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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 9
점괘(?漸)10 귀매괘(?歸妹)18 풍괘(??)23 여괘(?旅)30 손괘(?巽)38 태괘(?兌)43 환괘(?渙)57 절괘(?節)65 중부괘(?中孚)73 소과괘(?小過)79 기제괘(?旣濟)86 미제괘(?未濟)100 계사상전 제1장(繫辭上傳第一章)126 계사상전 제2장(繫辭上傳第二章)161 계사상전 제3장(繫辭上傳第三章)170 계사상전 제4장(繫辭上傳第四章)180 계사상전 제5장(繫辭上傳第五章)205 계사상전 제6장(繫辭上傳第六章)225 계사상전 제7장(繫辭上傳第七章)236 계사상전 제8장(繫辭上傳第八章)244 계사상전 제9장(繫辭上傳第九章)253 계사상전 제10장(繫辭上傳第十章)273 계사상전 제11장(繫辭上傳第十一章)285 계사상전 제12장(繫辭上傳第十二章)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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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괘에서는 음·양의 수가 서로 딱 맞으니, 각기 그 땅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욕구에 순응하고, 이들의 됨됨이[性]와 발휘한 정서[情]에는 매개하여 통함이 없으며, 공효는 작게 이룸에 만족하여 무엇을 건립하려 들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것을 비괘가 표방하는 도(道)의 성취로 여긴다. 이 점괘에서의 육이·구오효는 비괘에서의 주효(主爻)들이다. 그러므로 ‘너럭바위’에 의거하여 편안함을 도모하기도 하고, ‘구릉’에 올라가서 자신을 존귀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편안한 이는 그 위험을 경계하여 가지 않고, 존귀한 이는 아래에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오지 않는다. 그러나 3효·4효의 위(位)는 그 소임이 다르고, 두 임금이 거듭 옮기는 것을 귀감으로 삼아 자신들의 하는 일 밖에서 분발하며, 밀접하게 가깝기에 서로 위(位)를 바꾸어 소녀(少女)와 장남(長男)의 환락을 함께한다.
--- p.11 한 번은 음이 되었다 한 번은 양이 되었다 함을 ‘도’라 하는데, 여기에서는 음과 양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김이 없다. 그러나 음과 양이 한 번씩 한 번씩 세움에서는 반드시 중화(中和)를 이루는 교접을 하게 되어 있고, 또한 우주의 거대한 기강을 질서정연하게 따르며 계승한다. 결코 음과 양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위치를 쫓아서 자기들 재능을 발휘하며 한 번씩 한 번씩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러하므로 하늘·땅은 위대한 것이며, 비록 이들의 사귐이 친밀하지 않고 펼쳐냄도 찬찬하지 않기는 하지만 결코 도(道)에 손해를 입힘이 없다. 태괘가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 p.86 『주역』에서는 건괘·곤괘를 위에다 아울러 세우고 있으니, 이들 사이에는 시간적인 선(先)·후(後)가 없고, 권한에서도 주(主)·보(輔)가 없다. 이들 두 괘는 마치 호(呼)·흡(吸)과도 같고, 우레·번개와도 같으며,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어서 보고 듣는 것을 동시에 지각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하늘만 있고 땅이 없음은 없으며, 하늘·땅만 있고 사람이 없음은 없다. 그런데도 “하늘은 자(子)에서 열리고, 땅은 축(丑)에서 열리며, 사람은 인(寅)에서 생긴다.”라고 하니, 이 설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또 도(道)가 있지 않고서는 하늘·땅도 없으니, “하나는 셋을 낳고, 도는 하늘·땅을 낳는다.”라는 설도 말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하늘은 있는데 땅이 없음은 없거늘, 하물며 땅은 있는데 하늘은 없음이 있을 수 있겠는가? --- p.148 요컨대,『태현』의 수(數)들은 모두 방(方)에서 신묘함[神]을 찾고, 수를 체(體)에 함몰하고 있다. 그러니 이를『주역』에 비교하면 마치 해와 달빛이 환한 속에서 켠 횃불이라고나 할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주역』의 “신묘함에는 정해진 곳이 없고, 정해진 몸이 없다.”라 하기 때문이며,『주역』은 신(神)의 신묘함과 합치하고 물(物)들로 말미암아서 신(神)을 헤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神)은 변함을 주재하지만 물(物)들은 다른 물(物)들을 가릴 뿐이고,『주역』은 하늘·땅을 보편으로 휩쌈에 비해 저『태현』은 기껏 하늘·땅의 끝자락이나 덮을 따름이니, 이 둘 사이의 얻고 잃음의 차이가 어찌 다만 사람 한 길 정도에 지나지 않으리오! --- p.195 천지지수는 55이고, 대연지수는 50이다. 이들 사이의 차 5는 이들 수를 누적하여 계산함에서 드러나는 것인데, 땅의 남음을 재단(裁斷)하면 하늘의 부족함과 똑같다. 씩씩하게 행하는 것[하늘]은 신속하여 청렴함을 얻고, 순종하며 행하는 것[땅]은 더뎌서 호사스러움을 얻으니, 또한 땅을 면려(勉勵)하여 하늘의 행함에 맞추도록 함이다. 그리고 고요함[靜]은 무엇으로 말미암아서 수를 얻을 수가 없고 움직임[動]을 뒤따르는데, 가운데를 비우고 그 양 끝을 보류함에서 수는 세워진다. --- p.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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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내전』은『주역』의 경 · 전문에 대해서 축자적(逐字的)으로 주해(註解)한 저작이다. 이에 비해『주역외전』은『주역』의 괘 · 효사와 십익(十翼)에 담긴 의미를 논하는 저작이다. 짐작건대, 저자는 ‘내(內)’라는 의미에 대해 ‘??주역』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하나 샅샅이 살펴보다’를, ‘외(外)’에 대해서는 ‘??주역』을 멀리 밖에서 조망하여 경 · 전문에 드러나는 의미를 조목조목 개괄하여 논하다’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이『주역외전』은 경 · 전문 없이『주역』의 괘 · 효사와 그 풀이 글이라 할 수 있는 십익 속에 담긴 역학 · 철학적 의미를 개괄적으로 분석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주역』의 경 · 전문에 담긴 의미를『주역』과『주역』사의 관점에서, 그리고 동아시아철학과 그 철학사적 관점에서, 해박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정연한 논리에 실어 논하고 있는 저작이다. 언뜻 보면, 이것이 그의 혈기 왕성한 시절인 30대에 이루어진 작품이고, 또 망국 유신(遺臣)으로서의 울분을 안고 쓴 저작이기에, 그 학문적 객관성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만 3살에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7살에 13경을 완독했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불린 인물이다. 그리하여 가학(家學)으로 동아시아 고전에 대한 배경지식을 튼튼히 다진 위에, 20세에 그는 당시 호상학(湖湘學)의 중심을 이루던 악록서원(嶽麓書院)에 입학, 동료들과 ‘행사(行社)’라는 독서 동아리를 만들어 경전의 의미와 시사(時事)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며 나름의 안목을 형성하였다. 이『주역외전』에는 이러한 그의 학문적 배경과 해박하고 정치(精緻)한 논리 및 천재들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탁견들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이『주역외전』이 왜『주역』사적으로 또 철학사적으로 ‘금자탑(金字塔)’이라 할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 읽는 이들이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_역주자 머리말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