미지로 되살려 준다. 그리고 슬픔을 느끼는 존재들을 생각하고 그것들과 함께 슬퍼한다. 이 슬픔과 슬픔이 모이는 일이 사랑이며 또한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의미있는 실천이기도 하다.

사랑은 작아도
아침 풀잎을 적시는 이슬처럼 맑아
모이고 모이면
강물이 되어가고

섬마을 바다에서 사랑이 된 짱뚱어가
팔딱이며 노래한다

줄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다며
- 「짱뚱어탕」 부분

뻘밭을 기는 볼품 없는 짱뚱어는 이 땅의 모든 슬픈 존재들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슬픔을 알기에 짱뚱어탕처럼 뜨겁고 푸근한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김귀례의 시가 바로 그 사랑이다.

추천평

한 사람이 어둠 속을 걸어간다. 한 손에 횃불,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다. 세계의 골목길을 헤쳐가며 그는 인간의 마음속 고통을 확인하고 그들이 지닌 슬픔을 계측하고자 한다. 그의 길이 거칠고 험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외면할 자유는 우리에게 없을 것이다. 김귀례의 시는 인간과 세계의 모순 그 아픔 앞에 예민하고 진지하다. 산 너머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꿈꾸는 것보다 눈 앞에 펼쳐진 마을의 슬픔을 선택하는 것은 불편하고 어리석은 일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선택한 ‘미럭곰차두’ 같은 고통의 자유는 소중하다. 자신이 존재하는 아쉬움 많은 이승의 시간을 두려움 없이 사랑하는 것! 그의 시가 든 횃불과 저울을 우리가 듬직하게 바라보는 이유다. 꽃과 시는 모든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영역에 핀다 - 곽재구 (시인)
여전히 시대의 한 가운데를 복무하는 열혈 청년의 시가 여기에 있다. 천수천안의 몸짓과도 같이 자신의 시를 태어나게 하는 비극의 현장을 검색해 내고 놓치지 않고 있다. 운명처럼 그 자리에 앉고 눕는다. 그렇게 시의 계절들이 지나가고 나무들이 자라는 동안, 시인의 의식 속으로는 세월호와 용산과 이태원의 내면들이 김귀례 시의 시행들로 뭉쳐져 같은 위도 위에 출몰한다. 한편으로 시인은 오월 광주와 통일 한반도의 대지 위에 녹색의 꿈을 심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를 향한 자본과 국가 폭력의 현장을 고발하는 목소리들 역시 강과 산을 닮은 모습이다. 이들 시에는 이유가 있다. 인권과 평화와 통일 의지에 관한 투철한 신념과 의지이다. 외롭고 높고 뜨거운 시의 현장이 아니겠는가. - 정윤천 (시인)
김귀례 시인의 詩는 기도다. 사회의 고통과 아픔을 직시直視와 직관直觀으로 바라보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길어 올린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빌리자면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 붓는 구절과도 같다. 한편 가족을 향한 사랑이 숨을 쉬고 이웃의 아픔을 위무하는 내밀한 기도이다. 그의 詩에 나타난 언어적 통찰과 깨달음 또한 고통을 희망의 정수리에 옮겨 붓는 일과 같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영혼의 방언과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의 노래가 이번 시집의 특징으로 올곧게 자리하고 있는 중이다. - 강대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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