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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
변명 예낭풍물지 제4막 망명의 늪 망명의 사상 - 이병주의 『마술사』(정호웅) 작가연보 |
李炳注, 호: 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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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란 환각을 만들어내는 술사입니다. 그런데 마술사는 스스로가 환각을 만들어내는 것만 가지고는 되지 않습니다. 그 환각을 관중들이 갖게끔 작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문제입니다. 관중들로 하여금 이쪽이 의도한 환각을 갖게끔 하기 위해선 우선 나 자신이 그 환각을 믿어야 합니다. 환각에 대한 나 자신의 절대적인 신앙을 관중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니 먼저 당신 자신이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환각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술사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실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하지 않는 환각이다. 공중에 띄워 올린 텅 빈 심상. 그런데 문제는 마술사 스스로 그 환각을 실재하는 것이라 믿을 때 비로소 그 텅 빈 심상의 창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제인 것인 양 만들어 내보이는 사람이 그것을 실제로 믿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하는 것이라 믿고 느끼는, 실제 세계와는 다른 세계로 존재 전이하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다. 그 존재 전이는 실제 세계 속에 존재하는 자신을 완전히 무화시킬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자신을 완전 무화시키고 다른 세계로 존재 전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것은 결코 가닿을 수 없는 피안에 이르기와도 같은 것이니 안타까운 꿈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니, 불가능의 강을 넘어 가 닿고자 하는 소망은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불가능한 것을 향한 간절한 꿈이라는 점에서 그 속성은 낭만성이다. 이 사실은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고귀한 인간성, 목숨 같은 사랑, 치명적인 금기, 무한한 인내와 깊은 몰두 등, 인간과 인간 삶의 평범한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것들이 이 작품의 주요 구성소라는 사실과 대응한다. 「마술사」의 세계는 강렬한 낭만성의 세계인 것인데, 이 낭만성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한계도 비루함도 인간세계의 속악한 이모저모도 한순간에 넘어 날아오를 수 있다. 「마술사」 등에 뚜렷한 이 같은 낭만성은 과거를 거슬러 부조리한 역사를 증언하는 이병주 문학의 한 특성과 맞통한다. 그 증언은 선악의 인과론을 번번이 배반하는 현실세계의 전개 과정, 곧 역사의 부조리에 대한 깊은 환멸 위에 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병주 소설 곳곳에는 일본군 체험이 그려져 있는데 학병으로 징집되어 중국 소주에 배치되었다가 그곳에서 해방을 맞은 작가의 직접 체험이 그 바탕이지만, 작가 개인의 체험을 넘어 같은 세대의 일본군 체험을 아우르는 것임은 물론이다. 침략자 일본의 용병이 되어 총을 들었다는 ‘용병의식’에 괴로워하며 동남아 밀림 속을 기고, 중국 대륙의 아득한 흙먼지 속을 걷던 조선 청년들의 잿빛 청춘의 증언으로 다른 데서는 만날 수 없는 희귀한 과거 보고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의의는 대단히 크다. - 작품해설 가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