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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이 자라는 속도
양장
허은희
청색종이 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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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005 시인의 말


13 동행
15 토르소
16 냉담
17 아는 사이
18 코러스 밖을 펼치면
20 미늘
22 누가 씹던 껌을 붙여놓았다
23 알프라졸람
24 체벌의 방식
26 뱀이 또아리를 틀 때
27 미끼를 물었다
28 오른쪽 눈동자와 왼쪽 눈동자는 언제 마주치나
30 절정, 직전
31 노숙
32 역 울음


35 아직 이른 시작
36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므로
38 의문형 대화
40 복화술은 언제 배웠니
41 당신의 어깨는 당신의 어깨가 아니다
42 불특정 다수
44 폐쇄병동
45 어떤 작업의 형식은 악수(惡手)에서 시작된다
46 줄 넘기
48 달에 찍힌 시놉시스
50 제자리걸음
51 마중물
52 그물 속 하모니
53 오역


57 스무 켤레의 신발을 갈아 신는 동안
58 초조(抄造)한 코
59 가차된 표정
60 거울 속 커튼콜
61 아이스크림의 취향
62 함정
63 우발적 경로
64 가위
65 촉
66 선문답
67 휴대폰 전원을 꺼주세요
68 감긴 눈들의 잠


71 스타카토 효과
72 소리로 빚은 오타
73 못갖춘마디
74 의심스런 알람
76 여독
77 징후
78 가위 바위 보
80 지루한 잠
81 졸피뎀

해설
83 결여된 자들의 노래 | 김대현(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2003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열 한 번째 밤』 『손톱이 자라는 속도』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2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00쪽 | 118*184*15mm
ISBN13
9791193509289

책 속으로

ㅂ이 없는 빵과
ㅇ이 없는 우유를 마시고
집에 오면
ㅂ이 빠진 아빠와
ㅇ이 빠진 엄마가 있다

없는 것들은 서로 닮은 구멍이 있어
헐렁한 방향으로 쏟아지기도 하지

탈선한 객차에 실린 짐짝들이
비슷한 표정으로
안심하며 흔들리는 것처럼

이 빠진 접시에 손가락을 베인
이런 날
무릎을 꿇으면
멋진 방언이 터질 것 같아
없는 죄까지 빌려 와
죄다
불어버릴 수 있는데

그건 가짜에 떨고 있다는 고백이란다

구멍 가린 커튼을 들출까 말까
불완전한 자막들이 손을 모은다
--- 「동행」 중에서

종점의 표정과 당신의 자세는 닮아 있다

당신의 오늘은 오늘이 아닌 것처럼

문이 닫히고
눈앞이 노랗더라

하늘은 색도 없고 빛도 없이
절망의 인사처럼 유연한데

서로의 품을 재느라 다다르지 못한 곳은 어디인가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더 오래전에 한 말을 오늘 떠올린다

노을이 잠꼬대로 지고 있다

--- 「아직 이른 시작」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이 시집의 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거나 보듬는 위치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무너진 것들 깨진 것들은 / 안부를 전하는 방법을 모릅니다”라는 진술처럼 관계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조건 위에 놓인다. 화자와 타자는 서로 다른 부족의 말을 쓰며, 같은 방향으로 서 있지 않고, “엎드린 자세만 닮”아 있다. 이 닮음은 친밀의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오해의 출발점이다. 허은희의 시는 관계를 교감의 사건으로 그리지 않고, 실패가 반복되는 구조로 배치한다.

이러한 구조는 신체 이미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시집의 신체는 온전하지 않다. “토르소”, “잘린 팔 다리”, “짝이 다른 신발”, “목발”, “줄에 걸린 발목”은 상처의 비유라기보다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의 도식이다. 넘어짐과 절뚝임은 예외적인 사고가 아니라 기본 자세가 된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 신체는 감정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세계와 부딪히는 방식 그 자체다. “언제까지 짝이 다른 신발을 주문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불운의 탄식이 아니라 항상 어긋난 조건 속에서만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의 상태를 묻는다.

소리는 이 신체적 어긋남을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허은희의 시에서 음악은 위안의 매개가 아니라 불일치의 증폭 장치다. 「토르소」에서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발음하는 행위는 문을 여는 동작이 아니라, 발음이 의미에 도달하지 못하는 과정이다. “이제 막 지나간 / 기타의 에이마이너만 좇는 귀”는 감정의 조율이 아니라 이미 사라진 것만을 추적하는 감각이다. 「스타카토 효과」에서 연주는 흐름이 아니라 단절의 연속으로 제시되며, “마비된 음 하나”는 끝내 꺼내지지 않는다. 소리는 연결을 약속하지 않고, 오히려 관계가 끊기는 순간을 반복해서 들려준다.

허은희의 언어가 특히 강하게 작동하는 지점은 말이 ‘음식’처럼 다뤄질 때다. 「체벌의 방식」에서 “그냥 하는 말들”은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관용구가 아니라 입속에서 질척이는 덩어리로 남는다. 그 결과 “목에 걸린 건 / 가시가 아니라 손톱이었다”라는 전환이 발생한다. 손톱은 몸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도구다. 자라고, 갈리고, 씹히며, 결국 다른 몸을 할퀸다. 여기서 ‘손톱이 자라는 속도’는 시간의 은유가 아니라 상처가 반복적으로 갱신되는 주기를 가리킨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 / 할퀴어질 것들은 / 새 옷을 입고 태어날 거야”라는 문장은 회복의 낙관이 아니라, 상처가 다시 태어나는 메커니즘에 대한 관찰이다.

약물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시편들 역시 안정이나 진정을 향하지 않는다. 「알프라졸람」과 「졸피뎀」에서 약물은 상태를 덮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절단과 파편화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깨진 거울 / 잘린 눈 코 입 // 달아난 고백”은 무너진 자아의 묘사가 아니라, 정상이라는 기준이 이미 파손된 상태임을 보여주는 배열이다. 이 시집에서 병동, 폐쇄, 체벌, 징후는 예외적인 공간이 아니라 관계가 기본적으로 작동하는 장면이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숨은 증상이었구나”라는 문장은 친밀의 언어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조건이 되는 상황을 정확히 지시한다.

형식적으로도 이 시집은 끊임없이 절단과 과잉을 오간다. 어떤 시는 행을 짧게 끊어 파편을 던지고, 어떤 시는 산문처럼 밀어붙이며 숨이 찰 때까지 이어진다. 이 차이는 변주라기보다 동일한 상태의 다른 표정이다. 말이 끊길 때는 침묵이 아니라 곰팡이 핀 글자들이 입속에 들어차고, 말이 이어질 때는 해명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발목을 조정하는 동작이 된다. 이 시집에서 말하기는 언제나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한 몸의 반사 작용에 가깝다.

“나를 잃는 것이 / 나의 일이었”다는 시인의 말 역시 하나의 긍정적 선택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시집 전반에 걸쳐 자기 소거는 스스로 감수되는 장면과 반복되는 압력 속에서 굳어지는 장면을 동시에 가진다. 「마중물」에서 “퍼 부은 손과 퍼 올린 손”이 합장을 하며 물을 긷는 장면은 어떤 지속을 보여주지만, 그 지속은 구원의 서사가 아니라 끝까지 몸을 소모하는 동작이다. “이제껏 하지 못한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말 것”이라는 문장은 말의 절제가 아니라, 말이 드러나는 순간 감당해야 할 파열을 알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

허은희의 시에서 관계란 결국 사투에 가깝다. 「미끼를 물었다」에서 말하듯, 그것은 “알몸으로 날을 가는 것”이며 “줄이 끊어질 때까지 흔들리는 일”이다. 쥐와 고양이가 서로를 물고 물리는 「가위 바위 보」의 반복 구조는 승패의 은유가 아니라, 역할이 고정되지 않는 순환을 보여준다. 여기서 누구도 최종적으로 안전한 위치에 도달하지 않는다. 다만 반복만이 남는다.

이 시집의 말들은 완결을 지향하지 않는다. “찢긴 한 장의 모서리로 서사를 이으려”는 시도처럼 말들은 늘 불완전한 상태로 서로를 긁고 스치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허은희의 시는 결여가 언어를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기록이다. 말은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대신 상처가 생겨나는 속도를 정확히 따라간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는 그 속도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시집이다.

추천평

허은희의 말들은 결여된 존재의 말들이다. 이는 완전한 말들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시집의 윤리가 있다. 완전한 말은 도달의 언어이자 닫힌 말들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질문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결여된 말들은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시작의 말들이다. 그래서 허은희의 말들은 “뼈는 뼈대로 살은 살대로 흩어진다/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굴러다”(「함정」)니며 서로 충돌한다. 그렇게 말들은 우리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상처 입고 서로를 상처 입히며 무너지고 다시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친다. - 김대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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