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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전집 발간에 즈음하여
서문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해설 연보 |
Adeline Virginia Wo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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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만약에 그것이 잠이라면 어떤 성격의 잠인가, 라고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잠은 치료를 위한 하나의 방편일까-더없이 화가 나게 하는 기억들, 인생을 망쳐버릴 것 같은 일들을 검은 날개로 문지르고, 가장 추하고 천한 것들마저 까칠한 부분을 문지르고 금박을 입혀, 광택과 광채가 나게 하는 최면상태인가? 인생이 산산조각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죽음의 손가락이 삶의 소용돌이 위에 놓여야 한다는 것인가? 우리가 매일 소량씩 죽음을 복용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가장 비밀스러운 통로로 뚫고 들어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바꿔버리는 이 이상한 힘의 정체는 무엇인가? --- pp.80-81
이야기가 잠시 중단된 이 틈을 이용해서 몇 가지 해둘 말이 있다. 올랜도는 여자가 되었다-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점에서는 올랜도가 남자였던 이전과 꼭 같았다. 성의 변화가 비록 그들의 미래를 바꿔놓기는 했으나, 그들의 정체성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은 초상화를 보면 알겠지만 똑같다. 그의 기억은-그러나 앞으로는 관례대로 ‘그의’ 대신 ‘그녀의 ’라고, 그리고 ‘그’ 대신 ‘그녀’라고 해야겠지만-당시 그녀의 기억은 과거의 생애 중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을 되돌아보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었다. 마치 깨끗한 기억의 웅덩이 속으로 몇 방울의 검은 물방울이 떨어진 듯, 약간 흐려졌을 수는 있다. 어떤 것들은 좀 희미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변화는 올랜도 그녀 자신도 전혀 놀라지 않을 정도로 고통 없이, 그리고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 같았다. 이와 같은 변화가 자연에 위배된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은 위와 같은 점을 참작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힘들여 증명하려고 했다. (p.1) 올랜도는 처음부터 여자였다.(p.2) 지금 이 순간도 올랜도는 남자다. 이 문제의 결정은 생물학자와 심리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자. 그러니 우리로서는 그저 올랜도가 30세까지는 남자였다가 여자가 되었고, 그 뒤로는 쭉 여자였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 pp.164-165 그녀는 그 시대정신에 교묘하게 경의를 표시해서, 다시 말해, 반지를 끼고, 황야에서 한 남자를 발견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풍자가나 냉소주의자나 심리학자가 되지 않고-이런 것들은 금세 들켰을 것이다-시대정신의 검사를 무사히 통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당연한 일이지만,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작가와 시대정신 사이의 상호 교섭은 지극히 섬세한 것이며, 작품의 운명은 오로지 둘 사이의 은밀한 협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올랜도는 협정을 잘 처리했기 때문에, 지극히 행복한 상황에 있었다. 그녀는 자기 시대와 싸울 필요도 없고, 그것에 굴복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바로 그 시대에 속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고로 이제 그녀는 글을 쓸 수 있었고, 실제로 글을 썼다. 그녀는 쓰고, 쓰고, 또 썼다. --- pp.316-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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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정확하게 번역한 울프의 대표작 『올랜도』 출간!
‘리얼리티의 진수’ 탐색, 성전환이라는 기상천외 실험도 『올랜도』는 작가의 “의지와 무관하게, 스스로” 태어난 작품이다. 작가의 전 존재가 절실하게 원하는 하나의 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작품에 넘치는 풍자와 판타지적 명랑성은 서로 어우러져 독자들을 역사와 문학, 그리고 우리 영혼의 미로들을 헤집고 다니게 만든다. 이 작품을 두고 ‘판타지’, ‘전기’, ‘소설’, 그것도 아니면 “문학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길고 아름다운 연애편지” 등이라는 설이 분분하다. 이와 같은 측면들이 가미되어 있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울프가 작가로서 전하려고 고심했던 ‘리얼리티의 진수’를 탐색한 작품이다. 이 진지한 탐색 과정에서 울프는 ‘장르’라는 장애물을 과감하게 뛰어넘기도 하고, 성전환이라는 기상천외의 실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난 전기적 측면과 판타지적 요소 저변에는 울프가 그녀의 소설에서 한결같이 다루어온 중후한 테마인 ‘삶이란 무엇인가?’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작가의 지론대로 그 표면이 제아무리 나비의 날개처럼 고호적이고 가볍다 하더라도 그 너울에 현혹되어서는 안 되고, 작품의 밑바닥에 도사리도 있는 강철과도 같은 메시지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전기나 판타지의 요소는 포장에 불과하고, 그 속에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주제와, ‘이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문학 양식은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져 있다. 영국을 무대로 한 이 작품의 내용은 자그마치 3세기에 걸쳐 있다. 주인공인 시인 올랜도는 16세기(1588년) 영국에서 26세의 미소년으로 등장해서, 그 후 300여 년간 계속 살아, 작품이 끝나는 1928년에는 36세의 여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17세기 말경인 30세에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역사적으로는 이 무렵이 여성이 영국 문학에 참여하기 시작한 때이다. 울프는 작품 내의 모든 디테일을 이런 식으로 사실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지니도록 치밀하게 엮어내고 있다. 국내 울프 전공자들로 구성된 ‘울프전집 간행위원회’를 구성, 《울프 전집》 선보여, 울프학회 고문 서울대 영문학과 박희진 명예교수의 살아있는 번역 문장. 영미문학뿐만 아니라 20세기 현대문학의 대표적 모더니스트이며 페미니스트인 버지니어 울프의 문학을 제대로 소개하기 위해 솔출판사에서는 국내의 울프 전공자들로 구성된 ‘울프전집 간행위원회’를 구성하여 울프 전집을 선보이고 있다. ‘울프전집’ 간행의 취지는 그동안 모더니즘이나 혹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부분적이고 피상적으로 이해되어온 버지니어 울프의 깊고 울창한 문학 세계를 바르게 조명하는 것이다. 하나의 논리를 따라 이루어지는 질서정연한 이야기나 소위 할리우드 영화와 같이 잘 짜인 구성을 가진 이야기를 거부하는 버지니어 울프의 문학에는 논리의 연속성을 끊고 그 끊김이 유발하는 의식의 무수한 곁가지를 의도하는 많은 장치가 있다. 바로 그 장치들 때문에 리얼리즘 계열의 페미니스트들은 울프를 페미니스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소위 전사적인 여권운동가들을 필요로 했던 한국 내의 여성운동권에서도 울프는 그 모범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찍이 울프는 그런 단일 논리의 강제성이 결국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올바른 공존을 해치며 오히려 여성성/남성성을 인위적으로 나누고 강요해왔음을 인식했다. 텍스트의 의미를 고정시키지 않고 복수 시점을 사용하는 유희적 서술의 글쓰기가 바로 강압적인 남성 논리인 서구 형이상학의 환상, 즉 현존의 형이상학의 거부였음을 이해할 때 울프 문학세계의 깊이가 새롭게 이해될 것이다. 울프의 문학에 대한 무성한 논의를 한결 깊고 풍부히 할 ‘울프전집’은 그러한 울프의 의도를 그대로 살려 번역함으로써 울프가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는 인본주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녀의 문학에 어떤 모습으로 스며들어 있는가를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올랜도』 따라잡기 이 작품의 성격은 대단히 특이하고 난해하다고 볼 수 있다.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제1장에 등장하는 주인공 올랜도는 남자이고, 나이는 16세. 신분은 귀족이고, 경제적으로 대단히 부유한 상태이다. 그는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여기서 울프는 참나무를 등장시키는데, 이것은 한 그루의 나무로서, 올랜도가 쓰는 시의 제목으로 이 작품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울프는 나무의 이미지를, 우리의 삶 가운데 존재하기는 하지만 범접하기 힘든, 고양된 순간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1586년부터 1928년까지 올랜도가 써나가는 문제의 시 「참나무, 한 수의 시(The Oak Tree, a Poem)」가 바로 그것이다. 첫장에 보면, 그해 겨울 유례가 없는 혹심한 서리가 내려 모든 것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이는 올랜도가 남성성의 세계에 너무 깊숙이 진입하여 감성의 영역이 얼어붙는 것을 상징적으로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러시아 공주 사샤를 만난다. 이 여인은 올랜도의 분신으로 등장해서 표면적으로는 올랜도의 연인이 되었다가 곧 그를 배신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장의 말미에 가서는 얼어붙었던 땅 위에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난 듯 굉음을 동반한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린다. 제2장에서 올랜도는 어느 날 혼수상태에 빠져 만 7일 동안 자고 일어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연상시키는 이 수법은 판타지라든가 가벼운 재미 등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상징적 차원에서 보다 심오한 의미를 갖는다. 주인공의 정신적 성장 과정에서 하나의 중요한 획을 긋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첫 장에서 사샤로 인해 사랑의 고뇌를 맛보고 한 걸음 성숙한 주인공은 다음 단계에서는 세속적인 야망과 명예욕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고 나서 명예의 덧없음을 실감한다. 명예란 운신의 폭을 좁히고, 감성의 발달을 저지시키는, 속이 빈 강정을 싸고 있는 화려한 방패와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에 이른다. 그래서 한동안 은둔생활을 한 후 해리엇의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의 대사로 떠난다. 해리엇은 올랜도의 숨겨진 여성적 요소를 반영한다. 그녀는 올랜도의 삶에 유령과도 같이 끼어들어 남성성만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주력하고 있는 올랜도에게 여성성도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도록 인정사정 없이 괴롭힌다. 제3장에서는 대사로서의 화려하기 이를 데 없으나 공허하기 짝이 없는 생활이 그려진다. 대사생활 2년 반 만에 올랜도는 공작 작위를 수여받는데, 이 수여식 행사 도중에 큰 소요가 일어난다. 소요가 있던 날 밤, 주인공이 발코니로 나와서 아래에 있는 여자를 밧줄로 들어 올려다가 정열적으로 끌어안고 함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한 여인이 등장해서 증언한다. 이것은 오로지 남성성의 발휘만을 위해서 치닫던 생활이 극에 이르자, 이제는 더 이상 일방적인 독주를 견뎌내지 못하고 여성성을 쌍수를 들어 맞이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또 다시 그는 깊은 잠에 빠진다. 7일째 되는 날 그는 성이 바뀌어 남자가 아닌 여자로 깨어난다. 여자가 된 올랜도는 대사생활을 미련없이 버리고 집시의 무리에 합류한다. 여기서 많은 교훈을 얻고 그녀는 갈 길을 서두르지만 올랜도는 아직도 생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다시 혼수상태에 빠진다. 10일 만에 깨어난 올랜도는 셸을 만나 약혼한다. 올랜도가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땅에 던졌을 때 기적적으로, 그리고 극적으로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져 셸이 나타난다. 낭만적 모험가이며 현대적인 항해사로 등장하는 셸을 실제의 인물이라기보다는 환상적인 인물로서, 단지 법열의 순간을 맛보게 해주는 중개인, 혹은 19세기 결혼 풍습에 대한 풍자의 도구 정도로 쓰인 인물이다. 마지막 6장에서는 여성의 글 쓰는 행위에 대한 사회의 반응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직도 올랜도는 그녀 혼자서 남성성, 여성성 두 요소를 두루 갖추는 길을 찾아야 비로소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이 작업을 완수하고 심리적으로 하나이며 온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아내로서의 역할과 시에 대한 애정 사이의 갈등을 해야 하는데 마지막에 결국 주인공은 어렵사리 삶의 비전을 획득하고 ‘지고의 기쁨’을 맛보게 된다. 이 비전 획득의 상징적 형상화는 3월 20일 목요일 새벽 3시에 올랜도가 아들을 낳는 것과, 그녀의 시를 드디어 출간하는 일이다. 작품 말미에서 자정을 알리는 시계 소리가 열두 번 울리는데, 열두 번째의 울림과 더불어 1928년 10월 11일 목요일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작품이 끝난다. 시계가 열두 번째 종을 치는 순간, 즉 밤과 낮, 어둠과 빛, 그리고 여성성과 남성성의 교차 지점에서 야생의 거위가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데, 이것은 상반되는 요소들의 결합, 그리고 이 결합으로부터 거위로 상징되는 ‘생명’, ‘진리’, 그리고 ‘영혼’ 등이 솟아오는 것을 상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