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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의 죽음―버지니아 울프 문학 에세이 2]출간에 부쳐
그리스어를 모르는 데 대하여 On not Knowing Greek [펨브로크 백작 부인의 아케이디아] The Countess of Pembroke’s Arcadia 콩그리브의 희극들 Congreve’s Comedies 역사가로서 기번 그리고 “유일무이한 그 사람 기번” The Historian and ‘The Gibbon’ 월터 스콧 경 Sir Walter Scott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윌리엄 해즐릿 William Hazlitt 록하트의 비평 Lockhart’s Criticism [데이비드 코퍼필드] David Copperfield 조지 엘리엇 George Eliot 러시아인의 시각 The Russian Point of View 토머스 하디의 소설 The Novels of Thomas Hardy 헨리 제임스 Henry James 조지프 콘래드 Joseph Conrad 콘래드 씨에 대한 대화 한 자락 Mr. Conrad: A Conversation 나방의 죽음 The Death of the Moth 버지니아 울프 연보 옮긴이 소개 |
Adeline Virginia Woolf
버지니아 울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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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중에 우리의 웃음을 유발하는 문구가 있다. 그러나 만일 호머가 보고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의 웃음을 절제해야 되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각적으로 웃으려면 (아리스토파네스가 예외를 제공해 주긴 하겠지만) 거의 영어로 웃을 수밖에 없다. 유머는 결국은 신체의 감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신체적으로 아주 다른 종족에서 비롯된 프랑스인들, 이탈리아인들, 미국인들은 우리가 호머를 읽을 때 멈추는 것처럼 제대로 된 곳에서 웃는 것인지 확인하려고 멈추는데, 이 멈추는 것이 치명적이다. 이렇게 유머는 외국어로 하면 제일 먼저 없어지는 능력이다.
--- p.35~36 산문은 느리고, 고귀하며 일반화된 감성에, 드넓은 경관을 묘사하는 데, 여러 페이지에 걸쳐 다른 화자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한결같이 펼쳐지는 긴 담론을 전달하는 데 어울린다. 반면에, 운문은 전혀 다른 쓰임새를 가졌다. 시드니가 요약하고, 강조하고, 하나의 분명한 인상을 주고자 할 때 운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찰하는 것은 흥미롭다. --- p.51 수수께끼 같은 남자, 자신의 천부적 재능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것을 사용하기를 중단해 버린 최고의 천재이기도 했던 콩그리브는, 그의 작품의 어느 페이지를 넘겨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재능에 완전히 잠겨버리기보다는 그것을 흥미롭다는 듯이 관찰할 줄 알고, 또 그 재능 속에 잠겨 있을 때조차도 어느 정도 그것을 이끌어 갈 줄 알았던 그런 부류의 작가였다. --- p.57 예술가는 결국 고독한 존재이다. [로마제국 쇠망사]와 더불어 보낸 20년은 먼 옛날의 사건과, 배열에 관한 복잡한 문제와, 또한 죽은 자들의 정신과 육체와 고독하게 교제하는 데 보낸 20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많은 것들이 중요성을 잃는다. --- p.91 70여 권을 써 내려가는 위대한 소설가들이라면 어차피 문장 단위로 집필하기보다는 쪽 단위로 집필하거니와, 다양한 강도를 지닌 10여 가지의 서로 다른 문체를 부릴 줄 알며 또 언제 사용해야 할 줄도 아는 법이다. 점잔 빼는 필체도 제대로 쓰이면 매우 유용한 필체이다. 잘못되거나 아무렇게나 쓴 표현도 긴장 이완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표현들은 독자에게 숨 돌릴 여유를 주고 책의 숨통을 터준다. --- p.108 소문에 의하면 제인 오스틴은 꼿꼿하고, 정확하고, 말수가 적어서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부지깽이”였다. 이 소문에 대한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그녀는 아주 무자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문학사상 가장 일관된 풍자가다. --- p.127 해즐릿은, 그의 으뜸가는 장점 중의 하나로, 희미한 안개 속에 발을 질질 끌며 물러나 하찮은 존재가 되어 죽어가는 그런 어정쩡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에세이는 단호히 말하건대 그 사람 자체다. --- p.138 평론가는 표면의 의미를 걷어낼 수 있지만, “그러한 순간에 관한 문제들이 있어서 그것들에 관하여 마음이 정해지지 않으면 위대한 비평가가 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록하트는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평론가였고 평론가로 남아 있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그는 너무 회의적이었고, 너무 소심했고, 너무 잘생겼고, 어쩌면 태생이 너무 좋았다. --- p.170 우리는 디킨스를 읽을 때 우리의 정신세계의 지형을 새롭게 바꾼다. 우리는 고독의 즐거움에 대한 경험, 혹은 친구의 복잡한 감정을 경이로움을 가지고 지켜봤던 일, 자연의 아름다움에 깊이 침잠했던 일에 대한 기억은 잊어버린다. --- p.177 그녀의 비평가들은 물론 대부분이 반대 성性인데, 아마도 반쯤은 고의적으로 그녀가 여성들에게 대단히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분개해 왔다. 조지 엘리엇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강하게 여성스럽지 않았다, 많은 예술가들에게 소중한 어린아이의 단순성이라고 여겨지는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기질 같은 것이 그녀에게는 전혀 없었다. --- p.186 세 명의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 중에 우리를 가장 매혹시키고 또한 우리를 가장 밀어내는 작가는 바로 톨스토이이다. 마음은 그가 태어난 곳의 성향을 따르게 마련이다. 러시아 소설과 같이 지극히 이질적인 문학작품과 마주쳤을 때 우리의 마음이 갑자기 옆길로 새어 진실에서 멀리 빗나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p.223 토머스 하디의 죽음으로 영국 소설의 지도자가 없다고 말할 때, 이것은 그 탁월함을 일반적으로 인정할 만한 어떤 다른 작가가 없다는 것, 즉 경의를 표하기에 자연스럽게 적합해 보이는 작가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하디만큼 겸손한 작가도 없었다. --- p.224 모든 위대한 작가들에게는 그들이 가장 편하고 또 최고의 상태를 갖는 듯한 어떤 정취가 있다. 그것은 위대한 보편적인 정신이라고 하는 어떤 분위기로 그것을 그들이 해설하고 발견하기조차 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이것 때문에 그들을 읽게 되는 것이지 어떤 이야기나 혹은 인물 혹은 어떤 별도의 탁월한 장면 때문이 아니다. --- p.255 죽음이 늘 그렇듯이 우리 기억을 되살리고 집중시켜 준다 할지라도 콘래드의 천재성에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는, 무언가 근본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어떤 것이 있다. 그의 만년의 명성은 의심의 여지없이 영국에서 최고의 수준이었으나 한 가지 분명한 예외, 즉 대중적 인기는 누리지 못했다. --- p.290 “……콘래드는 한 가지만 있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에요. 아니란 말이에요. 그 사람 안에 여러 가지가 있는 복잡한 작가예요. 우리가 자주 동의했던 것처럼 현대작가들 사이에선 흔한 경우죠. 그리고 현대 작가들이 이런 여러 면모를 가진 자아를 연관 짓거나 단순화 시키거나,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화합시키는 성취가 (일반적으로 생의 후반부에 가서야) 일어날 때에 이런 완결된 책들을 바로 그런 이유로 걸작이라고 일컫지요.” --- p.307 “죽음은 마음만 먹으면 도시 전체를 삼켜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도시뿐만 아니라 인간의 대집단도. 죽음을 거역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쳐 있던 나방이 다시 다리를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이 최후의 항거는 훌륭했다. 너무도 필사적이어서 나방은 드디어 일어섰다. 우리는 물론, 모두 생명 편에서 동정했다. 또한 누구 하나 개의하거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작은 나방이 거대한 힘을 상대로 아무도 대단하게 여기거나 지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지키려고 이렇듯 애쓰는 것이 이상하게도 감동적이었다.” --- p.317~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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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경이로운, 마술 같은 에세이!
깊고 울창한 울프의 문학세계가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 인본주의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작가들이 구사해 온 전통적 소설작법에서 탈피하여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남성과 여성의 이분화 된 질서와 틀을 깨고 단순히 여성 해방의 관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인간 해방의 깊은 문학을 지향했다. 아울러 이성적 언어 이전의 ‘의식의 흐름’을 통해서 죽음의 문제만큼이나 삶의 심연에 천착해 깊고 다양한 문학세계를 이루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울프는 위대한 소설가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광범한 독서에서 연유한 통찰과 혜안이 번득이는 평문과 에세이들은 그녀만의 탁월한 글쓰기 훈련장이었다. 2011년 6월 3일 발간한 [버지니아 울프 문학 에세이](버지니아 울프 전집 12)의 후속작으로 출간된 [나방의 죽음―버지니아 울프 문학 에세이 2](버지니아 울프 전집 13)는 버지니아 울프의 사후 남편 레너드 울프가 편집한 총 4권의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집]중 제1권에서 발췌한 문학 에세이 선집으로 특유의 정곡을 찌르는 문장의 묘미와 명징한 사고의 흐름으로 울프를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한국 버지니아 울프 학회 회원인 14명의 역자들이 16편의 에세이를 나누어 번역한 다음 품평회를 통한 공동 작업으로 번역을 가다듬은 이 울프 에세이 선집은 찰스 디킨스, 토머스 하디, 조지프 콘래드, 헨리 제임스, 월터 스콧 경, 제인 오스틴, 윌리엄 해즐릿, 조지 엘리엇, 에드워드 기번, 필립 시드니 경, 윌리엄 콩그리브, 존 깁슨 록하트 등 근현대의 탁월한 작가와 저술가를 조명한 격조 높은 전기적 에세이, 울프 자신의 독특한 문학관, 언어관, 역사관, 예술관을 피력한 비평적 에세이 등 예리하고 풍부하고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에세이를 싣고 있다. 울프의 문학 에세이를 읽게 되면 완전무결하고 위대한 비평 정신을 마주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레너드 울프의 서문에서 울프의 문학 에세이는 매우 특이하다. 분석적이고 권위적인 비평가의 포즈가 아니라 일개인의 목소리로 문학 작품을 읽으며 느낀 기쁨과 경이로움과 열정과 인상들을 함께 나누려는 일반 독자의 자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울프는 에세이야말로 길고 어려운 단어가 필요 없는 그저 즐거움과 새로운 활기를 불러오는 마술 같은 글이라고 얘기한다. 창작 과정에서 작가는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독자의 입장에서 상상해 보며 자신이 느끼는 만족감과 경이로움 혹은 불만 등을 꼬집듯 콜콜히 털어놓는다. 부드러운 모성으로 전쟁 없는 세상, 추행과 폭력이 없는 세상, 성차별이 없는 세상을 꿈꾼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20세기 영어권 문학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로서 모더니즘의 정수라 일컫는 울프의 깊고 울창한 문학세계를 이해하고 울프가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 인본주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녀의 문학에 어떤 모습으로 반영돼 있는가를 살피려면 울프의 에세이를 읽는 것이 더 맞춤한 선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주의 문학의 백미, 이타주의를 가장 소중히 여긴 고전 중의 고전 버지니아 울프 문학세계의 진수를 담은 《버지니아 울프 전집》 울프만큼 많이 알려져 있으면서 울프만큼 읽히지 않은 작가도 드물 것이다. 모르긴 해도 다른 나라에서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이것은 울프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평생 소설의 새로운 기법을 천착했던 그녀는 작은 표현 하나의 실험을 위해서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녀는 우선 모더니스트이다. 조이스와 더불어 의식의 흐름 수법을 소설에 도입하고 완성시킨 작가였다. 또 그녀는 누가 뭐래도 철저한 페미니스트이다. 울프의 페미니즘은 비록 예술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격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은 울프 문학의 진수도 아니며, 더더욱 전부는 아니다. 그녀의 문학은 한마디로 말해 인간주의 문학이다. 모더니즘, 페미니즘, 사회주의 따위는 그녀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도중에 잠시 들른 간이역에 불과하다. 궁극적인 목적지는 사랑과 이타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인간주의라는 정거장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그녀를 지나치게 모더니즘의 기수로, 또는 페미니즘의 대모로 부각시키면서, 크고도 울창한 숲과 같은 그녀의 문학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경향이 없지 않았다. 이 전집의 발간이 울프의 세계를 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읽는 분들의 정서를 순화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된다면 더없는 보람으로 여길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 전집≫ 간행위원 서울대 영문학과 명예교수 박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