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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 5
1부 꽃 · 13 피아노 · 14 약속 · 15 분수 · 16 류머티즘 · 17 미인 · 18 바위 · 20 월곶 · 22 2부 수니 · 27 큰집/작은집 · 28 양배추 시집 · 30 거대한 여자 · 32 내 집 짓기 · 34 오류동 · 36 집 · 38 새들도 페루로 간다 · 40 TV/하느님 · 42 물들었다 · 44 서부간선도로 · 46 3부 임시공휴일 · 49 상자 · 50 분리수거 · 52 새 · 54 여자의 시집 · 56 서리 내린 날 · 58 벽을 꼬집다 · 60 숙희가 닭이 되었구나 · 62 세밑 · 63 눈 · 64 해일 · 66 색(色) · 68 방생 · 70 4부 시 · 75 불이(不二) · 76 상(像) · 78 상처 · 80 배 · 82 말[言] · 84 귀울림 · 86 테이프 · 88 친구들 · 90 유빙(流氷) · 92 타인들 · 94 해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는 존재의 비상/ 김정수 · 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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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시]
피아노 -- 피아노는 스스로 빙판 위를 나아간다 피아노는 종일 빙판 위를 미끄러져 간다 빙판 끝 높다란 빙벽 앞에서 피아노는 멈추어 선다 - 여자는 버스에서 내려 오랫동안 들판을 걸어간다 여자는 세상의 경계를 지나 얼음나라로 걸어간다 여자는 피아노 교본을 겨드랑이에 끼고 종일 빙판 위를 걸어간다 빙벽이 보이고 빙벽 앞에 선 피아노가 보인다 - 여자가 피아노 앞에 서자 여자의 몸은 얼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여자는 쓰러지면서 피아노를 때린다 피아노는 커다란 소리를 낸다 - 빙벽이 쪼개진다 새 떼가 날아오른다 여자는 얼음 위에 엎어져 있다 피아노는 얼음 속으로 조금 더 나아간다 -- [대표시] 약속 -- 돌에는 날개가 있었다 하늘 가득 돌들이 날아다녔다 - 손과 손이 악수하면서 돌과 돌이 부딪쳤다 돌들은 날개를 다치고 조금씩 무거워졌다 - 돌이 땅 위로 내려왔을 때 땅에는 수백 장의 약속이 쌓여 있었다 돌은 그 위에 우주선처럼 내려앉았다 - 바람이 불어 약속은 모두 날아가버렸다 - 아무 약속도 없는 날 강가에서 돌 하나가 볕을 쬐고 있다 돌은 다른 돌 위로 기어올라가 날고 싶다 -- 시 -- 시는 어린 시절 같이 놀던 가시나가 쓰고 다니던 머리띠다 한 번 만져볼 수 있느냐고 물어도 벗어주지 않던 낡고 고집 센 색깔이다 - 나는 시를 배워서 열매와 새를 만들어내었다 열매들은 피어나 꽃이 되었고 새는 꽃 속을 날아다녔다 그러나 그 가시나는 없어졌다 - 이제는 흰머리 많은 여자와 함께 작은 배 위에 앉아 있다 여자의 머리 위에 내가 만든 머리띠를 씌워준다 여자와 내가 탄 작은 배는 어느덧 깊은 바다에 나아가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