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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숙 시집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늙은 해녀 콜라주 관람자 아리아드네의 실 마시멜로 꿈 대여료 1인분의 몫으로 살아남기 모래시계 난전(亂廛) 관계 그대 기억을 만드는 과정 제2부 910411240002 기다리는 일 오프닝 참아내기 고양이 12마리 찾기 게임 부유하던 형상이 소리를 낸다 레테의 강 삼월의 봄 여름 메타포 몽중 반추의 끝 이상한 감각 제3부 돼지국밥 플라스틱 우산 나의 루틴 통속 소설 빨간 하이힐 얄팍한 과자 신발 정령 신문지 허기 에포케 장마 제4부 Polaroid 카메라 속앓이 한낮의 소멸 권태 산고 급류 늙은 빨강 머리 앤 장 담그는 날 침잠 통증 단상 풍경 제5부 사랑의 꿈 세레나데 검은 기억 하늘길 겨울비 퓰리처상 사진전에서 어둑새벽 유치환 우체통 그대라는 바다 보사노바 한 조각 고양이 입추 해설: 발화의 시학 - 김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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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대여료
머리맡의 핸드폰이 낮게 울렸다 신규 오픈한 꿈의 시간이 열리면 결제 창이 뜬다 쿠키 3개로 꿈을 대여할 수 있고 무료로 미리 보기도 가능하다 하지만 어쩌다 깨진 항아리의 주인공 콩쥐의 꿈을 대여하고 말았다 두꺼비가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면서 희망의 파편에 물과 주방 세제 글리세린을 넣어 비눗방울을 만들었다 비눗방울막이 잘 터지지 않도록 고리형 막대에 묻혀 바람 온도 습도를 조절해 힘껏 불었다 꿈이 오롯이 구름 위로 올라간다 순간 삑~ 통장 잔고 부족 소장용 쿠키 부족 창이 뜬다 당신의 꿈을 연장하시겠습니까 당신은 현재 GOLD 회원입니다 ○원 더 구매하시면 VIP 등급이 달성됩니다 ○원 이상 구매 시 추가로 신제품 체리쥬빌레 맛의 꿈을 드립니다 연장을 원하시면 결제 창을 누르세요 --------------------------------------------- 모래시계 사각형의 투명한 유리에는 어젯밤 모래 알갱이로 만든 슬픔이 가득 차 있다 잘록한 허리를 자랑하는 모래시계 틈 사이로 어느 이름 없는 시인의 흩뿌려진 슬픔을 세고 있다 가슴에 갇힌 먹구름의 상처 하루를 겨우 견디며 사는 고단함 바람이 불며 잎이 떨어지는 애틋함 미세한 파열 묘한 떨림 모래 알갱이는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어느 이름 없는 시인의 바스락거리는 슬픔을 세고 있다 --------------------------------------------- 기억을 만드는 과정 갈색의 머그잔은 균열 되고 있다 미세한 금 위로 흔들리는 물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30초 가열한다 천천히 들여다보면 과거를 기억한다는 건 마이크로파가 물 분자를 흔들어서 열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 떨림은 미세한 진동으로 나의 안을 들여다보며 서서히 시간의 지층을 걸어 나온다 문을 열면 그때의 바람 그때의 풍경 오래된 거울처럼 비춘다 ------------------------------------------------------------ 고양이 12마리 찾기 게임 자꾸 기침이 납니다 하루가 목에 걸린 것 같습니다 낯선 관계 속에서 몸도 마음도 어색합니다 가만히 10초 안에 고양이 12마리 찾기 게임을 합니다 그림 속 숨은 고양이는 몸을 웅크리고 나의 시야를 흔듭니다 닿았다 스치듯 빛보다 빠른 어둠이 깜빡입니다 짧은 문장 하나에 온도의 의미를 찾으며 숨어 있는 고양이 한 마리에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하지만 마음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짧은 답장이 미묘하게 아리어 옵니다 검은 바탕 화면 위 숨었던 고양이가 기지개를 켭니다 눈을 감고 숨결을 따라 귀 기울이면 부드러운 그루밍 소리가 들립니다 느려지는 마음 그 리듬 속 습한 내면의 하루를 말려봅니다 --------------------------------------------------------------- 몽중夢中 순간 무언가 산산조각이 난다 이어 쏟아져 들어오는 물 숨을 쉴 수가 없다 급격히 팽창하는 육신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다 근사한 시골 풍경 속 아이가 달려간다 눈과 코와 입이 없는 아이가 사라진다 뜨거운 꿈속의 유영은 현란하다 깨지고 버려진 상처받은 순간을 녹여내면 시간은 수직으로 멈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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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숙의 시집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차례』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말함’이 무의식에 깔려 있다. 모든 사람이 말을 하지만, 어떤 사람의 말은 쉽게 기록되고, 어떤 사람의 말은 쉽게 지워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한마디는 뉴스가 되지만, 가난한 사람의 평생은 기록되지 않는다. 시는 작은 목소리를 한 편의 세계로 만든다. 세상이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게 하는 것, 세상이 듣지 않는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이 시다. 시의 여백은 단순한 종이의 빈자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시인은 세계의 이러한 비언어적 발화를 듣는 사람이다. 그녀의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차례』에서 “내 이야기”의 ‘나’는 반드시 인간일 필요도 없다. 흘러 다니는 음악일 수도 있고, 사라진 바람일 수도 있다. 그녀의 시는 침묵하는 사물에게 발화권을 준다. 이것이 그녀의 시적 상상력의 강렬한 힘이다. 역설적으로 송미숙의 시는,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시는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타자의 이야기다. 하여, 그녀의 시는 혼잣말처럼 허공을 향해 중얼거린다.
-김동원(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의 말 글쓰기의 삶은 오롯했다 풀빛의 싱그러움 불빛의 정열 푸른 빛 잔상과 슬픔을 담았다 올랑이던 가슴을 열어 그를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영면에 빠진 그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2026. 가을. 송미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