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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경우 ― 약사들의 문제
서문 바그너의 경우 추신 두 번째 추신 후기 니체 대 바그너 ― 어떤 심리학자의 문서 서문 내가 경탄하는 곳 내가 반박하는 곳 간주곡 위험으로서의 바그너 미래 없는 음악 우리 대척자들 바그너가 속한 곳 순결의 사도로서의 바그너 나는 어떻게 바그너로부터 벗어났는가 심리학자가 말한다 후기 가장 부유한 자의 가난에 대하여 옮긴이 해설 지은이에 대해 |
Friedrich Nietzsche, Friedrich Wilhelm Nietzsche,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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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에서 비제에게 찬사를 보내고 바그너를 그 대가로 희생시키는 것은 단순한 악의에서가 아니다. 나는 많은 농담들 중에서 농담이 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를 제시한다. 바그너에게 등을 돌렸던 것은 내게는 하나의 운명이었다.
--- p.9 그리고 사실상 나는 《카르멘》을 들을 때는 언제나 다른 어떤 때보다도 나 자신을 더 철학자인 것처럼 느끼고, 더 훌륭한 철학자인 것처럼 느낀다. […] 비제의 오케스트라 음색은 내가 지금도 참아 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해도 되겠는가? […] 이 바그너의 오케스트라 음색은 얼마나 내게 해를 끼치는지! --- p.13-14 사람들이 그 점에서 그를 일급의 거장이라고, 우리 음악의 가장 위대한 세밀화가라고 단언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정당한 일이다. --- p.41 주인도덕은 삶의 자기긍정, 삶의 자기찬양이며, 마찬가지로 세련된 상징과 실천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그것의 마음이 너무나도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아름다운 예술과 모든 위대한 예술은 바로 여기에 속한다. --- p.80 바그너의 경우는 철학자에게는 하나의 행운이다. ─ 독자들이 듣고 있듯이, 이 글은 감사하는 마음속에서 얻은 영감의 결과이다… --- p.81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러한 음악을 건강하게 여긴다는 말은 아니다. 바로 바그너가 거론되고 있는 경우에는 가장 건강하지 못하다. 바그너 음악에 대한 나의 반박은 생리학적인 반박이다. --- p.90 사실 그때가 작별을 하기에 아주 적절한 때였다. 나는 곧 작별을 위한 증거를 얻었다. 리하르트 바그너는 겉보기에는 가장 성공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패하고 절망한 데카당이고, 갑자기 꼼짝없이 산산이 부서져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앞에서 침몰해 버렸다… --- p.115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모든 것에 관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이해하거나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예의 바른 태도로 여겨진다.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경멸한다는 것이다. --- p.129-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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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은 니체와 바그너의 우정!
바이로이트 극장에서의 공연 이후 돌연 결별을 선언한 니체 두 사람이 결별한 이유는 무엇이며, 니체가 말하는 예술의 본질은 무엇일까? 니체와 바그너의 우정, 『비극의 탄생』을 지나 《파르지팔》로 끝나다 니체와 바그너는 31년이라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니체는 그리스도교로 대변되는 전통적인 가치를 극복해야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끝없는 고난과 시험 속에서 온갖 역경을 헤쳐 나가는 영웅담을 그린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이 자신의 초인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여겼다. 그는 바그너의 초기 음악극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닮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바그너에게 헌정하다시피 쓴 책이 『비극의 탄생』이었다. 그런데 1876년 바이로이트 극장에서 상연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를 본 니체는 작품에서 연민으로 삶을 바라보는 염세주의적 분위기를 느낀다. 이후 《파르지팔》에서 짙은 그리스도교적 색채마저 엿본 니체는 바그너가 전통적 가치와 염세주의에 굴복했다고 보았고, 그와 이별을 선언한다. 『바그너의 경우』로 선전포고하고 『니체 대 바그너』로 뒷받침하다 갑자기 어떤 사건에 대해 논평을 해 보라고 하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늘어놓는 궤변에 반박해 보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나올 것이다. 『바그너의 경우』와 『니체 대 바그너』는 바로 그런 작품이다. 존경하던 바그너에게 크게 실망한 니체는 바그너의 작품을 분석하여 그 안에 깃든 전통적인 사상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헐뜯는다. 바그너는 물론, 그에게 열광하는 사람들까지도 니체는 공격적으로 비판한다. 이후 니체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이해하지 못한 대중이 그를 비난하자, 『니체 대 바그너』라는 작품을 통해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바그너를 멀리하게 되었는지 해명한다. 이 과정에서 니체가 이해할 수 없는 비유와 격정적인 어조로 풀어냈던 사상이 굉장히 예리하고 명징한 언어로 구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이 두 작품은 니체의 ‘모든 가치의 재평가’라는 핵심 사상과 예술론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보다 비제의 《카르멘》이 낫다! 바그너 작품의 세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니체의 예술론 니체의 대중적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바그너의 경우』와 『니체 대 바그너』는 그동안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니체의 예술론이라고 하면 『비극의 탄생』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사실 이 두 작품에도 니체의 예술론이 강하게 드러난다. 니체는 바그너를 비판하면서 비제의 《카르멘》을 예로 들어 비교한다. ‘카르멘’은 집시 여인으로, 시간 따라 마음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삶에서 오는 모든 고통과 즐거움을 긍정하는 인물이다. 니체는 삶의 비극적인 면과 명랑한 면을 재현한 《카르멘》을 들어, 대중을 향한 연민으로 가득 찬 바그너의 작품을 비판한다. 구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자기구원, 자기긍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남의 동정으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니체는 예술이란 염세주의와 동정윤리로 가득 찬 형식이 아니라, 고통과 즐거움을 다채롭게 담아 삶을 긍정하는 형식으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니체는 『바그너의 경우』와 『니체 대 바그너』에서 자신의 예술론을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두 작품을 통해 니체의 예술론을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고전을 만나는 시간, 세창클래식! 왜 다시 니체인가? 고전의 가치는 시대를 관통한다. 다만 시대 흐름에 알맞은 새로운 문장과 해설이 필요할 뿐이다. 세창클래식은 ‘고전은 읽기 어렵고 지루한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원작의 의미와 깊이를 음미할 수 있도록 새로운 번역과 해설을 선보인다. 세창클래식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고전의 안경을 쓰고 현대를 바라보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니체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철학자 중의 한 명이지만, 그의 저서를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비유가 가득하고 잔뜩 고조된 표현은 차분한 글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설게만 다가온다. 하지만 니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모든 전통적인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니체의 외침을 통해 지친 우리 삶을 대담함과 용기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