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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궁정동의 총소리
믿기 힘든 이야기 2.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죽음 3. 김재규가 박정희를 쏜 까닭은? 4. 이상한 재판 5. 김재규의 진술 제2부. 한남동의 총소리 생일집 잔치 뒤바뀐 세상 서울의 봄 서울역 회군 제3부. 광주의 총소리 비상계엄의 확대 화려한 휴가 시민들의 동참 시민들이 무장을 하게 된 까닭 해방 광주 새로운 지도부의 탄생 최후의 항쟁 아아, 광주여 제4부. 광주를 기억해야 하는 까닭 대통령이 된 전두환 성공한 군사 반란도 처벌할 수 있다! 기록하고 기억하라 역사의 교훈 부록 | 한눈에 보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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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동의 총소리
그날도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술자리를 가졌어. 그 자리에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이 함께 참석했지. 대통령, 비서실장, 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이라니! 그야말로 당시 우리나라 권력의 핵심이 한자리에 모두 모인 셈이었어. 탕! 그런데 그 자리에서 갑자기 총성이 울렸어. 탕! 이어서 또다시 총성이 울렸지. 김재규가 갑자기 경호실장 차지철과 대통령 박정희를 연달아 쏜 것이었어.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어. 이렇게 박정희는 자신이 가장 믿었던 부하 중의 하나였던 김재규에 의해 죽고 말았어. 이로써 18년에 걸친 박정희 정권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지. 도대체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총으로 쏘았을까? 한남동의 총소리 1979년 12월 12일 오후 7시, 작전이 시작됐어. 체포조는 한남동에 있는 참모총장 공관에 들이닥쳤어.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에게 10·26 사건과 관련해서 조사할 것이 있다며 연행하려 했어. 하지만 이미 10·26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다 받은 정승화는 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어. 대통령이 자신에게 진짜 체포 명령을 내렸는지 확인해야겠다며 전화기를 들었어. 결국 마음이 급해진 체포조는 총을 쏘며 정승화를 납치해 갔어. 광주의 총소리 탕! 타타타타! 탕! 탕! 애국가가 끝날 무렵이었어. 갑자기 총소리가 빗발치더니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어. 계엄군은 마치 애국가가 끝나는 것이 발포 신호였던 것처럼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로 총을 쏘기 시작했어. 놀란 시민들은 정신없이 도망쳤어. 하지만 계엄군은 도망가는 시민들 등 뒤로도 계속 총을 쐈어. 시위대에게 총을 쏜 건 시위대와 마주하고 있던 계엄군들만이 아니었어. 시위대를 향한 총알은 사방에서 발사됐어. 도청 주위에 있는 높은 건물에서도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했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헬기에서도 총알이 날아왔어. 광주를 기억해야 하는 까닭 국회 앞에는 수많은 시민이 모여들어 비상계엄 해제를 외쳤어.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길 응원했지. 그 과정에서 계엄군의 장갑차를 막아서기도 했어. 국회 앞에 가지 못한 시민들은 가슴을 졸이며 밤새 텔레비전 화면을 떠나지 못했어. 뉴스 속보를 통해 국회 안의 모습과 국회 밖 시민들의 모습, 또 계엄군의 모습이 그대로 방영되고 있었거든. 그리고 드디어 12월 4일 새벽 1시 20분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됐어. 참석한 국회의원 190명이 모두 찬성했지.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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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1980년 광주를 기억해야 하는 까닭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수많은 군인이 우리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눴어요. 많은 시민이 그 총알에 쓰러졌지요. 이 충격적이고 슬픈 일은 왜 일어났을까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는 그저 지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일이기도 해요.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빨리 막아 낼 수 있었던 건 우리가 1980년 광주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잘못된 비상계엄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1980년 광주를 기억해야 하는 까닭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