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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글│부끄럼 타는 한 소박한 초인超人의 생애
제1장 상모리 소년 제2장 대구사범 시절 제3장 산촌山村의 교사 제4장 만군滿軍장교 제5장 형兄의 죽음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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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군 중위 박정희가 일본인 장교들과 함께 그 만주군에 의해서 무장해제를 당했을 때 느꼈던 감상은 신현준 상위처럼 착잡했을 것이다. 그의 회고록 《노해병의 회고록》을 인용한다.
[만주군 장교가 된 이래로 계속 소중히 아끼고 있던 손때 묻은 군도軍刀, 권총, 쌍안경을 고스란히 바치게 되었을 때의 그 심정이란 마치 하늘을 날던 새가 날개를 잃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국해방의 기쁨을 안고 희망찬 장래를 기대하면서 전진하기로 결의하였다.] 머나먼 만리장성 산중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광복의 그날을 맞은 박정희, 아니 다카키 마사오는 그러나 잃은 것이 더 많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군인의 길을 결단했던 그는 일본이 항복하는 순간 자신이 서 있던 자리가 바로 일본 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원폭과 소련의 참전에 의해 앞당겨진 광복이었기에, 그 광복의 소식조차도 이틀 뒤에야 알았듯이 이 결정적인 순간에 박정희는 역사의 격류 속에 무력한 존재로 내던져지고 말았다. 일제의 압제에 대해서는 그토록 반발한 그였지만 그 일본 장교들과 같은 취급을 받아 군도도, 계급도, 월급(약 150원)도 박탈당한 박정희였다. 이때야 비로소 그는 박상희 형이 그토록 말리던 만주행을 후회도 해보았을 것이다. 민족해방의 순간에 서서 기쁨보다도 걱정이 앞서게 된 박정희의 25시. 나라가 힘이 없으면 국민이 구차해진다는 이 실감, 광복이 몰고 온 모순과 곤혹과 갈등의 이 체험이 박정희를 자주인自主人으로 빚어내는 원동력이 된다. --- pp.249-2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