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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머 헐버트-또 한 명의 대한제국 비밀 특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의 침략을 폭로하다 일본에 맞선 호머 헐버트의 독립운동 -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세계에 알리다 - 고종의 특명, ‘을사늑약’을 막아라 - 약탈자 일본에 맞선 헐버트 - 또 한 명의 헤이그 특사, 헐버트 호머 헐버트의 생애 호머 헐버트의 독립운동이 주는 의미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후세 다쓰지-조선의 독립을 변호한 일본인 변호사 일본인 변호사가 전라도 농민들을 지원하다 일본에 맞선 후세 다쓰지의 독립운동 - 2·8독립선언 후, 조선인 변호를 시작하다 - 후세의 첫 번째 조선 방문 -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을 파헤치다 -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부부를 위해 변론하다 - 일본 황궁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을 변호하다 - 후세의 두 번째 조선 방문 후세 다쓰지의 생애 후세 다쓰지의 독립운동이 주는 의미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어니스트 베델-일제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린 언론인 의병 봉기의 책임은 일본에게 있다 일본에 맞선 어니스트 베델의 독립운동 -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박하다 - 을사늑약 체결이 부당하다는 기사를 연달아 쓰다 - 고종의 밀서 사진을 『대한매일신보』에 싣다 - 두 번이나 계속된 베델의 재판 어니스트 베델의 생애 어니스트 베델의 독립운동이 주는 의미 내가 죽더라도 신보는 살아남게 해서 한민족을 구하라 조지 쇼-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수호자 의열단을 도와 ‘죽음의 화물’ 폭탄을 운반하다 일본에 맞선 조지 쇼의 독립운동 - 이륭양행 배에 상하이 망명길에 오른 김구를 태우다 - 이륭양행에 독립운동가들의 거점을 만들다 - 이륭양행, 의열단의 기지가 되다 조지 쇼의 생애 조지 쇼의 독립운동이 주는 의미 50년 만에 주인을 찾은 대한민국 건국훈장 부록 | 외국인 독립유공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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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헤이그 특사, 호머 헐버트
고종은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걸 세계에 알리고,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고심했어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걸 알고 고종은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특사로 임명했어요. 그리고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기 전에 대한제국과 조약을 맺고 있는 국가 원수들에게 만국평화회의와 관련한 도움을 요청하는 친서를 전달하는 특사로 헐버트를 임명하였어요. 고종은 헐버트에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일본의 불법적인 침략을 공론화하고, 국제중재재판소에 제소될 수 있도록 각국 원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명했어요. 고종의 명은 일본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이루어졌어요. 조선인을 도운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 일제강점기 조선과 일본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이 법원에서 다뤄졌어요. 그중에서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으려는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빼놓을 수 없어요. 조선인들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독립을 이루려고 했고, 일본 정부는 일본 제국에 반역하는 조선인들을 중죄인 취급했어요. 이 시기에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면서 법정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무죄 방면을 위해 치열하게 변론했어요. 또 일본 내 조선인과 조선인 노동자들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웠고, 식민지 조선인의 재산과 권리를 되찾기 위한 다툼을 함께했어요. 그리고 일본 경찰의 비도덕적인 수사 방식과 비겁하고 염치조차 없는 재판장을 비난했어요. 그 당시 조선인들이 ‘우리 변호사 후세 다쓰지’라고 부른 것만 봐도 후세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어요. 일본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린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 베델은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탈하려는 시점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창간했어요. 일본은 모든 신문을 검열했지만, 영국인 베델의 신문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아 양심에 따라 기사를 내보냈어요. 어둡고 깜깜한 시절, 사실에 근거한 그의 신문은 한 줄기 빛이 되어 국민의 가슴에 애국심을 일깨웠어요. 베델은 일제에 대항하여 강력한 논조로 침략과 수탈 정책을 비판했어요. 강압적으로 체결된 을사늑약의 경위를 폭로하고, 고종의 밀서를 실어 을사늑약이 무효라는 것과 일본의 만행을 나라 안팎에 알렸어요.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수호자, 조지 쇼 일제는 조지 쇼를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어요. 중국에서 치외법권을 인정받는 외국인인 그가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걸 눈엣가시로 여기면서도 일제는 그를 체포할 수 없었어요. 쇼는 “망국민을 동정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고, 소국의 독립은 세계의 대세이니 다수의 한국인 친구로부터 독립운동에 관해 상의를 받았을 때는 적당한 조언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라고 공언할 정도로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는 데 힘을 쏟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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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운 외국인들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하고 국권 수복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나라도 피부색도 달랐지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양심에 따라 정의를 지키기 위해 조선인을 도왔어요. 네 분의 삶을 살펴보면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보았으면 좋겠어요. 호머 헐버트 또 한 명의 대한제국 비밀 특사. 고종의 특명으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하는 국가들의 원수를 미리 만나 친서를 전달하고, 대한제국의 현실을 알리는 임무를 맡았어요. 그리고 특사 이상설과 이준이 무사히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왔어요. 후세 다쓰지 조선의 독립을 변호한 일본인 변호사.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비판하며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땅을 빼앗긴 궁삼면의 농민들 편에 섰어요. 1919년 2·8독립선언으로 인해 체포된 조선 유학생들의 변론을 시작으로, 광복 전후 재일본 한국인과 관련된 사건의 변론을 도맡았어요. 어니스트 베델 일제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린 언론인. 영국 언론인으로, 1904년 7월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창간했어요. 이후 두 신문을 통해 일제의 황무지 개간 계획의 부당함과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었음을 알렸어요. 조지 쇼 독립운동가들의 수호자. 아일랜드계 영국 기업인으로, ‘이륭양행’이라는 해운업을 하며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를 도왔어요. 또 이륭양행 건물 2층에 ‘안동교통국’을 세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