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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시인의 말
10 미리벌의 노래 15 제가 똥통에 넣었습니다 -동화학교 을강 선생님 전 16 밀양도 가만있을 수 없소이다 -3·13 밀양 만세운동 26 사명대사, 만해 스님의 뜻을 따랐을 뿐 -1919년 4월 4일 단장면 만세운동, 한산 이장옥 34 조선 순사와 일본 순사의 대격투 -1920.9.12. 영남루 연회에서 41 이건 폭탄이 아니외다 -밀양경찰서에 심장을 던진 청년 최수봉 53 그해 여름, 고원섭 -1920년 괴질(怪疾), 호역(虎疫), 호군(虎軍) 55 나라 잃은 청년들 앞에 서다 -밀양의 어른, 백민 황상규 선생 66 혹부리 이상관 약전 -조선혁명군 재정부장 70 그이, 고원섭 여사 -1923년 밀양 72 포아통학이라니 -1923년 7월, 밀양여자야학 73 밀양여자청년야학 고원섭 선생님께 -1924.3.29. 제1회 졸업생 박순덕, 윤명이 76 그때 남천강 배다리에서는 -1925~1927년 신문에 난 몇 장면 81 소년의 힘으로 우뚝 서는 나라 -밀양소년회 김종태, 박해쇠 94 삼랑진에서 고독한 별 -1928년 6월 98 삼랑진 사과밭에서 -1928년 7월 100 오로지 하나만 빼고 -일신여학교 동무들에게, 박차정 103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최준례 묘비 105 조선어학회 여러 선생님들께 -1934년 5월, 의령에서 107 연희전문학교 문과 교수 최현배 선생 지은 -『시골말 캐기 잡책』(1936) 109 밀양유족회 김봉철 씨 -약산 김원봉의 동생 117 곰티재와 안태 골짜기에서 -밀양 보도연맹 희생자들 122 그 지하실에서 6박 7일 -경남대학교 정인권, 1979.10.21~27. 124 그날의 벽 -포고문 계엄 제1호(1979.10.18.) 125 오빠의 사흘 -부산대학교, 1979.10.16~18. 130 어떤 사진 -가자지구 라파, 공습으로 주저앉은 건물 앞 132 바라건대 새해에는 136 후기 - 가시를 걷어찬 밀양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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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만수가 ‘조선 독립 만세’ 깃발을 이장수에게 건넸다.
이장수가 ‘조선 독립 만세’ 깃발을 최종관에게 건넸다. 윤치형은 두루마기 속에서 ‘조선독립신문’을 꺼내어 윤차암에게 건넸다. 윤차함은 ‘조선독립신문’을 권문득에게 건넸다. 권문득은 ‘조선독립신문’을 김상득에게 건넸다. 김상득은 ‘조선독립신문’을 장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박작지, 엄청득, 노재석, 김상이, 윤방우는 함께 외쳤다. 조선 독립 만세! 조선 독립 만세! 조선 독립 만세! (……) --- 「밀양도 가만있을 수 없소이다 - 3.13 밀양 만세운동」 중에서 밀양에는 암소 고기와 막걸리가 명품이지요. 어느새 고기를 사 와서 볶더니 막걸리도 함께 내놓았어요. 그러곤 술을 한 잔 탁 따르더니, 자기가 쭉 마시는 겁니다. 세상에, 멍해지는데, 이번엔 저한테 한 잔 붓는 겁니다. 초면인 여자와 마주해 술을 나누면 누구나 불편하지요. 그래서 제가 그 거북한 한 잔을 먼저 마셨습니다. (……) --- 「그이, 고원섭 여사 - 1923년 밀양」 중에서 1931년 3월 29일 오전 10시 밀양소년동맹 제3회 정기대회를 개최하다. 3월 30일, 밀양소년동맹 장명길이 금지된 어린이날을 준비하다 검거되다. 3월 31일, 어린이날 기념을 금지한다는 벽보를 붙이고 다닌 밀양소년동맹 박대근이 검거되다. (……) --- 「소년의 힘으로 우뚝 서는 나라 - 밀양소년회 김종태, 박해쇠」 중에서 시골말을 캐어 모으데, 그대로 살려 내어라. 자르거나 뽑지 말라. 그대로 살려내는 일은 여러 가지 뜻으로 매우 필요한 일이네. 조선의 말들이 이렇게 살아 일어나면, 우리 안에서 조선이 늘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네. 강단을 떠나는 내 마지막 부탁이네, 제군들! (……) --- 「연희전문학교 문과 교수 최현배 선생 지은 - 『시골말 캐기 잡책』(1936)」 중에서 밖은 새카만 어둠, 속은 더 새카만 숯덩이 지금 처자식 생각할 때가 아니다. 밀양을 떠야 산다. 어둠을 헤치고 마산으로 도망한 봉철 부두에서 죽으라 일만 했다. 밀양경찰서로 잡혀간 용봉, 봉기, 덕봉, 구봉, 네 형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 --- 「밀양유족회 김봉철 씨 - 약산 김원봉의 동생」 중에서 연금 마을에서는, 일, 곱, 사, 람, 이, 붙, 들, 려, 갔, 는, 데, 곰티재와 안태 골짜기에서, 다, 죽, 었, 어. (……) --- 「곰티재와 안태 골짜기에서 - 밀양 보도연맹 희생자들」 중에서 10월 21일 밤에 끌려 들어가 27일 새벽 6시 6박 7일만에 마산경찰서 별관 지하실에서 끌려 나오니 생전 처음 보는 햇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밤, 유신의 심장에 총탄이 터진 줄도 몰랐다.) (……) --- 「그 지하실에서 6박 7일 - 경남대학교 정인권, 1979.10.21.~27.」 중에서 부수어야 하는 건 병원이 아니에요. 학교가 아니에요. 아파트가 아니에요. 마음속 숨겨 둔 증오의 폭탄이에요. 죽고 죽이는 악마들의 싸움이에요. (……) --- 「어떤 사진 - 가자지구 라파, 공습으로 주저앉은 건물 앞, ‘I LOVE U’라고 쓴 종이를 든 어린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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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에서 태어나 밀양에 터 잡고 살면서 일제와 쉼 없이 싸우며 일생을 보낸 분들을 만나면서 밀양의 정신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나라 잃은 청년들의 맨 앞에 서서 뚜벅뚜벅 걸어간 백민 황상규 선생. 7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밀양에 돌아온 그에겐 아들과 딸을 잃었다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백민은 거기서 다시 일어섰다.
1919년 3.13 밀양 만세의 시발점인 김병환 선생의 내일동 미곡상점(쌀가게). 거기다 폭탄을 숨겨 두었다가 밀양폭탄사건으로 선생은 옥살이를 한다.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밀양청년회에서 장례를 치른다. 그 밀양청년회의 터전 위에 밀양소년회가 창립되고 (…) 핵심 인물인 김종태는 개성 유년감에서 1년 징역을 살게 된다. 김종태가 갇혀 있는 동안에도 밀양소년회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이처럼 수없이 많은 이들의 싸움과 헌신 위에 오늘의 밀양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니 자못 숙연해진다. - 후기 「가시를 걷어찬 밀양 사람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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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밀양의 위대한 청년들을 기린 추모집이다. 나라 잃은 엄혹한 시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희생된 청년들의 생을 시詩로 축약한 전기문이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그들을 몇 줄로 추모하기엔 너무 일찍 꺾여버린 젊음이, 꿈이 애통하여 거듭 읽게 된다. 시인은 10여 년간 헌책방과 신문기사와 법원판결문을 뒤져가며 바래고 흩어진 흔적을 그러모았다. 미리벌의 얼과 기개, 밀양 사람들의 나라 사랑에 숙연하고 가슴 뜨거웠다. - 이진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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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발로 떠돌아도 심장은 늘 뜨거웠던 이들이 100년의 시간을 통과해 여기 이곳 밀양, 눈 밝은 시인의 시집에 스며들어 지금의 우리를 다독이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2025년 6월 3일 초판 발행된 이 시집은 가슴 졸이며 야만의 시대를 견딘 우리에게 조용한 폭탄처럼 다가왔다. 거대한 억압을 깨뜨려 소금쟁이처럼 가벼운 저마다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할 폭탄! - 김진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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