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소설 알렉산드리아
이병주
한길사 2006.04.20.
가격
14,500
10 13,050
YES포인트?
72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변경
배송비?
유료 (도서 15,000원 이상 무료)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이 분야의 이벤트

이병주 전집

책소개

목차

소설·알렉산드리아
매화나무의 인과
쥘부채
패자의 관
겨울밤-어느 황제의 회상

작품해설 (조남현)
작가연보

저자 소개 1

李炳注, 호: 나림

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쳐온 '한국의 발자크' 소설가 이병주는 1921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예과와 와세다대학 불문과에서 수학했으며,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1944년 학병으로 소집되어 중국 쑤저우蘇州의 일본군 수송대에 배치되었다가 일제 패망 뒤인 1946년 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1948년에 진주 농과대학과 해인대학(현 경남대학)에서 영어, 불어, 철학을 강의했다. 마흔네 살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92년 타계하기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만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활동으
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쳐온 '한국의 발자크' 소설가 이병주는 1921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메이지대학 문예과와 와세다대학 불문과에서 수학했으며,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1944년 학병으로 소집되어 중국 쑤저우蘇州의 일본군 수송대에 배치되었다가 일제 패망 뒤인 1946년 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1948년에 진주 농과대학과 해인대학(현 경남대학)에서 영어, 불어, 철학을 강의했다. 마흔네 살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92년 타계하기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만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활동으로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진실을 추구하는 기개와 용기를 지닌 사관史官이자 언관言官이고자 했던 언론인으로서의 오랜 경험은 그의 문학정신의 튼튼한 자양분을 이루며 한 시대의 '기록자로서의 소설가', '증언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탁월한 평가를 받게 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공간,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 6·25동란, 정부수립 등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은, 한 지식인으로서 누구보다 우리 역사와 민족의 비극에 고뇌하게 했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동력이 되었다.

1965년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이어진 「관부연락선」「지리산」「산하」「소설 남로당」「그해 오월」 등의 대하장편들은 그러한 작가의 문학적 지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구성으로 소설문학 본연의 서사성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역사에 대한 희망,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시선으로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그의 문학은 역사의식 부재와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문단을 문학 저널리즘이라고 봤을 때 저널리즘을 타기 전 습작 시대가 없었다고 말한다. 습작일 수밖에 없는 작품마저도 모조리 발표해 버린 것이다. 이는 그가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경위부터 살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1955년 우연히 부산에 놀러갔다가 부산일보의 편집국장과 논설위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에 의해 "이 교수가 한번 써보라"는 권유에 취중의 호기로 대답한 것이 [부산일보]에 연재한 첫 소설 『내일 없는 그 날』을 쓰게 된 동기였던 것이다.

그는 애초에 소설을 쓰려는 마음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가 작가가 되기 전까지의 시기를 더듬어 볼 때 그가 소설가가 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로부터 해방공간을 거쳐, 남과 북의 이데올로기 및 체제 대립과 6.25동란 그리고 남한에서의 단독정부 수립 등, 온갖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곡을 지나오면서 한 사람의 지식인이 이렇다 할 상처 없이 살아남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그는 또한 다산한 작가로도 대표할 만하다. 1965년 중편 『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함으로써 등단한 후 1966년 『매화나무의 인과』를 「신동아」에 발표했다. 1968년에는 『미술사』를 「현대문학」에 발표하였으며, 『관부연락선』을 「월간중앙」에 연재하였다. 1969년에는 『쥘 부채』를 「세대」에, 『배신의』 「부산일보」에 발표하였다. 1970년에 『망향』을 [새농민]에 연재하였으며, 1971년에는 『패자의 관』을 발표하고, 『화원의 사상』과 『언제나 그 은하를』을 연재하였다.

1972년에는 단편 『변명』과 중편 『예낭 풍물지』, 『목격자』 발표하였으며, 장편 『지리산』을 「세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1973년 수필집 『백지의 유혹』이 간행되었으며, 1974년에 중편 『겨울밤』 『낙엽』을 발표하였다. 1976년 중편 『여사록』, 『망명의 늪』, 단편 『철학적 살인』을 발표하였다. 1978년 『계절은 끝났다』 『추풍사』를 발표함과 더불어 『바람과 구름과 비』를 「조선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1979년『황백의 문』, 1980년 『세우지 않은 비명』, 『8월의 사상』을 발표하였다.

1981년에는 『피려다 만 꽃』, 『허망의 정열』 『서울 버마재비』, 『당신의 성좌』를 발표하였다. 1983년 『그 테러리스트를 위한 만사』, 『소설 이용구』, 『우아한 집념』, 『박사상회』를 발표하였다. 1984년 장편 『비창』을 간행하였고, 1986년 『그들의 향연』, 『무덤』, 『어느 낙일』을 발표하였다. 1987년 『소설 일본제국』, 『운명의 덫』, 『니르바나의 꽃』, 『남과여―에로스 문화사』를 간행하였다. 1989년 『소설 허균』, 『포은 정몽주』, 『유성의 부』, 『내일 없는 그날』을 간행하였고, 1990년 장편 『그를 버린 여인』을 간행하였다.

이렇듯 끊이지 않는 작품 활동을 해 오는 동안 1977년 중편 『낙엽』, 『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84년엔 장편 『비창』으로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2년 『소설 제5공화국』 집필 중 지병으로 타계했다. 2008년에는 그의 출생지인 경남 하동군에 '이병주 문학관'이 개관하였다.

이병주의 다른 상품

저자 : 이병주
이병주(李炳注, 1921~1992)는 1921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하여 일본 메이지대학 문예과와 와세다대학 불문과에서 수학했으며, 진주농과대학과 해인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부산 『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지냈다. 마흔네 살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선 그는 1992년 타계하기까지 27년 동안 한 달 평균 1만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인 집필활동으로 80여 권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1977년 장편 「낙엽」 중편「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4년 장편 「비창」으로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했다.
진실을 추구하는 기개와 용기를 지닌 사관史官이자 언관言官이고자 했던 언론인으로서의 오랜 경험은 그의 문학정신의 튼튼한 자양분을 이루며 한 시대의 ‘기록자로서의 소설가’, ‘증언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탁월한 평가를 받게 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공간,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립, 6·25동란, 정부수립 등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의 개인적 체험은, 한 지식인으로서 누구보다 우리 역사와 민족의 비극에 고뇌하게 했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동력이 되었다. 1965년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이어진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소설 남로당」 「그해 오월」 등의 대하장편들은 그러한 작가의 문학적 지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구성으로 소설문학 본연의 서사성을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역사에 대한 희망,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시선으로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그의 문학은 역사의식 부재와 문학의 위기를 말하는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한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4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11쪽 | 478g | 153*224*30mm
ISBN13
9788935659494

출판사 리뷰

이병주가 중앙문단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월간 『세대』지 1965년 6월호에 「소설·알렉산드리아」를 발표하면서 부터였다. 그 이후 1992년 타계하기 까지의 27년동안 그는 거의 초인적인 집필활동으로 우리 문학사에 굵고 깊은 궤적을 남기고 갔다.
월간 『세대』지의 편집장으로 그의 첫 작품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중앙문단에 소개했던 인연으로, 그리고 7년 뒤인 1972년부터는 장편 「지리산」을 장기연재했던 인연 등등으로 20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참으로 오랫동안 깊은 교분을 쌓아왔다. 내게 작가 이병주를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오래전에 타계한 신동문辛東門시인이었다. "내가 잘 아는 어느 전직 언론인이 5·16으로 잡혀가 한 3년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옥중기 비슷한 소설을 썼다는데 한번 보겠느냐"고 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지만 신동문시인은 『새벽』잡지 편집장이던 시절부터 이병주와 교분이 있어왔던 처지였다. 4·19혁명 이후 5·16 이전까지 온 나라가 백가쟁명百家爭鳴식 언론자유가 넘쳐나던 시절 이병주는 『새벽』지에 그 유명한 "우리에겐 조국이 없다. 다만 산하가 있을 뿐이다"라는 문제의 구절이 든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런 인연으로 이병주는 신동문에게 작가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의논했던 것이다. 이미 40대 중반의 나이에 비록 지방신문이긴 하지만 그 지역의 대표적인 신문의 편집국장과 주필까지 지낸 처지에 신춘문예에 응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월간 문예지의 추천을 기웃거릴 수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써놓은 「소설·알렉산드리아」를 발표하고 그것을 계기로 중앙문단에 소설가로 활동할 길이 없겠는가를 신동문시인과 상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은 신춘문예나 문학잡지의 추천을 거치지 않고도 소설가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길이 널리 열려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소설가나 시인으로 작품활동을 하자면 반드시 권위 있는 등용문을 거쳐야 하던 시절이었다.
신동문시인이 「소설·알렉산드리아」를 내밀면서 아주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도 정식 등용문을 거치지 않은 사람의 작품을 그것도 2백자 원고지 5백장이 넘는 소설을 실어달라는 것이 너무 무리한 부탁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언제 시간날 때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원고를 받아놓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몇차례 재촉을 받고서야 겨우 원고를 손에 들게 되었다. 그러나 처음 생각과는 달리 원고뭉치를 손에 들자 한번도 쉬지않고 5백장이 넘는 소설을 독파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멍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화려한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가 있었던가 하는 감동에다 무엇보다 한번 독자의 시선을 잡으면 끝까지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놀라운 흡인력 때문이었다.
몇달에 걸쳐서 분재分載해도 괜찮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미리 준비했던 다른 소설들을 다음 달로 미루고 500장이 넘는 작품을 한꺼번에 싣기로 했다. 잡지래야 겨우 3백50여 페이지 안팎이었던 시절, 중편소설을 한꺼번에 싣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그러나 그 모험은 성공적이었다. 「소설·알렉산드리아」가 발표되자 그 반응은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를 운운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신문의 월평난은 온통 새로 등장한 작가 이병주의 얘기로 도배했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신춘문예나 문학지의 추천을 거치지 않았다는 작가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소설·알렉산드리아」 한 편으로 깨끗이 해소되었다.

- 작품해설 가운데

리뷰/한줄평9

리뷰

9.2 리뷰 총점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13,050
1 13,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