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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부 감사의 말 |
Scott Alexander Ho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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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진 않지만, 아버지를 생각하면 꼭 여름날의 과수원이 떠오른다. 햇볕은 뜨거웠지만 나무 아래 공기는 서늘하고 나긋했다. 아버지와 나는 손을 잡고 맨발로 과수원을 걸어 다녔다. 높게 자란 풀 사이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노라면 농익어 떨어진 버찌 열매가 발바닥 아래에서 터졌고, 그럴 때마다 어쩐지 느리고 푸르른 땅의 거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수원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아버지가 나를 번쩍 안아 과수원의 경계인 돌담 위로 올려주었다. 그러면 눈앞에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둥그스름한 산기슭을 향해 들갓 밭이 한없이 뻗어나갔고, 태양은 구름 뒤에서 희게 빛났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짜릿한 슬픔과 엇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이후로도 탁 트인 공간이나 쓸쓸한 경계 지역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때와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익숙한 세상의 고독한 끝자락에 존재하는 그런 느낌.
--- p.20 에드메의 부모님이 이곳에 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에세이 주제가 아닌 현실에서, 다른 밸리의 방문을 승인받을 수 있는 사유는 사별뿐이었다. 산 너머 20년 이후의 삶을 사는 동부 밸리의 세상에는 에드메가 죽고 없는 게 틀림없었다. 피라 부부를 알아봤던 그 순간, 나는 그들이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제는 죄책감이 들었다. --- p.40 “심사 프로그램은 다른 사람의 슬픔을 저울질하는 일이라고 네가 그랬잖아……. 만약 그게 네 직업이 된다면 아마 너는 슬픔에 점점 익숙해질 거야. 마치 슬픔이라는 감정 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너희 아버지 일이 있고 나서 너희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일을 너는 겪지 않도록 너를 보호하려고 노력하시는 건 아닐까?” --- p.117 “현재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연약한 것이죠.” --- p.133 “자기 존재를 무효화하려면 우선 존재해야 하잖아요. 제 말이 맞죠?” 이브레 선생님이 눈을 아주 부드럽게 뜨고 답했다. “아닙니다. 서쪽으로 간 사람이 거기서 개입을 일으키면, 시간이 파도처럼 그를 덮쳐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삼켜버립니다. 아주 단순하고 무자비하게.” --- p.137 혼자 있을 땐 내가 연못에서 목격한 장면과 나와 에드메의 우정을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에드메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사실은 그의 앞날을 알게 됐기 때문은 아닌지, 아니면 은밀한 자신감이나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나는 먼 미래를 아직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어둠 속에 가두어두려고 노력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확실성, 말조차 금지된 슬픔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 p.140 어쩌면 완벽한 경고문을 만들어내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무슨 일이든 내년 봄에 닥칠 사건을 에드메가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자문 기관이 이를 알게 됐을 때 내 말에 어떤 의도도 담기지 않았었다고 판단할 정도로 미묘하고 완벽한 경고문 말이다. 물론 그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그 일을 직접 거론하지 않으면서 섬세하게 경고할 수 있을까. --- p.171 |
운명을 바꾸는 선택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동쪽으로는 20년 후의 미래, 서쪽으로는 20년 전의 과거의 시간이 흐르는 동일한 마을이 있다. 마을과 마을 사이는 철책으로 단절되어 있어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다.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만, 고위 공무원인 자문관의 허가를 받아서 비밀리에 과거나 미래의 마을을 방문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읜 오딜 오잔은 다른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과거나 미래를 방문한다고 해도 진정한 위로는 받을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딜은 우연히 동쪽 마을에서 온 방문객을 목격하고 곧 그들이 에드메의 부모님인 것을 알아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딜이 사랑하는 에드메의 죽음이 곧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예정된 사건을 막으면 시간의 흐름을 바꾸고 마을 전체에 걸쳐 혼돈과 절멸을 초래할 수 있기에 오딜은 쉽게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 오딜은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것과 질서에 순응하는 것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충분히 애도한 사람만이 안다. 과거를 구원할 수 있는 건 오직 현재라는 것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죽음이나 소멸이 예정되어 있지만, 인간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잃었을 때 충분히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회도 이러한 상실의 고통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 겉으로 슬퍼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실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으며 현실을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애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의 계곡』 속 세계에서 슬픔을 달래기 위해 다른 시간대로 갈 수 있는 ‘애도 여행’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고 자문관의 판단으로만 허가된다. 소설 속 사회는 누가, 언제, 얼마나 슬퍼할 수 있는지까지 통제하려 한다. 마치 슬픔을 의도적으로 조절하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소외시키려는 듯이. 주인공 오딜은 이러한 사회에 완벽하게 종속된 인물이다. 아버지를 잃은 자신의 슬픔마저 외면하고 ‘누군가 애도의 뜻을 표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고 독백할 정도다. 그러한 오딜에게도 더는 회피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에드메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오딜은 마을 전체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에드메에게 운명을 피할 방법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망설이는 사이 사고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벌어진다. 이제 시간의 경계를 가르는 철책 앞에서 오딜은 선택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감정을 억누르고 질서에 따르며 슬픔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자신이 회피해 온 모든 상실과 슬픔을 마주하고 사회에 맞서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예정된 죽음을 알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현재를 살 것인가? 『시간의 계곡』은 상실이 가져다준 성장을 이야기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저자 하워드는 한 인터뷰에서 어린 나이에 절친한 친구를 잃은 뒤 큰 슬픔에 빠진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에게 무한한 시간이 펼쳐져 있으며 앞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줄곧 걸어왔던 철학자의 길에 의문을 품고는 작가가 되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간의 계곡』 속 오딜의 상황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미처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하워드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자문관이 되기를 동경했으나 평생 서류를 처리하는 단순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오딜의 어머니는, 딸이 반드시 자문관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오딜이 다른 직업을 선택할 여지를 전혀 주지 않는다. 그렇게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오딜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문관이 되기 위해서 몰두한다. 하지만 에드메의 운명을 알게 된 뒤로 인생이 뒤흔들린 오딜은 결국 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안락함이 보장된 자문관의 삶을 포기한다. 하워드는 작가의 길을 걷게 된 자신의 선택이 옳았던 것과 달리, 오딜의 선택은 실수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딜이 순간적으로 저지른 ‘실수’야말로 그동안 회피했던 모든 감정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게 되는, 운명에 맞서는 첫 번째 시도가 된다. 그렇게 『시간의 계곡』은 상실을 겪은 우리에게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무언가 빛나는 것을 건져 올려준다. 마치 정해진 운명에 맞서 자신의 의지로 자아를 찾아가는 오딜의 삶처럼. |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언급한 질문들을 떠올렸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소설은 20년 전 과거, 그리고 20년 후 미래의 평행우주 사이 경계에 선 주인공이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렇다”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그려간다. 인간이란 늘 선택하고 후회하며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어떤 인간은 결국 옳은 방향을 향해 행동하지 않는가. 혼탁한 시대, 희망이 필요한 모든 이들에게 권한다. -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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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즈오 이시구로, 테드 창, 무라카미 하루키…… 그들과 나란히 놓일 놀라운 데뷔작.” - 조 하킨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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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숙명, 자유의지를 다룬 눈부신 데뷔작.” - [토론토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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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존하지 않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거대한 세계.” - [더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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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사랑, 후회가 모두 담긴 감동적인 사고 실험.” -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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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페이지 터너.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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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 가슴 아픈 이야기. 놀랍도록 독창적인 시간 여행 소설.” - [폴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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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뒤흔드는 철학적 스릴러.”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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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도록 독특하고 도발적인 전제, 섬세하게 직조하다 짜릿하게 터뜨리는 클라이맥스.” - [셸프어웨어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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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쓰인 승리.” - [북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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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구조의 점보제트기 같은 이야기지만 마지막까지 위풍당당하게 착륙시키는 작가의 솜씨가 돋보인다.” - [뉴사이언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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