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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울게 두오! : 괴테 시 필사집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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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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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추천하는 글 _ 장석주
옮긴이의 글 _ 배명자

1부 낮을 가둔 동굴에서

들장미 | 슈타인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 어머니께 | 명심 | 잠에게 | 밤 | 기쁨 | 달에게 | 나 너를 사랑하는지, 나는 모른다 | 프로메테우스 | 가뉘메트 | 한 사내가 손님으로 왔고 | 짧은 격언과 위로의 말 | 제비꽃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판에 붙인 시 | 새로운 사랑, 새로운 인생 | 그리움 | 산에서 | 쉼 없는 사랑 | 희망 | 근심 | 용기 | 비겁한 생각들 | 나그네의 밤 노래 | 독수리와 비둘기

2부 물의 정령들이 부르는 노래

사랑하는 사람 가까이 | 본성과 예술 | 발견 | 물의 정령들이 부르는 노래 | 인간의 한계 | 신성 | 최후통첩 | 로마의 비가 16 | 로마의 비가 18 | 기억하라 | 베니스 경구 6 | 베니스 경구 14 | 베니스 경구 18 | 베니스 경구 30 | 아, 제우스여, 나는 왜 덧없는 것일까요? | 고프타의 노래 | 호의적인 분들께 | 5월의 노래 | 보물 찾는 이 | 걸어 다니는 종 | 여행 준비물 | 작별 | 경고 | 라인강과 마인강

3부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 | 3월 | 외로움에 젖어 사는 사람은 | 그리움을 아는 사람만이 | 문마다 조심히 다가가 | 이별 | 잃어버린 첫사랑 | 양치기의 한탄 | 미뇽에게 | 미뇽 | 마왕 | 툴레의 왕 | 마법사의 제자 | 호흡에는 | 고백 | 현상 | 분열 | 오만하고 당당하게 | 거룩한 갈망 | 이야기책 | 아, 사랑이여! | 헛된 위안 | 다섯 가지 | 말을 타고 대장간 앞을 지나도 | 정직했던 만큼

4부 나를 울게 두오!

나는 어디서 왔을까? | 하나씩 하나씩 떠난다 | 인생은 거위 게임 | 관대한 자 사기당하고 | 밝고 착한 사람 있으면 | 방랑자의 여유 | 프랑스어를 쓰든 영어를 쓰든 | 세상에서 그대 무엇을 하는가 | 행운이 찾아왔을 때 | 그 어떤 때라도 | 거미 한 마리 때려잡고 | 초대 | 은행나무 이파리 | 수북한 덤불에서 | 보름달 밤 | 취해야 하리, 우리 모두! | 나 홀로 앉아 있네 | 취했다 하여 | 술 따르는 소년 | 고약한 할망구 | 조개를 떠난 진주 | 어느 황제에게 재무관이 둘 있었지 | 좋구나 | 은혜 입은 동물들 | 잘 자라 | 나를 울게 두오!

저자 소개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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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 Wolfgang von Goethe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 독일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1749년 8월 28일 마인 강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법학을 공부한 황실 고문관이었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와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부족할 것 없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틴어 등 어학에 뛰어났으며 독서량도 많았다. 어렸을 때 라틴어와 그리스어, 불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와 히브리어를 배웠고, 미술과 종교 수업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첼로 그리고 승마와 사교춤도 배웠다. 괴테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2000권에 달하는 법률 서적을 비롯한 각종 문학 서적을 거의 다 읽었다고 한다.

괴테는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1765년부터 1768년까지 당시 “작은 파리”라고 부르던 유행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전공인 법학 강의보다 문학 강의를 더 열심히 들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다.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프랑크푸르트에서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에 더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 쓴 작품은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괴츠 폰 베를리힝겐』과 『초고 파우스트』와 같은 드라마와, 문학의 전통적인 규범을 뛰어넘는 찬가들을 쓰게 된다. ‘질풍노도’ 시대를 여는 작품인 『괴츠 폰 베를리힝겐』이 1773년 발표되자 독일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는데, 독일에서 드라마의 전통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있던 프랑스 고전주의 극을 따르지 않고 최초로 영국의 셰익스피어 극을 모방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센의 왕까지 가세한 이 논쟁으로 인해 괴테는 독일에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1768년 건강상의 이유로 요양 생활을 했는데, 그 무렵 신비주의와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770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법학 공부를 위해 머물다가 헤르더를 알게 되면서 셰익스피어 문학에도 심취했다. 변호사가 된 그는 1772년 제국 고등법원의 실습생으로서 몇 달 동안 베츨러에 머물렀다. 이때 이미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는 아픔을 겪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44)을 써, 문단에 이름을 떨쳤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까지 일어나는 등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774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괴테는 일약 유럽에서 유명 작가가 되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젊은 작가를 만나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몰려들었다.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제2의 고향이 되는 바이마르로 가서 공작의 고문이 되고 1782년에는 귀족 반열에 들었다.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괴테의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이 여행을 통해 그는 고전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794년부터 실러가 기획한 잡지에 협력하여 우정을 맺은 괴테는 이후 실러의 격려와 이해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작품을 완성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에 다시 손을 댄 것도 이 시점이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던 괴테를 18세에 불과했던 바이마르(Weimar)의 카를 아우구스트(Karl August, 1757∼1828) 공작이 초청했다. 처음에는 잠시 체류하면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괴테는 이미 유럽에 널리 알려진 유명 작가로 그곳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았고, 빌란트(Wieland)를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바이마르의 예술적 분위기와 첫눈에 반해 버린 슈타인 부인의 영향으로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괴테에 대한 공작의 신임은 두터웠고 공국의 많은 일들을 그에게 떠맡기게 되었다.

여러 해에 걸친 국정 수행으로 인한 피로와 중압감으로 심신이 지친 괴테는 작가로서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바이마르 궁정을 벗어나 이탈리아로 여행을 감행했다. 1년 9개월 동안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괴테가 느꼈던 고대 예술에 대한 감동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얻게 된 고대 미술의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도와 절제의 정신을 자기 문학을 조절하는 규범으로 삼아 자신의 고전주의(Klassik)를 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문학사에서는 괴테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1788년부터 실러가 죽은 1805년까지를 독일 문학의 최고 전성기인 “고전주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괴테와 실러는 바이마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고전주의 이상을 실현하는 활동을 했는데,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유형(類型)”을 통해 “유형적인 개성”으로 고양(高揚)되는 과정을 추구했던 것이다. 괴테와 실러의 상이한 창작 방식은 상대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어 결과적으로 위대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실러의 격려와 자극으로 괴테는 소설『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를 1796년에 완성하고, 프랑스 혁명을 피해 떠나온 피난민들을 소재로 한『헤르만과 도로테아』를 1797년에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미완성 상태의 『파우스트』작업도 계속 진행해 1808년에 드디어 1부를 완성하게 된다.

실러는 지나친 의욕과 격무로 인해 1805년 5월 46세의 나이로 쓰러지는데, 실러의 죽음은 괴테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1815년 나폴레옹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바이마르 공국은 영토가 크게 확장되어 대공국이 되었다. 괴테는 수상의 자리에 앉게 되지만 여전히 문화와 예술 분야만을 관장했다. 1823년『마리엔바트의 비가』를 쓴 이후로 괴테는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저술과 자연연구에 몰두해 대작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와『파우스트 2부』(1831)를 집필하게 된다. 서사시와 서정시, 산문과 시극, 비평과 수기, 4편의 소설과 1만여 통의 편지를 남긴 괴테는 독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의 태동기에 독일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832년 3월 22일 낮 1시 반, 괴테는 심장 발작으로 사망한다. 그는 죽을 때 “더 많은 빛을(Mehr Licht)” 하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3월 26일 바이마르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이 누워 있는 왕릉에 나란히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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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8년간 근무했다. 이후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져 독일 뉘른베르크 발도르프 사범학교에서 유학했다. 현재 바른번역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비투스』, 『호르몬과 건강의 비밀』, 『밤의 사색』 등 8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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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1월 2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530g | 143*210*20mm
ISBN13
9791162183250

책 속으로

괴테는 타고난 직관과 상상력으로 만물에서 시적인 영감을 구한 사람이다. 일곱 살에서 인생의 만년까지 겪은 인생의 온갖 희로애락을 시에 온전하게 녹여내는 창작을 쉰 적이 없었다. 괴테의 서정성 짙은 시들을 가사로 삼은 슈베르트와 모차르트의 가곡들이 당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가 시성(詩聖)이라는 면류관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음을 입증한다.
---「추천의 말」중에서

나를 울게 두오! / 끝없는 사막에서 밤에 에워싸여 울게 두오 / 낙타들이 쉬고, 몰이꾼도 쉬고 / 아르메니아인 조용히 앉아 돈을 헤아릴 때 / 나, 그 곁에서 먼 길을 헤아리네 / 나와 줄라이카를 갈라놓는 먼 길, / 그 길을 더 길게 늘리는 야속한 굽이굽이 자꾸 되풀이되네 / 나를 울게 두오! / 우는 건 수치가 아니라오 / 우는 남자들은 선한 사람이었다네 / 아킬레우스도 그의 브리세이스 때문에 울었다오! /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무적의 군대를 위해 울었고 /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 친구를 생각하며 울었지 / 나를 울게 두오! / 눈물은 먼지에 생명을 준다오 / 벌써 푸릇푸릇하구나
---「나를 울게 두오!」중에서

거인족의 오만에 맞서 누가 나를 도왔던가 / 누가 죽음으로부터 나를 살리고 / 노예 상태에서 나를 구했던가 / 성스럽게 불타는 나의 마음이 / 모든 것을 스스로 완성하지 않았더냐 / 젊고 선량한 나의 마음은 / 저 높은 곳에서 잠자는 이에게 기만당한 채 / 구원에 감사하며 타오르지 않았더냐 // 너를 공경하라고? 무엇 때문에? / 너, 무거운 짐에 짓눌리는 자의 고통을 / 한 번이라도 덜어준 적이 있는가? / 너, 겁먹은 자의 눈물을 / 한 번이라도 닦아준 적이 있는가? / 나를 남자로 단련시킨 것은 / 전능한 시간과 나와 너의 주인인 / 영원한 운명이 아니었더냐 // 어린 소년의 원대한 꿈이 / 모두 무르익지 않았다 하여 / 내가 삶을 증오하고 황야로 도망칠 거라 / 너 혹시 착각하는가? // 나 여기 앉아 / 나처럼 괴로워하고, 울고, 즐기고, 기뻐하고, / 나처럼 너를 공경하지 않는 / 나를 닮은 족속을 빚어내노라
---「프로메테우스」중에서

가라! 내 지시를 따르라 / 젊은 날을 유익하게 쓰고 / 제때에 배워 더 영리해져라 / 운명의 커다란 저울은 / 평형을 이루는 일이 거의 없으니 / 위로 오르거나 아래로 내려갈 수밖에 없노라 / 지배하고 승리하거나 / 복종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노라 / 개선 행진을 하거나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노라 / 망치가 되거나 모루가 될 수밖에 없노라

---「고프타의 노래」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두르지도 않으나 걸음을 멈추지는 않으리라,
삶과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쓰는 기쁨으로 피어나다

혹자는 괴테를 “항구에 정박하지 않고 항해하는 배”라고 말하였다. 근심에 찬 무수히 많은 밤들, 충족되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발걸음, 삶과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그의 탐구가 괴테로 하여금 안주하지 않고 생애 내내 바다를 헤매게 하였으리라. 거기에는 낙천적이면서도 회의적인 성격도 한몫하였으리라. 서두르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면서 탐구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자기의 세계를 확장해 나간 괴테! 그의 시 작품을 보지 않고 문학과 철학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이네, 니체, 엘리엇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그를 향해 깊은 경외감을 표현하며 추앙한 이유, 괴테의 시를 더욱 가까이 두고 읽으며 발견하길 바란다. 아울러 누구보다 평범하고 솔직했던 괴테를 발견하길 바란다. 괴테를 직접 만난 나폴레옹이 “여기 인간이 있다.”라고 그를 가리켜 말했듯이, “수많은 괴로운 밤을 울며 지새운”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독자라면, 똑같이 고뇌하고, 울고 웃고, 방황하고 도전하였던 괴테를 만나 깊은 위로를 받고 삶의 기쁨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쓰는 기쁨]-괴테 시 필사집《나를 울게 두오!》에는 바이마르 초창기부터 생애 끝자락까지 쓴 괴테의 시 중 100편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 시마다 더욱 깊이 있게 숙독할 수 있도록 필사란을 마련하였기에 음미하고 마음을 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에 대한 찬미, 첫사랑을 위한 노래, 고전의 아취, 인생 경험에서 길어낸 자양분을 머금은 아포리즘들로 이루어진 괴테 시집을 고요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필사하는 시간, 자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멋진 투자가 아닐까 싶다.

추천평

누구나 살다 보면 울 때가 있고 웃을 때도 있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울 때 목 놓아 울고 웃을 때 힘껏 웃는다. 자기감정을 속이지 않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선량한 사람일 것이다. 밤의 사막 한가운데서 혼자 우는 사람이 그렇듯이. 어느 호젓한 저녁, 나는 ‘울기 좋은 방’을 떠올리며 《나를 울게 두오!》를 읽는다. 쓰러진 자에게 일어설 용기를, 복잡한 감정을 단순하게 만들 영감을 주는 시에 진실로 감사하며! -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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