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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보의 발걸음(산책지도)
머리말 01 조선신궁에서 세브란스빌딩까지, 근대의 탄생 (오창은 / 문학평론가) ≪사랑과 죄≫ ≪만세전≫ : 1920년대 경성과 식민지 문화 권력 경성 유람의 명소, 조선신궁 1920년대 경성 풍경을 그린 ≪사랑과 죄≫ 근대의 스펙터클, 신궁의 문화 권력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 1918년, ≪만세전≫과 남대문역 주변 풍경들 ‘전근대와 근대’, ‘제국과 식민’, ‘도쿄와 경성’ 사이에 선 근대적 개인 세브란스병원, 3·1운동의 기념비적 장소이자 근대의 새 질서가 싹트던 곳 식민지 감시 권력의 사각지대 민족운동의 진지이자 고단한 망명의 출발지, 경성의 심장은 살아 있다 02 북촌과 남촌, 그리고 경계에 선 사람들 (이민호 / 시인) ≪삼대≫ : 1930년대 경성, 근대의 화려한 진창 속에서 탈주하는 청춘들 북촌과 남촌, 멸망한 조선의 공간과 식민의 공간들 수하동의 솟을대문, 소설 ≪삼대≫의 뿌리 북촌, 탈선과 몰락의 공간 몰락의 공간에도 민중의 역사적 진보가 깃들다 남촌 진고개의 빠커스, 화려한 근대의 진창 속 분칠한 냄새 가득한 곳에서도 ‘연민’은 싹트고 서촌, 식민지 청년들의 정체성 찾기 경계의 빙렬氷裂에서 미래 경성의 유토피아를 꿈꾸다 03 경성에서 럭키 서울로, 해방 공간의 들끓는 욕망 (고영직 / 문학평론가) ≪효풍≫ '두 파산' : 치열한 리얼리스트의 눈으로 본 1940년대 서울 SEOUL SEOUL 럭키 서울, 소설 ≪효풍≫과 해방 공간 미쓰이三井 물러가니 ‘미국 미쓰이’ 왔나 노여운 것도 울어야 할 것도 이 시대인가 ‘최신’ ‘최고’ 유행지 명동과 영어 열풍 “Yes, All right, No만 갖고 통역한 사람도 있었어요” 흑석동 또는 이상적 주택향住宅鄕 ‘딸라 외교’와 낙랑클럽, 그리고 ‘적산 가옥’ 한강은 오늘도 유유히 흐른다 ‘형질 변경’된 광화문 네거리에서, '두 파산'의 풍경 우리는 모두 부채 인간이다 04 시간의 주름에 각인된 기억들 (정우영 / 시인) ≪취우≫ : 1950년대 서울, 전쟁의 긴 그림자 시간의 주름을 펴다, 소설 ≪취우≫와 한국전쟁 사랑이라는 낭만의 외피를 걸친 공포의 내면 ‘딸라’로 표출되는 자본의 힘, 진취적인 현대 여성의 원형 치욕의 용산, 돌아가는 삼각지 점령지의 신음을 끊어내고, 전쟁기념관이 아닌 평화기념관을 혜화동 로터리에서, 격동의 시간을 견딘 도시의 신음 05 나는 내가 사는 현실을 묘사한다 (오창은 / 문학평론가) '임종', 1960년대 4·19혁명과 문인의 임종 빈곤을 견디다 4·19혁명과 원로 문인의 자존심 시사약귀視死若歸, 죽음은 본래 난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 방학동 천주교 묘지에 서서, 문학의 숨결을 느끼다 06 소설가 횡보 씨의 삶을 만나다 (김재희 / 소설가) 경성의 소년, 별을 그리다 청년 리얼리스트의 탄생 경성, 근대화의 감각을 묻다 세계문학적 지평을 열다 해방, 만주에서 한반도로 경성에서 서울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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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조선신궁에서 세브란스빌딩까지, 근대의 탄생
일제는 한양의 역사적 흔적을 지우는 방식으로 조선신궁을 건립했고, 해방 이후 한국은 조선신궁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백범 김구와 성재 이시영 선생, 그리고 안중근 의사를 기념하는 공간을 조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조선신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신궁이 남긴 식민지 지배의 상처는 공간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극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굴종의 역사’가 반복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02 북촌과 남촌, 그리고 경계에 선 사람들 서촌은 일제라는 권력의 앞마당과 같았던 장소입니다. 하지만 서촌에 사는 사람들을 열린 공간에서 바라보게 되면 그들만의 자주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촌은 염상섭이 나고 자란 곳입니다. ≪삼대≫ 의 김병화와 홍경애가, 조덕기와 필순이 자신들의 타자적 모순을 벗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부활하는 공간입니다. 이는 ≪삼대≫ 속 젊은이들이 종속적인 삶을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바꾸어 재생하기를 소망하는 1930년대 경성 사람들의 유토피아적 욕망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서촌은 1930년대에 국한되지 않고 지금까지 경성(서울)의 눈부신 공간에 스며든 금무늬와도 같습니다. 03 경성에서 럭키 서울로, 해방 공간의 들끓는 욕망 지금의 명동 거리에서 ≪효풍≫ 시절 명동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좀처럼 명동 거리는 배회와 머무름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명동에는 창문과 시계가 없는 백화점과 할인 매장이 무수히 많습니다. 어쩌면 경요각의 후예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오늘 같은 날에는 옛 미도파백화점 5층인가 6층인가에 있었다는 ‘시베리안 클럽’ 같은 곳을 찾아 문 닫을 때까지 죽치고 앉아서 흘러간 옛 노래 따위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부르고 싶어집니다. 가수 현인이 영어로 불러 큰 인기를 모은 '유아 마이 선샤인', '대니 보이' 같은 노래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04 시간의 주름에 각인된 기억들 염상섭에게 용산과 삼각지는 플롯의 배경이고 ≪취우≫의 강순제와 신영식에게는 사랑의 변곡점이겠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그곳은 전쟁기념관으로 남아 있습니다. 전쟁을 ‘기념’한다니, 한국전쟁의 폐허와 비참을 소설로 기록해둔 염상섭이 들으면 피를 토할 일입니다. 참상을 ‘기념’하는 나라가 과연 이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요. 전쟁광 아니라면 명명할 수 없는 이름인 ‘전쟁기념관’이 버젓이 삼각지에 서 있습니다. 호전주의와 군국주의의 발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05 나는 내가 사는 현실을 묘사한다 모든 죽음은 개별적입니다. 그 개별성이 죽음을 공포스럽게 하지요. 해명이 불가능한 불안을 오로지 혼자 감당해야 하기에 ‘공포와 절망’의 감각은 필연적이겠지요. 그 개별적인 죽음을 지켜봐야 하고 수습해야 하는 가족들의 심경은 찹찹하기만 합니다. 염상섭은 삶에 대한 집착은 ‘생의 본능’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완성에 대한 집착이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숙명적 상황에 직면해서 인간은 과연 의연히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염상섭은 시사약귀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마치 자신이 나온 본고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의미지요. 06 소설가 횡보 씨의 삶을 만나다 보통 위인들의 동상은 거대함을 뽐내듯이 한 손을 번쩍 쳐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서있기 마련인데 이 동상은 벤치에 왼팔을 턱 하니 걸치고 무연한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른 다리도 왼 다리 위에 꼰 상태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앉아 있습니다. 오가던 사람들은 하나 둘 그 옆 팔 둘레 안으로 들어와 사진을 찍고 미소를 짓고 남자를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이 남자는 바로 염상섭입니다. 술을 먹고 옆으로 걷는다 하여 ‘횡보’라는 별명이 붙은 소설가입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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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보 염상섭 글쓴이, 독자, 세 개의 시선으로 둘러보는 경성과 서울의 골목과 거리
경성과 서울을 세 개의 시선으로 이어주는 경성-서울 산책 안내서. 이 책은 한국문학사의 거목이자 근대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인 횡보 염상섭의 문학작품 속 공간(경성/서울)을 통해, 역동적인 근대의 탄생과 진화 과정을 엿보는 도시 에세이다. 식민지배로 절망과 도탄에 빠진 구한말 조선의 모습, 양면성을 지닌 근대 문명을 바라보는 식민지인들의 기쁨과 좌절,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 그리고 전쟁의 긴 그림자를 거쳐 자본의 욕망이 싹트는 럭키 서울에 이르기까지, 서울내기 사실주의 작가 염상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본 ‘근현대 경성과 서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흔히 한 도시의 생성과 변화 과정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오래된 고풍스러운 공간과 건축물이 자아내는 전통 공간과 새롭게 생성되는 첨단의 공간이 어우러져, 마치 지층처럼 포개지고 섞여 있는 것이 일반적인 도시의 모습이다. 하지만 서울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도시의 모습을 바꿔왔다. 식민지 시대와 압축된 산업화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옛것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사라져, 이미 책이나 사진 등 기록매체 속에나 자리할 뿐 눈앞에서는 그 흔적조차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한국전쟁은 단시일 내에 서울을 폐허로 만들어버렸고, 그 위에 생성된 도시 공간은 다시 자본주의 개발 논리에 밀려 ‘첨단’에게 모조리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그렇기에 긴 시간 혹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서울을 산책함에 있어 자신의 눈으로만 오롯이 전체를 살펴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 시대의 책 속에 담긴 모습과 그 모습을 해석한 풍경, 그리고 지금 눈앞의 모습을 포개어 살펴보는 세 개의 시선이 없으면 서울은 그저 빤질빤질한 산업용 건축자재만이 드러나 있는 밋밋한 공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근대문학유산의 자취를 따라 걷는 도시 산책은 어쩌면 우리에게 유일한 시간여행 방법일지도 모른다. 마치 발자크의 작품 속에 19세기 초 프랑스 파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듯이, 서울 토박이인 염상섭의 작품 속에는 20세기 초중반 (이제는 우리의 기억에서조차 지워져버린) 서울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횡보 씨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그의 작품이 지닌 문학성뿐만이 아니라, 지난 세월의 그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로 그들을 다시 이곳으로 복원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에서 염상섭의 작품 속 경성/서울의 골목과 거리를 따라 걷는 이들은 염상섭의 후예들, 즉 오늘의 젊은 시인과 소설가, 문학평론가 들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다시 이들을 따라 걸으며 100여 년 전의 서울 거리를 상상 속에서나마 만날 수 있다. 시공을 초월한 듯 복고적인 정취가 가득한 글을 읽으며 그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고 또 가로지르기도 하며 종횡무진 산책하는 독자들의 발걸음으로 마침내 이 책은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