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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예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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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ques Derr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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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유는 진리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유가 그 자신일 수 있는 것은 진리에 도달한다는 것이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할 때뿐이다. 이는 진리를 향해 떠나는 것, 즉 진리를 향해 가는 중인 것, 장애물을 극복하고, 자신의 비겁함과 안일함을 고발하며, 관성을 거부하고, 환상과 환영을 자유롭게 논파하고, 너무 빨리 예라고 말하기를 강요하는 모든 억압에 대해 그 권리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 p.31 “사유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라는 의사표시는 잠든 인간의 것임에 주목하라. 반대로 깨어남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말한다.” --- p.34 타자에 맞서기 전에 그리고 타자와 맞서기 위해 — 그 모든 형태에서 그것이 타인이든 세계든 폭군이든 설교자든 심지어 친구든 — 내가 먼저 대면해야 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적이기 때문이다. 이 적은 나에게 잠을 속삭이고, 도망치기를 권하며, 나로 하여금 저항하지 않고, 검토하지 않고, 항복하거나 설복하게 만드는 내부의 패배주의자다. 그러므로 정신은 트로이전쟁과 같은 것을 벌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적이 항상 이미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 pp.42-43 깊은 잠에 빠진 자 혹은 알랭이 말하는 광인,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나 완전한 맹신의 상태에 있는 자가 만일 순수한 상태로 실존한다면, 그는 ‘예’뿐만 아니라 ‘아니요’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꿈도 꾸지 않고 잠에 빠진 상태, 꿈 그 자체 그리고 순수한 착란의 상태는 언어가 더이상 긍정이나 부정이라는 범주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는 영역이다. --- p.76 불안은 “왜 어떤 것이 있고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불안은 내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피의 기투 자체가 내가 불안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바로 그 순간에 불안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 p.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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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는 잠든 인간의 것임에 주목하라!
반대로 깨어남은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말한다 데리다가 강의 주제로 삼은 이 유명한 문장(“사유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은 철학자 알랭(본명 에밀 오귀스트 샤르티에, 1868-1951)이 남긴 것이다. 무엇을 향한 ‘아니요’인가? 알랭은 이렇게 말한다. “세계를 향해? 폭군을 향해? 설교자를 향해? 그것은 단지 외관일 뿐이다. 이 모든 경우에 사유는 자기 자신에게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유는 행복한 묵인의 상태를 깨뜨린다.” 세계, 폭군, 설교자는 결국 정신이 나 자신을 매개하는 형상에 불과하다. 폭군의 권력을 제어할 자는 항상 나 자신이다. 설교자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는 것은 내가 판단을 포기함으로써다. 세계에 다른 투쟁은 없다. 오직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투쟁만이 있을 뿐이다. 이 도전적이고 강렬한 문구를 통해 데리다가 주목한 것은 확고한 반파시스트이자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알랭의 사유의 근본적인 단호함이었다. 의심의 날카로움이 없다면 모든 인식은 곧 부패하고 만다. 사유란 진리에 최종적으로 도달한 끝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안식이 아니다. 우리는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안식의 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깨어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긍정의 ‘예’로 이행하는 해체적 글쓰기 이 강의에서 데리다가 알랭을 넘어서는 지점은 바로 ‘예’와 ‘아니요’라는 이항적 쌍을 벗어나면서부터다. 데리다는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원해야 한다고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 의지는 하나의 긍정에서 비롯되는데, 바로 가치와 진리 그 자체를 향한 의지에 대한 ‘예’다. 다시 말해 사유는 사유임을 확신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임을 확신하기 위해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예’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요’와 대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니요’의 일종으로 말해지는 이 ‘예’란 무엇인가? 이제 우리는 더이상 순진하고 맹신적인 ‘예’가 아니라 신념으로서의 ‘예’, 새로운 긍정이자 가치론적인 차원의 ‘예’를 발견한다. 이처럼 알랭의 사유 내부에서 그의 문구를 넘어서는 요소들을 탐색하고자 하는 데리다의 시도에서 우리는 훗날 그의 글쓰기의 전형으로 자리잡게 되는 데리다적 에크리튀르(écriture)의 한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긍정과 부정, 그 너머의 사유 데리다 철학의 근원으로 안내하다 라슐리에에서 고블로, 후설, 사르트르를 거쳐 하이데거에 이르는 부정의 철학자의 계보를 그리면서 데리다는 ‘예’ ‘아니요’ 가운데 어느 것이 기원에 오는지 묻는 대신 더 깊은 층위인 존재론적 층위의 ‘아니요’, 존재가 존재자 속에서 자신을 감추는 근원적인 ‘아니요’에 도달한다. 이 존재론적 차이는 하이데거가 언급한 것이기도 하지만, 곧 ‘차연(différance)’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쓰일 데리다적 차이의 사유이기도 하다. 차연, 해체, 대리보충 등 그의 주요 개념들이 탄생하기 전부터 데리다는 이미 그 개념들에 담긴 함축, 즉 존재론, 선과 악, 현전과 부재,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대립을 넘어서는 사유를 열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예’와 ‘아니요’를 둘러싼 물음은 항상 데리다 철학을 관통하는 근본 주제였다. 이 두 단어가 단순한 대칭적인 반대항이 아님은 그의 작업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되며, 이 쌍은 그가 십여 년 뒤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삶과 죽음의 쌍에도 맞닿아 있다. 우리를 데리다 사유의 원천으로 안내하는 이 책은 훗날 현대철학의 지형을 변화시킬 그의 철학이 어떤 문제의식과 사상적 탐구 속에서 싹텄는지 보여줄 것이다. 철학자 데리다의 작업실을 엿볼 수 있는 드문 기록이자 데리다 사유의 궤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 데리다가 손으로 직접 쓴 109쪽에 달하는 분량의 원고를 엮은 이 책에는 그가 정리한 자필 메모와 발췌문이 「부록」으로 함께 수록되어 있다. 또한 강의록 원본 이미지에는 데리다가 삭제와 수정을 가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텍스트를 끊임없이 다시 읽고 재검토했던 그의 사유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데리다는 소르본대학에서 강의했던 이 시기를 그의 고등교육 경력 가운데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회고한다. 프랑스 대학 제도 안에서 강의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였고, 강의 주제 선정부터 세미나 운영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자율성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절 데리다는 주로 하이데거를 강독했지만, 때로는 이렇게 한 문장을 출발점으로 삼아 장시간의 철학적 탐구를 펼치기도 했다. 당시 그의 명성은 빠르게 확산되어 강의실에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청중이 몰렸고 학생들은 서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강의들은 데리다 사유가 가장 자유롭고 실험적으로 전개되던 현장을 담고 있음에도 상당수가 아직 출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철학자 데리다의 작업실을 엿볼 수 있는 드문 기록이자, 그의 주요 개념들이 형성되어가는 궤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