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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는 우리에게 아주 친근한 존재입니다. 실제로 봤다는 사람들도 많고 그와 관련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이야기에 따르면 도깨비들은 밤에 불쑥 나타나 씨름을 하자고 조르기도 하고, 사람을 홀려 낯선 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로 어리숙하고도 엉뚱한 모습으로 등장해, 착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예기치 않은 복을 가져다 주는 게 바로 우리나라의 도깨비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조금은 으스스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도깨비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이 책에는 ‘어리석은 도깨비’와 ‘영리한 범벅 장수’가 등장합니다. 가난한 범벅 장수는 호박범벅을 팔러 장에 나가지만, 하나도 팔지 못한 채 다시 범벅을 지고 집에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산 속에서 범벅 장수는 도깨비들을 만납니다. 도깨비들은 ‘호박범벅’을 맛보고는 그 달콤한 맛에 푹 빠지고 맙니다. 범벅 값을 후하게 치러 준 도깨비들 덕분에 범벅 장수는 금세 부자가 되어 더 이상 범벅을 팔러 다니지 않게 되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도깨비들은 범벅 장수가 호박범벅을 팔러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결국 기다리다 지친 도깨비들이 달콤한 호박범벅을 다시 먹게 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도깨비들은 언제 다시 호박범벅을 실컷 먹을 수 있을까요? 동시인이자 동화 작가인 이상교 선생님은 특유의 쉽고 친근한 문체로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와 상상 속의 이야기를 버무려 새로운 옛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시끌벅적 장날이야~”로 시작하는 첫머리에서 알 수 있듯, <도깨비와 범벅 장수>의 글은 곁에서 이야기 들려주던 할머니의 정겨운 말투 로 쓰여 있습니다. 들려주는 문학인 ‘옛이야기’의 특징을 제대로 살려 쓴 그림책 글입니다. 이 책에 그림을 그린 화가 한병호 선생님은 한국적인 선과 색으로, 어린이 책 분야에서 독특한 그림 세계를 쌓아 왔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도깨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 지금까지 도깨비가 등장하는 다양한 우리 옛이야기에 그림 옷을 입혀 왔습니다. 이 책에는 아이들처럼 달콤한 것을 좋아하고, 금돈은돈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도 스스로 범벅 만들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도깨비들이 나옵니다. 이러한 특징을 그려 내기 위해 한병호 선생님은 도깨비들의 얼굴을 귀엽고 바보스럽게 표현했습니다. 호박범벅을 맛보기 위해 너도나도 몰려든 도깨비 장면에서는 얼굴, 몸, 색이 저마다 다른 도깨비를 다양하게 그려 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작은 재미를 위해 늘 귀여운 호랑이를 도깨비들의 애완동물로 함께 등장시켰습니다. 이 책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개성 있는 책 디자인을 보여준 디자이너 조혁준이, ‘세로쓰기’를 통해 글, 그림, 디자인을 조화롭게 완성시킨 그림책입니다. 길게 늘어선 장터와 우뚝 솟은 산, 커다란 도깨비 등 화가 한병호 선생님의 쭉 뻗은 동양화풍 그림은 세로쓰기로 정렬한 한글과 어우러져 예스러우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한글은 창제 당시에 사용되던 ‘세로쓰기’에 맞게 만든 글자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한글학자들의 노력으로 책에서부터 신문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로쓰기’ 전용으로 바뀌었습니다. 가로쓰기를 주장한 주시경의 이론에 따르면 가로쓰기를 하는 이유는 ‘소리나는 이치와 일치하고, 쓰기와 박기(인쇄하기)와 읽기가 쉽고, 맞춤법을 매우 간편하게 줄이며, 온 세계의 수백 종 글자가 가로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글의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정렬에서 벗어나 그 형태를 다듬고 적절히 적용하는 노력을 지속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그림책은 글과 그림의 조화가 중요합니다. 내용과 그림에만 치중한 채, 글자의 모양이나 배열은 무시한 그림책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덜 완성된 느낌을 줘 왔습니다. 글과 그림이 책 속에서 잘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이 책은 획일적인 한글 쓰기에서 벗어나, 잊혀졌던 ‘세로쓰기’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책 표지를 한지에 인쇄하여 옛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겉모습을 잘 갖추어 놓았습니다. 내용 뿐만 아니라 책의 크기, 글자 정렬, 종이에까지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 아이들에게 소중한 옛이야기 제대로 물려줄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출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