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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반양장
세창출판사 202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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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서양문화 top100 17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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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2판에 부치는 서문(1869) · 5
독일어판 제3판에 부치는 서문(엥겔스, 1885) · 8

Ⅰ · 13
Ⅱ · 31
Ⅲ · 51
Ⅳ · 75
Ⅴ · 93
Ⅵ · 121
Ⅶ · 149

옮긴이의 말 · 171
인명 색인 · 175

저자 소개 2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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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l Heinrich Marx

독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1818년 유대인 법률가 가정에서 태어나 1883년 세상을 떠났다. 헤겔철학의 영향을 받아 청년헤겔파로 활동하며 무신론적 급진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평생의 학문적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던 엥겔스와 경제학을 연구하였고,『독일 이데올로기』를 공동 집필하며 유물사관을 정립하였다. 이후『공산당선언』을 발표해 각국의 혁명에 불을 지폈다. 그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 법칙을 해명한『자본론』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전 3권으로 구성된『자본론』의 제1권은 1867년에 함부르크에서 출판되었으며, 제2권과 제3권은 마
독일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 1818년 유대인 법률가 가정에서 태어나 1883년 세상을 떠났다. 헤겔철학의 영향을 받아 청년헤겔파로 활동하며 무신론적 급진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평생의 학문적 동반자이자 든든한 후원자였던 엥겔스와 경제학을 연구하였고,『독일 이데올로기』를 공동 집필하며 유물사관을 정립하였다. 이후『공산당선언』을 발표해 각국의 혁명에 불을 지폈다. 그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 법칙을 해명한『자본론』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전 3권으로 구성된『자본론』의 제1권은 1867년에 함부르크에서 출판되었으며, 제2권과 제3권은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후 엥겔스에 의해 1885년과 1894년에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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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교수. 일본 게이오대학(2010),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2014-2015) 방문교수.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2008-2009),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2018), 통일부정책자문위원회(2020-2022) 위원 역임. 민주주의 정치이론, 한미관계 및 국제관계의 이론과 역사를 주로 강의하며, 최근의 주요 학문적 관심사는 인민주권과 헌법제정의 관계, 외교정책을 통한 전쟁 없는 새로운 국제질서와 평화체제 형성 가능성의 문제이다. 저서로는 『마르크스의 정치이론』(1999), 『고전 다시 읽기』(2007), 『실질적 민주주의』(2009), 『대통령제,
한신대학교 글로벌인재학부 교수. 일본 게이오대학(2010),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2014-2015) 방문교수.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2008-2009),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2018), 통일부정책자문위원회(2020-2022) 위원 역임. 민주주의 정치이론, 한미관계 및 국제관계의 이론과 역사를 주로 강의하며, 최근의 주요 학문적 관심사는 인민주권과 헌법제정의 관계, 외교정책을 통한 전쟁 없는 새로운 국제질서와 평화체제 형성 가능성의 문제이다.

저서로는 『마르크스의 정치이론』(1999), 『고전 다시 읽기』(2007), 『실질적 민주주의』(2009), 『대통령제,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2013),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읽기』(2017) 등이 있다. 역서에는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아담 쉐보르스키, 1995), 『기로에 선 자본주의』(앤서니 기든스 외, 2000), 『제3의 길과 그 비판자들』(앤서니 기든스, 2002), 『신학정치론/정치학논고』(베네딕트 스피노자, 2011),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칼 마르크스, 2012).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입헌독재론”(2008), “사회양극화와 젠더민주주의”(2009),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 나타난 전통과 혁명”(2010), “계급투쟁과 보통선거제의 정치적 동학”(2011), “민주공화정의 정치이론”(2014), “북핵문제에 대한 정치철학적 접근”(2014), “마키아벨리의 ‘시민형 군주’ 사상과 현대 대통령제의 정치적 기원”(2015), “『자본론』의 방법”(2016), “국민주권시대, 권력분산의 제도화와 한국대통령제 개혁”(2018) 외 다수가 있으며, 『헨리 키신저의 세계질서』(2016).를 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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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7월 10일
판형
반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152*225*10mm
ISBN13
9791166844225

책 속으로

헤겔은 어디에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은 반복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笑劇)으로 끝난다는 사실 말이다. 당통에 대해서는 꼬씨디에르가, 로베스피에르에 대해서는 루이 블랑이, 1793-1795년의 산악당(Montagne)에 대해서는 1848-1851년의 산악당이 그러하며, 삼촌에 대해서는 조카가 그러하다. 그리고 같은 모습이 브뤼메르 18일의 재판(再版)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 p.15

오래전부터 7월 왕정의 합법적 계승자로 자부해 왔던 부르주아 공화파는 이와 같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들이 권력을 획득한 것은 루이 필리프 치하에서 꿈꾸어 왔던 것과 같이 왕권에 대항한 부르주아의 자유주의적 반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에 항거하는 프롤레타리아의 봉기를 포도탄(grape-shot)으로 진압함으로써만 가능했다. 그들이 가장 혁명적 사건으로 인식해 왔던 것이 실제에 있어서는 가장 반혁명적인 사건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들의 무릎 위로 열매가 떨어지긴 했으나, 그 열매는 생명의 나무가 아니라 지혜의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 p.35~36

질서당은 어느 화창한 날 아침, 자신들이 기대고 있는 어깨가 총검으로 돌변해 있음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이] 군대를 장악하고 있다는 환상에 젖는다. 각 당파는 자신의 후방에 있는 세력은 돌려 차면서 맹렬히 공격을 가하고 자신을 밀쳐 내는 앞쪽 세력의 등에 기댄다. 이처럼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인해 각 당파가 균형을 잃고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찡그린 표정을 지은 채 괴상한 행동을 하면서 몰락해 간다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혁명은 이렇게 하강곡선을 따라 움직인다.
--- p.54

의회를 희생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고자 하는 이상과 같은 분명한 시도에 의해, 그리고 자신의 빚 때문에 자극되고 잃어버릴 그 어떤 세간의 평판도 없던 자인 이 모험가가 결사적으로 쿠데타를 감행할 수도 있다는 점증하는 위험으로 인해 국회는 계속 술렁였다. 질서당과 대통령의 불화가 위협적 형태를 띠게 된 바로 그때, 예기치 않은 사건이 대통령으로 하여금 다시 의회의 품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사건은 다름 아닌 1850년 3월 10일의 보궐선거였다.
--- p.86

혁명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잃을까 봐 전전긍긍한 질서당은 그들의 정적이 혁명의 과실을 가져가도록 허용했다. “프랑스는 무엇보다도 먼저 평온을 요구한다.” 이것은 2월 혁명 이래 질서당이 혁명에 대해 외친 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보나파르트의 교서가 질서당에 대해 외친 말이기도 했다. … “프랑스는 무엇보다도 먼저 평온을 요구한다.” 따라서 보나파르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조용히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의회 내 정당들은 혁명적 불안을 다시 야기할 것이라는 공포와 자기 계급인 부르주아의 눈에 그들 자신이 불안을 책동하는 것으로 비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마비되었다.
--- p.104

질서당은 개헌 문제에 관한 자신의 결정을 통해 [그들이] 지배하는 방법도 복종하는 방법도 모른다는 점을 증명했다. 또한 그들은 사는 방법과 죽는 방법, 공화국을 살리는 방법과 죽이는 방법, 헌법을 보존하는 방법과 그것을 폐지하는 방법, 대통령과 협력하는 방법과 결별하는 방법도 모르고 있음을 폭로했다. 그렇다면 질서당은 누가 이 모든 모순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했는가? 그들은 그것을 세월과 사건의 흐름에 내맡겼다. 질서당은 사건을 주도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
--- p.131

역사적 전통은 프랑스 농민들에게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그들에게 모든 영광을 되찾아 줄 것이라는 기적에 대한 믿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어떤 자가 불쑥 나타나서 자신을 나폴레옹으로 칭했는데, 그 이유는 단지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20여 년의 방랑생활과 일련의 기괴한 모험 끝에 전설은 현실이 되었고 그는 드디어 프랑스의 황제가 된다. 조카의 고정관념은 실현되었다. 왜냐하면, 그의 고정관념은 프랑스 국민 가운데 수적으로 가장 많은 계급의 고정관념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 p.158

출판사 리뷰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프랑스 제2공화국이 의회의 무능력으로 인해 루이 보나파르트, 즉 나폴레옹 3세의 친위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던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그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되는 배경을 살펴본 마르크스의 소논문이다. 옮긴이는 이 책을 “마르크스 정치학의 자본론”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그의 주저이자, 그의 경제학적, 사회학적 지식을 집대성한 책이다. 그리고 그 방대한 두께로 인해 사람들로 하여금 책장에서 꺼내 들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소략한 책이 정치학의 자본론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자본론』이 자본주의 경제의 법칙을 이론적으로 해부했다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정치권력의 장에서 그 법칙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 주는 실증적 분석서이자 정치학의 응용 편이었다.

이 책에서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되지만,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소극으로 반복된다는 사실, 프랑스 제2공화국의 몰락은 단순히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의회 의원들의 무능과 자기 모순적 행위들로 인해 예정된 것이었다는 사실 등을 밝힘으로써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 한 인물이 아닌 시대가 만들어 낸 사건임을 성찰하고 있다. 마치 그가 『공산당 선언』에서 선언한 것과 유사하게, “하나의 유령이” 프랑스 제2공화국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보나파르트주의’라는 이름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 소논문에서 의회가 “최후의 무기마저 스스로 포기해 버리고” 스스로가 “죽은 뒤에야 묻혔음을 증명”했다고 말한다. 즉 마르크스는 이 책에서 의회가 루이 보나파르트에게 제2공화국을 가져다 바쳤다고 고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 사실로부터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도출해 내는 마르크스의 탁월한 혜안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정치학의 자본론이라니, ‘정치’에 대해 한번 얘기해 보자. 공자는 정치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으로 ‘정명’을 꼽았다. ‘정명’이란 이름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옮긴이에 따르면 이 책을 처음 출간할 당시 책 제목을 “루이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이라고 했던 마르크스는, 이 책의 영어판을 내면서 제목을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로 바꾸었다고 한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본명은 샤를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 흔히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마르크스는 책 제목에서 나폴레옹을 빼고, 성인 보나파르트를 넣은 것일까? 그것은 루이 보나파르트가 나폴레옹의 이름과 혈통에 기대고자 했으나, 결코 ‘나폴레옹’이 될 수는 없었음을 가리키고자 한 것이 아닐까? 나폴레옹의 이름과 민중의 지지로 황제가 된 루이 보나파르트는 엠스 전보 사건을 거치며 달아오른 프랑스 국민의 전쟁열을 무시할 수 없었고, 다가오는 전쟁의 그림자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스당에서 패배하여 포로가 되면서 폐위되었다. 이때의 처참한 패배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겁쟁이라는 조롱에 시달린 나머지, 그는 자신의 주치의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앙리 코노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스당에서 겁쟁이가 아니었지 않소(N'est-ce pas que nous n'avons pas ete des laches a Sedan)?” 그의 말마따나 그가 스당에서 겁쟁이는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하고, 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가 나폴레옹 역시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를 나폴레옹이 일으킨 쿠데타의 이름, 즉 ‘브뤼메르 18일’로 일컬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루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가 삼촌인 나폴레옹이 일으킨 쿠데타의 재탕에 불과한 사건이었음을 명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제목은 마르크스 나름의 사평(史評)이 드러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오래된 책의 현재성에 대해 살펴보자. 이 “정치학의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헤겔의 말마따나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은 반복”되지만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은 소극으로” 끝이 난다고. 아니나 다를까, 한때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똑똑히 보여 주었다(South Korea just showed the world how to do democracy)”라는 찬사를 받았던 이 나라에서, 이제 다시는 감히 재현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사건이 재현되고야 말했다. 대한민국 제6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작자가, 그것도 하필이면 루이 보나파르트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날보다 하루 늦게, 쿠데타를 자행하고야 만 것이다. 그러나 최규하와 전두환을 한 몸에 구현하고자 했던 인물은, 그 내적 모순으로 인해 루이 보나파르트조차도 되지 못한 채 루이 16세가 될 운명을 마주하고 있다.

아마 자신의 아내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비난이 쇄도할 때조차도 그러한 운명을 깨닫지는 못했겠지만 말이다. 한편, 우리는 그 어설픈 쿠데타의 순간에 이 소논문에서 읽히는 무능한 치들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유’와 ‘민주’를 줄기차게 외쳐 대고 상대를 향해 ‘독재’라는 비난을 쏘아 대고는, 정작 자유와 민주가 위협받던 순간에 국회가 아닌 자신들의 안락한 둥지에 숨어 있었던, 또는 국회의 담을 넘기보다는 그저 카메라에 남기를 선택했던, 비겁하고 저열한 군상을 통해서 말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프랑스 제2공화국과 달리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를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공화국이 위기에 처한 순간에 그것을 지키고자 달려 나왔던 시민들이 있어 주었던 덕이다. 우리 시민은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쟁취했던 민주주의를 자신의 힘으로 지켜 내었고, 이제 국가의 반역자들은 자신의 반역 행위에 대한 응분의 대가만을 기다리고 있다.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그 종말에 축복을 건네려 한다. “행복한 여행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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