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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책소개

목차

로마의 세시풍속과 별자리 이야기 - 역자서문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오비디우스의 무학세계 - 천병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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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오비디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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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us Ovidius Naso

오비디우스(기원전 43년 ~ 기원후 17년 또는 18년)는 로마사와 로마 문학사에서 흔히 ‘아우구스투스 시대’라고 부르는, BC 43년 중부 이탈리아 펠리그니의 술모(Sulmo, 현재 술모나)의 기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로마에서 웅변술의 대가였던 아우렐리우스 푸스쿠스와 포르키우스 라트로에게서 수사학을 사사한 뒤 잠시 법관으로 관료 생활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신분 계층이라면 시간만 지나면 따놓은 당상이었던 원로원직을 과감히 포기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로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우리에게는
오비디우스(기원전 43년 ~ 기원후 17년 또는 18년)는 로마사와 로마 문학사에서 흔히 ‘아우구스투스 시대’라고 부르는, BC 43년 중부 이탈리아 펠리그니의 술모(Sulmo, 현재 술모나)의 기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로마에서 웅변술의 대가였던 아우렐리우스 푸스쿠스와 포르키우스 라트로에게서 수사학을 사사한 뒤 잠시 법관으로 관료 생활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신분 계층이라면 시간만 지나면 따놓은 당상이었던 원로원직을 과감히 포기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로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우리에게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집대성한 『변신 이야기』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 살 위인 형과 함께 로마에 가서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당시 엘리트 청년들이 그러하듯 법률가나 정치가가 되기 위해 수사학을 공부한다. 공부를 마친 뒤 그리스의 아테나이와 소아시아와 시킬리아를 여행하고 로마로 돌아와 하급 관리직에 취임했으나 문학에 대한 미련 때문에 관직을 버리고 시인이 된다.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등 선배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오비디우스가 로마의 문학계를 대표하며 시인으로서의 최고의 명예를 누리던 어느 날 그는 『사랑의 기술』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하면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인 흑해 서안으로 유배를 간다. 그리고 그는 로마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오늘날의 시베리아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비참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유배된 지 10년 만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작품으로는 『변신이야기Metamorphoseon Libri』, 『여걸들의 서한Heroides』, 『비탄가Tristia』, 『흑해에서의 편지Epistulae ex Ponto』, 『로마의 축제일Fasti』, 『여성의 얼굴화장법Medicamina Faciei Feminea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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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병희는 그리스·로마 고전을 원전에서 한국어로 옮겨온 번역가다. 그의 작업은 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어 고전 번역의 토대를 이루어왔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고전학과 독문학을 수학했다. 희랍어와 라틴어에 대한 정규 검정을 거친 뒤, 고대 텍스트를 원문으로 읽고 번역하는 작업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왔다. 그에게 고전 번역은 단순히 텍스트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작품이 지닌 오랜 전승과 형식, 텍스트가 형성되어온 문헌학적 흐름을 살피고, 그 안에 담긴 의미 구조와 문체, 극적 리듬을 함께 읽어낼
천병희는 그리스·로마 고전을 원전에서 한국어로 옮겨온 번역가다. 그의 작업은 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한국어 고전 번역의 토대를 이루어왔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고전학과 독문학을 수학했다. 희랍어와 라틴어에 대한 정규 검정을 거친 뒤, 고대 텍스트를 원문으로 읽고 번역하는 작업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아왔다.
그에게 고전 번역은 단순히 텍스트를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작품이 지닌 오랜 전승과 형식, 텍스트가 형성되어온 문헌학적 흐름을 살피고, 그 안에 담긴 의미 구조와 문체, 극적 리듬을 함께 읽어낼 때 비로소 번역은 완성되었다. 천병희는 오랜 훈련과 치밀한 검토를 바탕으로, 이러한 여러 층위를 한국어로 옮기며 고전이 지닌 사유와 아름다움을 오늘의 독자에게 전달해왔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비극과 희극, 철학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고전을 체계적으로 번역하며, 한국어로 읽는 서양 고전의 기반을 마련했다. 주요 번역서로는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아이스퀼로스 비극전집』 『소포클레스 비극전집』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플라톤 전집,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시학』,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전쟁사』,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 등 다수가 있으며, 주요 저서로 『그리스 비극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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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천병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횔덜린의 핀다르 수용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5년 동안 독문학과 고전문학을 수학했으며 북 바덴 주정부 시행 희랍어검정시험(Graecum) 및 라틴어검정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명예 교수이다.
그리스 문학과 라틴 문학을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일련의 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전 번역으로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아폴로도로스의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과 『코에포로이』 『자비로운 여신들』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힙폴뤼토스』 『트로이아의 여인들』 『박코스의 여신도들』,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새 』 『개구리』, 아리스토텔레스 및 호라티우스의 『시학』 등 다수가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그리스 비극의 이해』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5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642g | 160*235*30mm
ISBN13
9788935656097

출판사 리뷰

오비디우스 르네상스
지식인들이 라틴어로 글을 쓰던 서양 중세에서 그리스 로마 작가들 가운데 오비디우스만큼 많이 읽힌 작가는 없다. 그래서 중세학자 트라우베는 서양의 12~13세기를 ‘오비디우스 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단테가 그랬듯이 서양 작가들이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리스 로마 작가들이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비디우스의 경우 셰익스피어와 밀턴에 적잖은 영향을 주는 등 여전히 많이 읽히는 라틴 작가였으나, 낭만주의 시대에는 시인으로서의 독창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완전히 변두리로 밀려나게 된다.
그러다가 20세기 1980년대 이후로 오비디우슨 고전학자들과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애호하는 이뿐 아니라 시인과 문인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어 제2의 ‘오비디우스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20세기의 1970년대만 해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한 고대 작가가 이토록 인기를 누리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 시대는 그리스 로마 작가들에게 특별히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들 작가들이 표방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인문주의적 교양을 여전히 최고의 이상으로 받아들일 생각은 전혀 또는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에 관해서는 앞으로 더 연구해야겠지만 오늘날의 독자들이 오비디우스에게 매혹당하는 것은 우선 그의 작품들이 재미있으면서도 쉽게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별다른 사전지식이나 주석 없이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오비디우스에게는 다른 매력도 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네스토르가 트로이야 전쟁 때 그리스의 영웅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스레 늘어놓는 장면을 알아야만 네스토르의 비겁한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렇듯 오비디우스는 겉보기와는 달리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사전지식이 있어야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매우 ‘박식한 시인’임을 우리는 군데군데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중성이 그의 지속적인 인기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생애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기원전 43~기원후 17/18)는 베르길리우스에 버금가는 라틴 작가로, 우리에게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대성한 『변신 이야기』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기원전 43년 로마에서 동쪽으로 150킬로미터쯤 떨어진 중부 이탈리아 술모 시의 기사(騎士)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비디우스는 한 살 위인 형과 함께 로마로 가서 아버지의 요청에 따라 당시 엘리트 청년들이 그러하듯 법률가나 정치가가 되기 위해 수사학을 공부한다. 공부를 마친 뒤 그리스의 아테나이와 소아시아와 시킬리아를 여행하고 로마로 돌아와 하급 관직에 취임했으나, 문학에 대한 미련 때문에 관직을 버리고 시인이 된다.
초기 작품으로는 『사랑의 노래』와 『여걸들의 서한집』 『사랑의 기술』 『사랑의 치료약』 등이 있다. 오비디우스는 기원후 2년에 자신의 대표작인 『변신 이야기』와 『로마의 축제일』을 동시에 쓰기 시작한다. 기원후 8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변신 이야기』는 전 15권의 대작으로, 천지창조부터 그 자신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신화와 전설 속의 변신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대성한 것이다. 이때는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와 프로페르티우스도 세상을 떠나고 오비디우스가 로마의 문학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렇듯 시인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리던 그는 기원전 8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령으로 로마 제국 변방인 흑해 서안의 토미스(오늘날의 루마니아)로 유배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는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의 야만인들 사이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비참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유배된 지 10여 년 만에 세상을 떠난다. 시인 오비디우슨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문명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그가 쓴 책들은 공공도서관에서 철거되기도 했지만, 그는 호메로스, 3대 비극시인(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베르길리우스와 더불어 그리스 로마 문학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잊혀지지 않는 데 크게 기여한 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미완성의 『로마의 축제일』
라틴어 파스티(fasti)는 원래 법정에서 법률행위가 이루어지는 개정일(開廷日)들인 디에스 파스티(dies fasti)와 법률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 비개정일들인 디에스 네파스티(dies nefasti)와 선거 등을 위해 민회(民會)가 열리는 민회일들인 디에스 코니티알레스(dies comitiales) 등을 기록해놓은 달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비디우스의 『로마의 축제일』은 로마의 축제일의 여러 가지 의식과 기원(起源)을 월별로 설명하고 있다.
『로마의 축제일』은 오비디우스가 유배되던 기원후 8년 그의 의도와는 달리 완성되지 못한 것을 보인다. 아무튼 이 작품은 지금 1~6월까지 처음 여섯 권만 남아 있다. 그는 이 작품을 끝내 완성하지 못했지만 로마에 있을 때 써놓았던 부분을 다시 손질한 흔적은 군데군데 보인다. 예컨대 그는 트로이야인 솔리무스(Solimus)를 언급하며 자신이 유배되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제4권, 79~83행 참조). 그리고 예언녀 카르멘타는 아르카디아에서 추방된 아들 에우안데르에게 그가 추방된 것은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신이 노여워했기 때문이라고 위로하고 있다(제1권, 481~482행 참조).
오비디우스는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아에서 승리하고 기원후 10년 콩코르디아 여신에게 신전을 봉헌한 일을 언급하고 있는데(제1권, 645~648행 참조), 그가 유배된 것이 기원후 8년인 만큼 이 부분은 유배지에서 쓴 것임이 틀림없다. 기원후 14년 아우구스투스가 세상을 떠나자 티베리우스가 제위(帝位)에 올랐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두 군데나 있다(제1권, 533행과 615행 참조). 제2~6권에서는 대체로 아우구스투스가 수신인인 데 반해 작품 전체는 게르마니쿠스에게 바치는 헌사로 시작된다. 아우구스투스는 기원후 4년 아내 리비아가 데려온 의붓아들 티베리우스를 자신에게 입양하며 티베리우스도 그의 아우 드루수스의 아들인 게르마니쿠스를 입양하라고 요구했는데, 이는 자신의 제위가 적어도 몇 세대 동안은 남계(男系) 가족에 의해 계승되기를 바랐기 때문인 듯하다.
게르마니쿠스는 알렉산데르 대왕에 비견되는 인기 있는 장군이자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그리스 시인 아라투스가 쓴 천문학에 관한 시 『현상들』을 라틴어로 번역했는데 그 단편들이 현재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게르마니쿠스는 『로마의 축제일』을 헌정받는 사람으로 적격이지만, 오비디우스는 그의 문학적 후원뿐만 아니라 자신이 유배지에서 로마로 돌아오거나 유배지를 바꿀 수 있게 그가 도와주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오비디우스는 때로는 게르마니쿠스에게, 때로는 티베리우스에게, 또 때로는 아우구스투스에게 말을 거는데 이렇듯 수신인이 일치 않는 것은 이 작품이 부분적으로 서로 다른 시기에 씌어졌고 최종 교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의 축제일』의 주제
『로마의 축제일』의 주제는 크게 보아 별자리들의 내력을 설명하고, 달력에 표시되어 있는 축제들―예컨대 2월 15일에 개최되는 루페르갈리아 제(祭) 같은―의 기원을 밝히고, 개별 날짜에 얽힌 전선들―예컨대 4월 21일에 로마가 창건되었고, 2월 24일에 로마의 마지막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가 추방되었다는 것 같은―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밖에도 이 작품은 틈틈이 프로세르피나의 납치 같은 그리스 신화 이야기와 정월 초하루에 얽힌 세시풍속과 티베리스 강에 던져지는 허수아비들에 관한 미신 같은 이야기도 들려준다.
별자리의 경우는 한결 여유가 있다. 우선 아침에 뜨는 경우와 아침에 지는 경우, 저녁에 뜨는 경우와 저녁에 지는 경우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별자리의 기원에 관한 이야기가 여러 가지일 경우 필요에 따라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돌고래가 별자리가 된 것은, 넵투누스가 암피트리테와 결혼할 수 있도록 그것이 성공적으로 중매를 섰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가인(歌人) 아리온이 자신의 젊은 노예들의 손에 죽게 되었을 때 그를 구해주었기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오비디우스는 후자를 선택하고 있다(제2권, 81~82행 참조). 오비디우스는 나중에 같은 제2권에서 물고기는 베누스와 쿠피도를 구해준 보답으로 별자리가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의 돌고래 이야기는 물고기 이야기와 조화를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는 독자에 대해서 다양한 태도를 취하는데 때로는 자신을 시인(vates, 정확히는 ‘예언자 시인’이란 뜻)으로 자처하는가 하면 때로는 고대 문화의 연구가로 자처한다. 『로마이 축제일』은 이러한 연구의 성과인 셈이다. 그는 신들뿐만 아니라 우연히 만난 고참병이나 노파나 사제나 다른 지방의 옛 친구와도 인터뷰한다. 그는 또 어떤 사항에 관해 자신이 아는 대로 들은 대로 여러 가지 설명을 제시하는데, 예컨대 파릴리아 제에서 정화(淨化) 목적으로 불을 사용하는 데 대해 그는 가능한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제4권, 783~806행). 그리고 제1권에서 그는 아고날리아 제와 관련하여 이 축제명이 가능한 어원을 여섯 개나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학자의 태도인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로마의 축제일』과 『변신 이야기』, 동시에 씌어져
오비디우스가 『로마이 축제일』과 『변신 이야기』를 동시에 쓰기 시작하면서 이 두 작품에서는 그리스 신화 이야기와 로마의 전설과 관련하여 내용상 서로 겹치는 부분이 더러 있다. 그럴 경우 그는 『변신 이야기』에서도 그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음을 상기시키며, 『로마의 축제일』에 나오는 신화 또는 전설 이야기를 『변신 이야기』의 문맥에서 해석하기를 권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컨대 그는 케레스의 축제인 케레알리아 제를 다루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 처녀의 납치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대목입니다. 내 이야기는 대부분/그대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고 새로 배우는 것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제4권, 417~418행). 프로세르피나의 납치에 관한 이야기는 『로마의 축제일』에서 그리스 신화에 관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긴 이야기임에도 오비디우스는 이것을 『변신 이야기』 제5권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교해보라고 권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밖에 오비디우스는 로마의 기념 건조물들과 역사적 사건의 기원을 밝힌 프로페르티우스이 비가(悲歌) 제4권과 역사가 리비우스의 『로마 건국 이후의 역사』 제1권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은 것으로 생각된다. 세르비우스 왕이 딸 툴리아와 사위 타르퀴니우스에게 살해된 이야기와, 타르퀴니우스의 아들 섹스투스가 루크레티아를 겁탈했다가 그들 일가가 로마에서 축출된 이야기가 그렇다. 그리하여 오비디우스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엮어 『로마의 축제일』이라는 걸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작품은 완성되지 못한데다 『변신 이야기』처럼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의 밝은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생소한 로마의 종교의식을 주로 소개하고 있어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 시대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그려 보이고 달리는 구할 수 없는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이 작품은 지금은 세련된 감각과 풍부한 수사(修辭)에 힘입어 『변신 이야기』 못지않은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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