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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전집을 발간하며―5
제1장―9 제2장―39 제3장―60 제4장―81 제5장―110 제6장―132 해설―158 ‘자기만의 방’을 위하여_오진숙 연보―167 |
Adeline Virginia Wo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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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략하게 미스 시튼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몇 년 동안이나 교회당 지붕 위에 있었던 석공들에 대해, 땅속에다 퍼 넣을 금화, 은화 자루를 어깨에 메고 온 왕들과 여왕들과 귀족들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우리 시대의 재정의 거물급들이 나타나서는 다른 사람들이 금괴와 제련되지 않은 금덩어리를 내려놓던 곳에다 수표와 증권을 놓게 되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였지요. 저기 있는 대학들의 발밑에는 그 모든 것이 놓여 있다고 말하였지요. 하지만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대학으로 말하자면 그 호사스러운 붉은 벽돌과 정원의 텁수룩한 야생초 아래 무엇이 놓여 있을까요? 우리가 저녁 식사를 받아먹은 그 무지 접시 뒤에, 그리고 (내가 막을 새도 없이 내 입에서 이 말이 불쑥 튀어나왔는데) 그 쇠고기와 그 커스터드 그리고 그 말린 자두 뒤에는 무슨 세력이 있을까요?
--- p.32 인생이란 양성 모두에게?나는 보도를 따라 어깨를 밀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지요?힘들고, 어렵고, 하나의 영원한 투쟁입니다. 그것은 커다란 용기와 강인함을 요구합니다. 또한 우리는 무엇보다 환상의 동물이므로 인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요구합니다. 자신감이 없이는 우리는 요람 속의 어린 아기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헤아릴 수 없으면서도 말할 수 없이 소중한 자질을 가장 빠르게 갖출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함으로써이지요. 즉,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타고난 우월함을 가지고 있다고 느낌으로써이지요?그 우월함은 재산, 지위, 곧은 콧대, 혹은 롬니가 그린 할아버지의 초상화일 수도 있지요.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애처로운 책략에는 끝이 없으니까요. 따라서 뭔가 정복하고 지배해야만 하는 가장에게는 사실상 인류의 절반인 수많은 사람들이 본디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되겠지요. --- p.51~52 16세기의 런던에서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시인이며 극작가인 여성에게는 그녀를 족히 죽였을지도 모르는 신경의 압박과 딜레마를 의미하였지요. 만일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써놓은 것은 무엇이든 간에 긴장되고 병적인 상상력에서 나왔으므로 비틀리고 기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그녀의 작품은 서명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성이 쓴 희곡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책꽂이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익명이라는) 도피처를 그녀는 반드시 찾았을 테니까요. 19세기와 같은 최근까지 여성들에게 익명을 명령한 것은 정조 관념의 잔재이지요. 커러 벨, 조지 엘리엇, 조르주 상드 등 이들의 작품이 증명하듯 이 모든 내적 투쟁의 희생자들은 남자의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감추려고 쓸데없이 애를 썼지요. 이리하여 그들은 남성들에 의해 주입되지는 않았더라도 아낌없이 장려된 (가장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페리클레스7는 여성으로서 최고의 영광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라고 그 자신이 말하였지요) 관습, 즉 여성들에게 널리 알려진다는 것, 곧 명성은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관습에 경의를 표했던 것이지요. --- p.71~72 책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배회하면서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메리 카마이클은 단지 관찰자로서의 자신에게 알맞게 되도록 작업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나는 사실 그녀가 (내가 생각하건대) 소설가라는 부류 중에서 훨씬 덜 재미있는 분파, 즉 사색적인 소설가가 아닌 자연주의 소설가가 되려는 유혹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녀가 관찰할 새로운 사실들이 너무나 많긴 하지요. 그녀는 더 이상 중상류층의 고상한 집에 자신을 한정시킬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그녀는 친절을 베풀거나 짐짓 겸손하게 굴지 않고 동료애를 갖고 고급 창부와 매춘부, 그리고 발바리를 가진 부인이 앉아 있는 작고 향수 냄새가 나는 방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거기에 그들은 남성 작가들이 그들의 어깨에 억지로 갖다 입힌 조잡한 기성복을 입고 여전히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메리 카마이클은 가위를 빼 들고 각이 지거나 들어간 모든 부분에 딱 들어맞게 그 옷들을 잘라 입힐 것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 이 여자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진기한 광경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메리 카마이클은 아직도 여전히 우리의 성적 만행의 유산인 ‘죄’에 직면하여 자의식으로 번민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계층을 나타내는 번지르르한 옛 족쇄를 차고 있을 테니까요. --- p.122~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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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통해 남성의 심리와 가부장적 사회를 꿰뚫어 보다
울프의 페미니즘이나 그녀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는 문학론에 관해서는 『자기만의 방』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한 여성으로서, 한 작가로서 인생과 예술의 성숙기를 맞은 마흔일곱 살에 발표한 이 책은 예술과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한 많은 시사를 담고 있으며, 울프 문학이 지닌 난해한 모더니즘 특성들이 이루는 다중적 관점과 다층적 구조가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성 고유의 가치들이 살아 있는 복수태로서의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보여준다. 페미니즘의 교과서라 불리는 『자기만의 방』은 1928년 케임브리지의 여자 단과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부탁한 강연회를 위해서 씌어진 글을 수정하여 출간한 것으로, 페미니스트 문학론과 여성 작가론, 그리고 페미니즘 일반에 관한 논의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여러 명의 화자를 등장시켜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그로 인한 분노를 갖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분노가 현상주의적 투쟁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근본적인 현실 변혁의 지혜를 독자 스스로 얻을 수 있게 하는, 울프 특유의 서술 구조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다른 페미니즘 비평서들이 여성의 평등과 해방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목소리로 호소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때문에 몇몇 리얼리즘적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울프의 작품들이 갖는 이러한 다중적 관점과 다층적 구조의 형식이 바로 그녀의 문학관에 이어지고 있음을 이해할 때 울프의 페미니즘 또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녀의 문학 여정이 여성해방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는 여정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다소 난해한 구성이라든가 필자의 뚜렷한 목소리로 독자를 설득하는 방식을 피하려는 태도는 기존의 남성적 글쓰기를 벗어나 울프 자신의 글쓰기, 페미니스트적 글쓰기의 창조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삶과 진정한 예술로서의 글쓰기를 이야기하다 『자기만의 방』은 서구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가부장제의 철학인 형이상학이 요구하는 이분법적 사유, 그로 인한 좋고 나쁨의 구별, 여성/남성의 구분, 근본적 진리의 환상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그 모색 방법을 우리 스스로 새롭게 찾아나서야 함을 역설한다. 요란한 웅변을 토하지 않는 울프의 페미니즘이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투쟁으로서의 여성운동 차원을 넘어, 가부장제가 강요한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남성과 여성 모두의 해방을 꿈꾸기 때문이다. 울프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적 구별을 공고히 하거나 여성으로서의 특수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울프는 『자기만의 방』을 통해 당시 여성적 글쓰기와 남성적 글쓰기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거부하고, 진정한 의미의 글쓰기는 여성과 남성의 경계성을 넘나들면서 통합적으로 느끼고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책은 페미니스트로서의 울프의 모습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깊고 풍성한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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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작인 『출항』(1915)에서부터 시작된, 적절한 문학 형식을 찾아 나선 울프의 모더니스트적 항해는 바로 그녀의 내면세계를 탐험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그 내면세계의 기저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성gender의 문제이다. (……) ‘자기만의 방’과 ‘오백 파운드의 돈’의 일차원적 의미의 관점에서, 그리고 가부장제 아래 여성의 억압과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관점에서 이 작품을 보고 마는 것은 작품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아니며 알맹이를 놓치는 일이다. (……) 울프가 말하는 ‘자기만의 방’은 “여성이 남성처럼 글을 쓰고, 남성처럼 살고, 남성처럼 보이”기 위한 곳은 아닌 것이다. 울프는 이 글의 여러 군데에서, 특히 후반부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가부장제 재현 체계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은, 아니 걸려들 수가 없는 여성 고유의 가치와 “기록되지 않은 몸짓과 말해지지 않은 또는 반쯤 말해진 것들”의 위력을 인지하고 있었다. - 오진숙 (연세대 학부대학 대학영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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