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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마르틴 루터의 경이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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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g G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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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유럽을 휩쓴 종교개혁 폭풍은 유럽을 황폐화시킨 동시에 정화시켰다. 폭풍의 전조는 로마에서 시작됐다. 로마 교회는 성 베드로 대성당 신축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부패한 교회 지도자들은 건축자금을 신속히 모으기 위해 교구민들에게 ‘면죄부’라는 영적 특전을 팔기로 결정했다. 교황의 사자(使者)가 서명한 문서인 면죄부는 연옥의 ‘형기 감면’을 보장했다. 로마 가톨릭 전통에 따르면 연옥은 믿는 자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 불로 연단받고 죄를 태우는 고통의 장소였다.
면죄부 판매는 활기를 띠었다. 생각해 보라. 여기 아내를 사랑했던 한 남자가 있다. 그에게는 면죄부를 살 수 있는 돈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는 죽은 아내가 연옥의 불길 속에서 당할 한없는 고통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과연 그는 이 돈으로 아내가 아닌 멀쩡하게 살아 있는 아이들만을 위해 빵을 살 만큼 이기적일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는 분명 자신과 가족은 로마 교회에서 요구하는 돈 몇 푼 정도야 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돈에 대한 로마 가톨릭교회의 굶주림은 채워질 줄 몰랐다. 자금이 필요한 곳은 성당만이 아니었다. 전쟁도 준비해야 했고, 황제 대관식도 치러야 했으며, 영향력과 권세와 영광도 얻어야 했다. 하나같이 돈 드는 일이었다. 교회는 어떻게든 더 많은 돈을 마련해야 했다. 결국 번개가 내리쳤다. 그 주인공은 젊은 성직자 마르틴 루터였다. 그는 면죄부의 남용을 비판했고, 교회의 교서나 심지어 교회의 최고 권위자인 교황까지도 거침없이 비판하며 성경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했다. 루터의 주장으로 근본적인 변화의 바람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엄청난 신학적·정치적 폭풍이 불어 닥쳤다. 우리는 책장을 넘기면서 이 16세기의 오디세우스가 내딛는 발걸음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험으로 가득 찬 그의 삶을 훑어볼 것이다. 그는 은혜가 없던 시대에 은혜를 위해 싸웠다. 회칠한 무덤에서 파낸 유골에 키스하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이제 하나님의 아들에게 키스하라고 권고했다. 온갖 거래에 대한 제의와 타협의 달콤한 목소리들이 이제 그만 돌아서라고 유혹할 때도 성경의 돛대에 자신을 묶고 진로를 고수했다.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폭풍 속에서도 자신이 믿는 진리와 정의를 굳게 지켰다. 마르틴 루터는 그 방법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직접 보여 주었다.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가 들려온다. - '머리글'에서 --- 머리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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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화신 마르틴 루터!
그러나 그 익숙한 이름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무지한가? 평생 논쟁의 중심에 서 있던 그에게서 우리는 여섯 자녀를 사랑했던 다정한 아버지의 얼굴을 상실하였다. 한 여인과의 사랑에 빠진 루터를 알지 못하였다. 기도의 사람, 놀랄 만한 자제력을 가진 사람 루터에게서 감정적이고 야비하며, 욱 하는 격한 성격에다 외설적인 언사를 내뱉던, 우리와 다름없던 또 하나의 인간 루터를 우리는 보지 못하였다. 단지 종교개혁자로만 머물지 않았던 마르틴 루터!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렇게 격렬한 폭풍의 한복판으로 그를 불러 세우신 하나님의 놀라운 의도를 발견한다. 일개 인간으로서 무자비한 적들 앞에 그토록 당당하고 용감하였던 비밀을 우리는 비로소 이해한다. 이것이야말로 《소설 마르틴 루터》의 힘이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하여 우리를 개혁하는 진정한 개혁자로 우리들 속에서 태어난다. 우리는 왜 ‘마르틴 루터’를 소설로 읽어야 하나? 우리는 마르틴 루터에 대해 종교개혁의 화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 익숙하다. 마르틴 루터에 대한 이러한 우리의 이해는 자칫 나무의 뿌리와 줄기, 그리고 잎을 보지 못한 채 단지 꽃만 보고 감탄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마르틴 루터가 위대한 종교개혁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인간 마르틴 루터의 진솔한 태도를 발견하는 일은 어쩌면 거대한 종교개혁의 그늘에 가려진 뿌리요, 줄기요, 잎이기도 하다. 그래서이다. ‘개혁’이라는 단어조차 개혁되어야 할 오늘의 한국 교회는 지금《소설 마르틴 루터》를 읽어야 한다. 한국 교회는 진정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소설 마르틴 루터》에서 비로소 여섯 자녀를 사랑한 다정했던 아버지 루터의 얼굴을 발견하며, 한 여인과의 사랑에 빠진 루터를 만난다. 그가 기도의 사람, 놀랄 만한 자제력을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감정적이고 때로는 야비하며, 욱 하는 격한 성격에다 외설적인 언사조차 거침없이 내뱉던, 생소하기 짝이 없는 또 하나의 인간 루터를 만난다. 더욱이 종교개혁자 이전에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우리와 닮아서 더 가까운 마르틴 루터에게 이르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렇게 격렬한 폭풍의 한복판으로 그를 불러 세우신 하나님의 놀라운 의도를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소설 마르틴 루터》가 갖는 힘이다. 이 소설을 통하여 우리는 한국 교회를 개혁하는 진정한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얼굴을 새길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