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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판 감자ㆍ배따라기
김동인
청목사 199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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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북스

제품소개

저자 소개 1

金東仁, 금동琴童, 춘사春士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년 폐간된 [창조]의 후신 격인 동인지 [영대]를 창간했다.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삼천리]에 「광염 소나타」를 발표했다. 1932년 [동광]에 「발가락이 닮았다」, [삼천리]에 「붉은 산」을 발표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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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0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02쪽 | 254*374*20mm
ISBN13
9788930702379

책 속으로

하늘에도 봄이 왔다. 하늘은 낮았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면 넉넉히 만질 수가 있으리만큼 하늘은 낮다. 그리고 그 낮은 하늘보다는 오히려 더 높이 있는 듯한 분홍빛 구름은, 뭉글뭉글 엉기면서 이리저리 날 아다닌다. 나는 이러한 아름다운 봄 경치에 이렇게 마음껏 봄의 속삭임을 들을 때는, 언제든 유토피아를 아니 생각할 수 없다. 우리가 시시각각으로 애를 쓰며 수고하는 것은 ― 그 목적은 무엇인가?

역시 유토피아 건설에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를 생각할 때는 언제든 그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며, '사람의 위대함을 끝까지 즐긴' 진나라 시황〔秦始皇〕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우리가 어찌하면 죽지를 아니할까 하여, 소년 삼백을 배를 태워 불사약을 구하러 떠나 보내며, 예술의 사치를 다하여 아방궁을 지으며, 매일 신하 몇천 명과 잔치로써 즐기며, 이리하여 여기 한 유토피아를 세우려던 시황은, 몇만의 역사가 어떻다고 욕을 하든, 그는 정말로 인생의 향락자이며 역사 이후의 제일 큰 위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만한 순전한 용기 있는 사람이 있고야 우리 인류의 역사는 끝이 날지라도 한 사람을 가졌었다고 할 수 있다.

--- p.12

우리가 어찌하면 죽지를 아니할까 하여, 소년 삼백을 배를 태워 불사약을 구하러 떠나 보내며, 예술의 사치를 다하여 아방궁을 지으며, 매일 신하 몇천 명과 잔치로써 즐기며, 이리하여 여기 한 유토피아를 세우려던 시황은, 몇만의 역사가 어떻다고 욕을 하든, 그는 정말로 인생의 향락자이며 역사 이후의 제일 큰 위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만한 순전한 용기 있는 사람이 있고야 우리 인류의 역사는 끝이 날지라도 한 사람을 가졌었다고 할 수 있다.

'큰사람이었었다.'

하면서, 나는 머리를 들었다. 이 때다. 기자묘 근처에서 무슨 슬픈 음률이 봄 공기를 진동시키며 날아오는 것이 들렸다. 나는 무심코 귀를 기울였다. '영유 배따라기'다. 그것도 웬만한 광대나 기생은 발꿈치에도 미치지 못하리만큼 ― 그만큼 그 배따라기의 주인은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천후토 일월성신 하느님전 비나이다. 실낱 같은 우리 목숨 살려 달라 비나이다.
에―야, 어그여지야.

--- 202001/03/16 (thekul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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