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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度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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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웃고 나서 미카가말했다.
'하지만 디젤 기관차도 외로워질때가 있겠지요?' '디젤 기관차는 자신이 가장 빠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순간도 외로워할 틈이 없을걸.' '바로 그거예요.' '뭐라구?' '외로워할 틈이 없다는 것, 그게 문제라구요.' 한참 입을 다물고 있다가 미카라 말했다. '가장 빠르다는 건 우쭐 댈 일도 아니고, 또 가장 빠르다는 걸 부러워할 일도 아니지요.' '그래, 그건 무슨 말인디 알겠어. 그런데 가장 빠르게 달리는 디젤 기관차가 외로워질때가 있을 거라는 말은 무슨 뜻이지?' 여러분도 생각해보라. 이 세사아에 외로워지고 싶은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미카는 생각이 좀 다른 것 같았다. '외로움이라는 특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이거든요.' '특혜? 외로움이 특별 혜택이라구?'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은 불쌍해요. 디젤 기관차도 마찬가지죠. 그도 분명히 외로워질 때가 있을 거예요. 좀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그리고 나서 미카는 한마디 덧붙였다. '외로움 때문에 몸을 떠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외로움을 느껴볼 시간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 p.9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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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는 신형 디젤 기관차에게 처음으로 선로를 내주던 치욕스런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던 어느 시골 간이역에서였다. 미카는 간이역의 플랫폼으로 진입하여 숨을 고르고 있었다. 시골 간이역의 낡은 역사는 땅바닥에 버석처럼 낮게 몸을 낮춘채 웅크리고 있었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출입구쪽 기둥들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흰 바늘처럼 일어나 있었고 희끗희끗한 기왓장들 사이로 개망초 줄기들이 어린아이들 키만큼 우북하게 자라있었다. 하지만 측백나무 울타리가 쳐진 역 구내 꽃밭은 전쟁중이 었음에도 아주 단정하게 가꾸어져 있었다. 여기는 전쟁의 살벌한 발작국이 닿지 않은 곳인가?
--- p.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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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저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었구나, 하고 감탄을 하겠지. 그러나 여기 사람들은 단풍 든 빛깔만 보고도 그 나무의 이름은 물론 나무의 나이, 성질, 쓰임새...... 모르는 게 없다구. 그게 중요한 거야. 앞으로 말야, 점점 빨리 달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될지도 몰라. 빨리 달리는 데 취해 있으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될 거야. 그건 정말 비극이지.'
--- p.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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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을 향해 가는, 상처입은 영혼들의 쓸쓸한 이야기
"증기 기관차는 완전한 과거가 되었다. 과거란 사라진 시간을 말하지만, 그 영광과 상처의 추억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증기 기관차의 운명과도 같은 느림의 추억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고백처럼 『증기기관차 미카』는 시간에 쫓겨, 세월에 밀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풍광이나 이웃과의 작지만 따뜻한 나눔을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금은 여유 있게 조금은 찬찬히 세상을 둘러보며 나아가도 좋겠다고 말한다. 그 느린 걸음은 단순한 속도의 의미를 뛰어넘어 지나온 삶의 추억으로 살아남아 생을 더욱 빛나게 하기에. 증기 기관차가 한반도의 철길 위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1967년 8월 31일이었다. 1899년 제물포-노량진 간 경인선에서 첫 선을 보인 뒤, 68년 만에 디젤 기관차에게 철마의 자리를 내어준 것이었다. 그때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선 증기 기관차 252대 중 하나였던 미카. 한때는 한반도의 남쪽 바닷가에서 폭설이 지는 만주 벌판까지 거침없이 내달리던 증기 기관차가 이제는 철도박물관 마당을 지키는 신세가 되어 있다. 34년 전 미카를 운전하던 기관사 ‘나’는 이제 노인이 되어 미카를 찾아간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미카를 알아볼 수 있었던 건 함께 아파한 상처의 기억들 때문이었다. 옛 친구를 만나 감격에 겨운 둘은 함께 했던 시간들, 그때의 꿈과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홀로 우는 아이가 안타까워 떠나지 못하던 미카, 멈춰 선 미카로 인해 고초를 겪어야 했던 나, 빠르게 달리는 것이 최고가 아님을 일깨워준 간이역,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끝없이 파도를 보내던 바다, 자연을 파헤치는 포크레인을 보며 두려움에 떨던 순간, 요절한 애인을 그리워하며 날마다 미카를 찾던 옛 청년의 순정……. 그들의 추억은 한결같이 삶의 온기에 닿아 있다. 그것은 속도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앞으로 말야, 점점 빨리 달리다 보면 사람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될지도 몰라. 빨리 달리는 데 취해 있으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될 거야. 그건 정말 비극이지." "외로움이라는 특혜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랍니다.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외로움을 모르는 사람은 불쌍해요. 외로움 때문에 몸을 떠는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외로움을 느껴볼 시간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거예요." 이제 남은 둘의 꿈은 하나. 다시 한번 달려보는 것이다.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아니 압록강 철교를 넘어 만주벌판까지. 결국 그 둘은 출발을 한다. 눈 속을 헤치고 토성, 려현, 물개, 흑교, 력포, 간리, 어파, 영미, 로하, 동림, 남시, 비현, 백마, 석하, 신의주……까지. 이 그리운 마을들을 쉬지 않고 달리는 미카를 운전하며 ‘나’는 행복에 겨운 웃음을 띤다. 하지만 다음날 박물관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고물 기관차 운전대를 힘껏 쥐고 싸늘히 식어 있는 한 노인의 주검이었다. 김훈씨가 표현한 것처럼 "기관사는 그리움의 무게에 눌려서 죽고, 기차는 그 힘으로 사람 사는 마을에 닿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