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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부 _ 거울을 보는 일 이토록 다정한 전투 _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흐르는 감각 _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당신이 내가 될 때 _ 「애프터썬」 그러므로 나는 도리 없음을 받아들인다 _ 「패스트 라이브즈」 천국보다 낯선 _ 「콘크리트 유토피아」 돌보는 조연 _ 「더 웨일」 거듭되는 것 _ 「어느 멋진 아침」 그들 각자의 팬티와 고통 _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우리의 가장 좋은 부분 _ 「이처럼 사소한 것들」 사랑도 개발이 되나요? _ 「사랑의 고고학」 끝과 시작 _ 「6번 칸」 2부 _ 어떤 삶이 말하는 것 진실 대신 상처 _ 「추락의 해부」 들르는 감각 _ 「나의 올드 오크」 사랑은 괴리감 _ 「러브 라이프」 (죽지 마) 부활할 거야 _ 「지옥만세」 이름 앞에서 우는 사람 _ 「수프와 이데올로기」 우리 사이의 작고 친절한 것 _ 「말없는 소녀」 내가 사는 집 _ 「센티멘탈 밸류」 살라는 당부 _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외로운 방조자들의 우주 _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3부 _ 이격과 감각 어둠 속에서만 가능한 것 _ 「키메라」 아프다고 말해줘 _ 「세계의 주인」 조금 덜 비겁한 사람이 된다는 것 _ 「아마겟돈 타임」 성장이라는 이름의 생존 _ 「클로즈」 자기혐오의 끝 _ 「서브스턴스」 열리기 위한 문 _ 「스즈메의 문단속」 만신창이 연인 _ 「사랑은 낙엽을 타고」 당신은 나의 당신보다 크다 _ 「클레오의 세계」 냉소와 사랑 사이의 칸 출장기 _ 「슬픔의 삼각형」 4부 _ 장르, 미장센, 숏 사이에서 오래된 무명의 강인함 _ 「기차의 꿈」 잃어버린 캠코더의 모험 _ 「이어지는 땅」 사랑 이야기를 믿다 _ 「3000년의 기다림」 용감한 안녕 _ 「로봇 드림」 후유증 _ 「파묘」 험난한 21세기 관객의 길 _ 「아바타: 물의 길」 술과 목련의 나날 _ 「봄밤」 나오며 |
김소미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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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버스의 원리가 얼마나 거창하든 그녀에게 이제 가장 중대한 문제는 따로 있다. 모든 우주를 보아버린 끝에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된 딸의 옆자리에 서는 것. 캄캄한 전부를 같이 들여다보고도 초라한 우주의 모난 딸을 다시 택하는 것. 그렇게 실패한 인생이라는 오랜 판결을 딸의 손을 잡은 채로 뒤집는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와의 접속이 끝나고 나는 다시 이번 생으로 돌아왔다. 응답 없는 딸에게 엄마는 또 문자를 보내놓았다. 내가 아무리 도망가도 그녀가 나를 계속 쫓아올 거라는 걸 안다. (…)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과 다시 계속 싸우고 싶어졌다.
---p.25 「이토록 다정한 전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중에서 · 이변이 없는 한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 부모의 나이를 언젠가는 따라잡는다.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 채로 상대를 다시 이해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때는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지금은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 때 깃드는 것은 기쁨보다는 쓸쓸한 감정이다. 나 자신이 어린이일 때 가끔 넋 나간 어른의 표정을 대하는 일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나 자신이 어른이 된 지금, 아무리 노력해도 때로는 무구한 어린 존재에게 내 피로를 들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항복한다. 그 괴리 속에서 나는 다시 과거의 많은 얼굴들을 애틋히 떠올린다. ---pp.37~38 「당신이 내가 될 때: '애프터썬'」 중에서 · 어떤 이별은, 이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 사람이 그저 각자 자기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위해 서서히 문을 닫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 「패스트 라이브즈」는 결코 다시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헤어질 때 의례적으로 건네는 인사-다음에 만나자-에 기이한 감정을 얹는다. 나는 이 말이 ‘수천 겁의 윤회와 풍화를 견디고도 너를 다시 만나기를 소망할 만큼 사랑한다’로 들리지 않아서 감동했다. 그보다는 ‘그와 같은 작용으로 탄생한 네 삶을 나는 존중한다. 그러므로 나는 도리 없음을 받아들인다’로 들렸다. 어떤 사랑은 상대를 보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고 나와 체념의 사전적 정의를 검색해보았다. 1.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함, 2. 도리를 깨닫는 마음. ---pp.47~48 「그러므로 나는 도리 없음을 받아들인다: '패스트 라이브즈'」 중에서 · 우리는 실패한 사랑의 영향 아래에 좀 더 있어도 괜찮다. 생산적인 극복, 통렬한 복수, 깔끔한 탈피 같은 것을 재빨리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사랑의 고고학」은 한 사람의 인생에 과거-현재-미래의 사랑이 지층처럼 쌓인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고고학적이지만, 무엇보다 자기 인생에 끊임없이 개발의 역사만을 되풀이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 고고학적이다. 영화는 조용한 시간, 낮은 목소리, 아주 느린 회복 속에서 펼쳐지는 삶을 기꺼이 살아낸다. 과거에 붙잡혀 있지 말라는 바쁜 세상의 독려와는 전혀 반대의 길을 감으로써 영실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p.89 「사랑도 개발이 되나요?: '사랑의 고고학'」 중에서 · ‘들르는’ 행위는 어떤 장소를 찾는 일이 무겁지 않다는 뉘앙스를 내포한다. 바로 그렇기에 어떤 면에선 약간의 사치도 된다. 정주하는 내 집도, 출퇴근하는 노동의 장소도 아닌 제3의 장소로 향할 때에만 우리는 들를 수 있다. 짧지만 단순한 집중이 있기에 머무르는 시간의 밀도도 깊어진다. 그러니 어감은 가벼울지 몰라도 정작 소유하기에는 귀한 행동이다.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부족할수록, 삶이 무서울수록, 몸과 마음이 힘들수록 좀처럼 어딘가에 들르는 일은 요원해진다. 차라리 끊임없이 어딘가로 내몰려 갈 뿐이다. 21세기의 노동자, 이주민 영화가 숨 가쁜 스릴러로 자주 치환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반대로 「나의 올드 오크」는 자꾸만 사람들을 멈춰 세운다. 어딘가에 들어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 나오게 한다. ---pp.115~116 「들르는 감각: '나의 올드 오크'」 중에서 · 예술은 세계의 악의를 악의로 남겨두지 않고 안간힘을 써 정화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예술은 또 하루치의 돌탑 같아서 전쟁과 같은 현실의 위용 속에서 무참히 파괴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단 하루의 지탱을 위해 예술은 지속된다. 비뚜름해 균형 같은 것은 없는 혼돈의 생 속에서 예술가의 돌탑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지어져야만 한다. (…) 어떻게 ‘살’ 것인가. 자기 자신을 다치게 하기 십상인 이 세계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모든 ‘그럼에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죽지 않고 살 것인가. 그러니까 질문이 아니라 당부가 남았다. ---p.158 「살라는 당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중에서 · 나는 고고학자나 도굴꾼, 초능력자가 아니지만 아르투 같은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지상을 살아가지만 지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 세상의 셈법이 닿지 않는 것을 건져 올리는 사람들, 죽은 자들의 세계를 기억하려는 사람들. (…)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그 너머의 무형적 가치들, 두려움과 염원이 공존하는 날것의 영혼, 그리고 진실하게 사랑하는 능력이다. 나는 곧 불이 켜질 극장에서 너무 서둘러 나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인다. (…) 세상이 높이 솟고 바삐 흐르는 동안, 어떤 이들은 기어이 혼자 극장을 찾아 어둠 속으로 내려간다. ---pp.173~175 「어둠 속에서만 가능한 것: '키메라'」 중에서 · 레슬리 제이미슨이라면 「세계의 주인」 속 여자들에게 그저 계속 피를 흘리라고 말할 것이다. 상처 입은 여성으로서의 스테레오 타입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때로 자기 고통을 페티시화해도 문제될 건 없다고. 관객의 자리에서 나는 덜 민첩한 주인, 더 전형적인 주인이어도 우리의 좋은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답해주고 싶다. 약간 슬프게 덧붙이자면 어떤 주인이든 간에 그는 자신의 세계에서 누군가의 오해를 살 것이다. ---p.188 「아프다고 말해줘: '세계의 주인'」 중에서 · 젊은 나와 늙어가는 나, 진보하는 나와 퇴색하는 나, 온순한 나와 사나운 나, 제법 마음에 드는 나와 죽여버리고 싶은 나로 항시 분열 중인 여성을 형상화한 존재라면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장르 판타지의 산물이 아니라 너무도 핍진한 동물이다. 흉측하고 질척거리는 그 존재가 여차하면 사람들 앞에서 콱 터져버렸음 싶다고,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러니 진짜 무서운 쪽은 그런 괴기 이형의 존재가 어딨냐는 듯이 늘 깨끗하고 잘 관리된 모습만 내보이려는 어떤 나다. (…) 우리의 어딘가를 죽이지 않고는, 이렇게나 처참하게 내몰지 않고서는 정말 살 방도가 없을까? ---pp.209~210 「자기혐오의 끝: '서브스턴스'」 중에서 · 롤랑 바르트가 “모든 사진이 존재의 증명(Every photograph is a certificate of presence)”이라고 한 말을 뒤집으면 모든 사진은 부재의 증명이라는 말도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들여다본 사진은 지금 내게 없는 나의 시간이 너무도 선명히 존재했었음을 알려준다. (…) 「이어지는 땅」은 그렇게 세 여자의 모습으로 한 여자가 자기를 다시 쓰는 이야기다. 터널 끝에는 분명 이어지는 땅이, 그렇기에 새로운 땅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드라마이기도 캠코더의 모험이기도 한 「이어지는 땅」의 침착한 낙관을 통해 배운바, 나 또한 외면했던 사진첩 속 시간을 좀 더 너그러이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계속 찍고 들여다보는 사이에 언젠가는, 내가 잃어버린 많은 것들이 나를 구성한다는 간단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테니. ---pp.254-259 「잃어버린 캠코더의 모험: '이어지는 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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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나에게 맺혀 있던 시선을 돌려 영화라는 또 다른 세계를 본다는 것 “영화가 나를 간신히 살게 한다면, 이 책은 내가 기꺼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 여성학·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현미경이 되었다가 망원경이 되고, 이내 눈을 감고도 무언가 볼 수 있게 만드는 글” - 영화감독 윤가은 보는 이를 절망하게만 하는 영화는 없다. 우습고 즐거운 코미디도, 장엄한 비극도, 지극한 슬픔과 분노의 드라마도 관객을 결국 ‘관람 이후’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웃고 울고 공감하며 잠시나마 그의 인생을 산다. 그리고 그렇게 좀 더 깊어진 눈으로 우리 생의 다음 장면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혼자 영화관에 갔어』는 비평, 에세이, 인터뷰, 시나리오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영화를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과 만나온 『씨네21』 김소미 기자의 영화 에세이다. 다시 흐르기 위해 잠시 고여 있는 영화관에서의 시간과 우리 삶의 이음매를 들여다보게 하는 영화의 순간들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말한다. “영화는 우리를, 삶을 더 세심하게 바라보는 사람으로 만든다.” 영화관에서 우리는 나를, 타인을,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김소미 기자는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서, 그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쓰는 사람으로서 다양한 정체성으로 텍스트로서의 영화를 깊이 있게 읽어낸다. 영화에 매혹되어 살아온 시간에 더해 평론가로서의 신실한 관찰과 30대, 여성, 도시 생활자로서 자신의 위치성을 견고하게 엮어 영화에 대한 날카롭고 정확한 해석을, 동시에 오늘의 우리를 반영하는 영화-에세이로서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영화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한다. 영화를 보는 일은 어쩌면 거울을 보는 일 “영화는 나에게 벌어진 일이면서 동시에 나 없이 벌어지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스크린 위에는 내가 없지만, 훌륭한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어준다. 저자는 때로는 연약하고 때로는 지친 한 사람으로서 영화를 보며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답을 헤아리는 순간들을 정직하게 고백한다. 엄마와의 갈등을 뒤로하고 영화관을 찾은 어느 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며 인생의 허무함, 지독한 절망을 딛고 엄마와 딸이 서로를 향해, 사랑을 향해 기어이 손을 뻗는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애프터썬」을 보면서는 “일상의 귀퉁이에서 문득 지치고 멍한 표정을 짓곤 했던 어른들의 얼굴”을 상기한다. 부모가, 나의 어른들이 지금 나의 나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때, 그들도 여리고 약한 인간으로서 피곤을 숨기지 못했음을 떠올리고 뒤늦게 깊이 연민한다. 「서브스턴스」를 보면서는 젊은 나와 늙어가는 나, 진보하는 나와 퇴색하는 나를 한 장면 안에서 발견하고 외모 강박과 성 상품화라는 속박 아래서 여성들이 내면화한 자기혐오를 씁쓸하게 인식한다. 「세계의 주인」에서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쾌활하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우리는 덜 민첩하고 덜 전형적이어도 된다고, 그러니 아프다고 말해도 된다고 다독인다. 실패한 사랑 다음, 새로운 관계로 희망차게 나아가지 않고 홀로 집 안으로 조용히 들어가는 주인공의 뒷모습을 포착하는 카메라를 두고는 “그 누구의 증명이나 구원 없이 혼자서 통과하는 길에 대한 묵묵한 직시”(「사랑의 고고학」)라고 덧붙인다. “우리는 실패한 사랑의 영향 아래에 좀 더 있어도 괜찮다. 생산적인 극복, 통렬한 복수, 깔끔한 탈피 같은 것을 재빨리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라고 가만히 우리를 위로한다. 저자는 그만의 섬세한 눈으로 화면의 모퉁이에 담긴 조연의 삶도 충실하게 살핀다. 「더 웨일」에서는 모든 인물들을 먹이고 달래는 돌봄노동자로서의 여성 캐릭터 리즈를 읽어내고, 언젠가 영화가 다시 만들어진다면 그녀가 자기돌봄을 하는 장면이 주어지기를 상상한다. 「지옥만세」에서는 주인공들의 복수의 대상인, 과거 ‘일진’이었던 캐릭터를 보며 “덜 불행했다면 덜 나빠졌을 누군가, 우리 인생에 대부분 한 명쯤은 있는 허황된 내면의 소유자”라고 담담하게 덧붙인다. 영화 속 인물들의 면면을, 그들이 지닌 서사의 맥락을 자신의 모든 경험을 다해 읽어내면서, 언제나 최선은 아니었던 우리 자신의 모습들을 포착한다. “예술은 계속되어야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때로 위악을 부리고, 때로 문제를 회피하고, 때로 비겁한 선택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추슬러 삶의 다음 장면으로 나아간다. 그 결연한 얼굴들을 보며 우리는 잊었던 삶의 의미를, 그 찬란함을,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다음 장면’을 깨닫는다. 영화가 알려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해답을 따라 우리는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영화관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고, 어느 지친 날 또다시 영화를 찾는다. 영화를 본 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책 속의 모든 글은 릴스, 쇼츠, AI의 범람 속에서도 왜 여전히 영화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결국 예술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지를 찬찬히 역설한다. 『혼자 영화관에 갔어』는 혼자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화면이 내뿜는 빛을 향해 몸을 두는 마음, 우리의 시간을 기꺼이 영화에 저당 잡히는 마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책이다. 영화를, 삶을 더 잘 읽고자 하는 이들,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