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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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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메이는 아직 타향살이를 잘 모른다
이름을 부르면 내가 죽어요
방글라데시안 무샤라트는 창문을 닦다가 자살했다
어느 날 그녀가 죽었다
잭슨 가문의 비밀
리퀴데이터
최악의 전망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장소
파와하라 아루하라 이카시테 구다사이
강가 위에 주름 하나
세상은 카슈미르를 잊었다
사회복지기금
번역 오류: 카불의 유령 의사 파티마를 찾을 수 없습니다
너무 많은 파푸아뉴기니어
수면은 평온하지만 그 아래에서는
루시아의 딸들
두 시간의 대화가 남긴 것
우리 아빠 이름은 박재혁이에요
시사 자키는 누구인가
일에서 이분의 일
더 캠퍼스(The camp+us)
사운드 오브 헤이하이쯔
무인도
플리즈 바이 미
합법적으로 절망하기
자라는 사라
소피는 다 아는 한국어
독일 사람들은 말한다
황금 열쇠
제라드 스트리트의 홍콩 할머니
평점 4.8
파산
유효하지 않은 플레이어입니다
집은 침대가 필요해요
콩코드 여객기
레이지 데이즈 오브 파리
엄마 우리는 친구예요
레스보스 아일랜드
엠마의 다섯번째 거짓말
우주여행
404 조국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영수증이 없습니다
감옥으로 가시오
하라레에서 보낸 수식
적극적으로 절망하기 운동 미국 지부
적극적으로 외래어를 잘 쓰는 운동 한국 지부
My name is 김치
머라카노
22%-18% = 이소호
신작 기작 미발표작
우리는 서로를 읽지 않은 밤 때문에 결국 서로가 서로의 문장으로만 남았다
안산에 있는 서울예술대학교를 나온 이소호
나의 혀끝은 아직도 강의실에 살고 있습니다
어느 멘헤라 여왕의 이야기
이 시는 24시간 후에 사라집니다

해설
남이 되어가는 시·선우은실

저자 소개 1

1988년 호돌이와 함께 서울 여의도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미디어창작학부를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석사를 수료했다. 2014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으며 제37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발간된 책으로는 시집 『캣콜링』, 영어 번역본(English translation) 『Catcalling』,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산문집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서른다섯, 늙는 기분』 등이 있다. 집순이 작가로, 방 밖의 삶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친구와는 완전한 소통을 꿈꾸지만, 말이 완전히 통하지 않는 것이 좋아 늘
1988년 호돌이와 함께 서울 여의도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미디어창작학부를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석사를 수료했다. 2014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으며 제37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발간된 책으로는 시집 『캣콜링』, 영어 번역본(English translation) 『Catcalling』,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산문집 『시키는 대로 제멋대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서른다섯, 늙는 기분』 등이 있다.

집순이 작가로, 방 밖의 삶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친구와는 완전한 소통을 꿈꾸지만, 말이 완전히 통하지 않는 것이 좋아 늘 한국 책을 들고 해외로 훌쩍 떠나곤 한다. 거기서는 뭐든 비밀이 되는 것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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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128*205*20mm
ISBN13
9788932045849

책 속으로

숙제를 하던 카를라가 루시아에게 말한다 엄마 저도 그냥 일하러 갈래요 저도 청소하러 갈래요 일곱 살이 된 카를라를 때린다 처음으로 루시아는 울면서 카를라를 때린다 카를라는 왜 맞는지 모른다 루시아는 안다 왜 때리는지

카를라 한 번만 더 연필 대신
걸레를 드는 날에는 가만두지 않겠어

루시아는 담배를 물고 창문을 연다 파벨라의 불빛이 보인다 수만 개의 불빛이 보인다
---「루시아의 딸들」중에서

웨이는 좀처럼 장롱 뒤에 나프탈렌을 곱씹으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때때로 몰래 형의 운동화를 신었다
형은 목에 홍링진을 맸다
형이 문을 열고 나갔다
웨이는 커튼 틈으로 내다봤다
건물 외벽에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只生一个好(한 자녀는 좋다)”

웨이는 글자를 몰랐지만 붉은색은 알았다

위험의 색
금지의 색
---「사운드 오브 헤이하이쯔」중에서

섬의 윤곽이 펄밭 위에 점점이 박혀 있어서 저 너머에 또 섬이 있고 그 너머에 또 섬이 있고 조수가 밀려오면 물길이 끊겨서 꼼짝없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형님 저는 하늘이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영원을 보냅니다 여기는 소금과 펄과 저뿐입니다 밤에는 다른 섬들의 불빛이 수평선 위에서 깜빡이는데 형님 너무 아름다워서 가끔 웁니다 저도 알아요 형님 슬퍼 마세요 남들이 뭐래도 저는 알아요 형님이 저를 찾지 못하는 것은 단지 섬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걸 저는 압니다
---「무인도」중에서

아이샤는 자유가 자유를 가로막는 장면을 본다 광장에서 독일인은 다시 말한다 다문화주의 만세 그리고 집에 가서 독일인은 말한다 튀르키예 사람이 너무 많아 무슬림들이 독일을 점령해 히잡 쓴 여자들은 위험해 아이샤는 낮과 밤을 안다 아이샤는 매일 밤 기도한다 알라여 저를 독일인으로 만들어주세요 알라여 저를 그냥 사람으로 만들어주세요 아니요 알라여 저를 아무거라도 만들 수 없다면 그냥 저를 죽여주세요 어쩔 수 없이 아이샤는 다시 아이샤가 된다 아이샤는 내일도 히잡을 쓸 것이다 아이샤는내일도 케밥을 만들 것이다 아이샤는 내일도 독일어로 말할 것이다 아이샤는 내일도 튀르키예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말한다」중에서

야 차라리 때려라 때려. 말하고 싶었지 근데 그는 너무 다정해서 때리지 않고 계속해서 잘못을 읊고 용서하고 읊고 용서했다 나는 용서가 싫었어 쉽고 아름답잖아 한쪽에게만. 그래 이 개 같은 평화는 어디서 대대로 습득한 평화가 분명하다 나는 무릎을 꿇고 저 멀리 삼각지와 녹사평역 사이의 미군 기지를 본다 개 같은 평화. 아무도 모르는 불완전한 평화가 저기 있다
---「어느 멘헤라 여왕의 이야기」중에서

출판사 리뷰

세계의 권력에 포획당한 이방의 존재들
무수한 죽음이 증언하는 이토록 무사한 생의 수치

외국인의 죽음이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한국인을 죽이다 죽을 때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늘의 죽음은 언제나 자살이었다
가난도 사고도 병사도 자살이었다

7층 창문은 이제 누가 닦지?
-「방글라데시안 무샤라트는 창문을 닦다가 자살했다」 부분

부를 나누지 않고 시집을 이루는 55편의 시는 다성의 목소리(多聲, Polyphony)로 가득하다. ‘『이름을 부르면 내가 죽어요』 룰북’의 안내에 따라 모노폴리에 참여한 독자는 방글라데시, 인도, 한국, 일본, 중국, 프랑스, 스페인, 미국,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브라질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폭력의 현장을 마주하게 된다. 시인이 ‘룰북’에 써두었듯 이 시집의 “읽기의 목표는 해석이 아니라 통과”이다. 급작스레 참상의 한가운데에 놓여 플레이어가 된 독자는, 직간접적으로 체험되는 억압과 멸시를 견디고 과연 ‘해석’이 아닌 ‘통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름을 부르면 내가 죽어요』는 내면의 불편을 겪으며 솟구치는 언어, 죽음으로 종결된 타인의 고통이 불러일으킨 새로운 언어의 탄생을 예고한다. 독자는 자신의 살아 있음을 낯설게 감각하면서 “죽은 척하세요”(「최악의 전망」)라는 화자의 비참하고도 사려 깊은 음성을 견뎌야만 한다. “베란다 창문을 닦던 중에”(「방글라데시안 무샤라트는 창문을 닦다가 자살했다」) 떨어진 사람,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최악의 전망」), “사내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파와하라 아루하라 이카시테 구다사이」)은 사람, “말도 없이 목을”(「세상은 카슈미르를 잊었다」) 맨 사람 등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의 구체적인 묘사에는 압도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죽은 것들 사이에서 아직 헐떡이는 것을 찾”(「수면은 평온하지만 그 아래에서는」)고, “몰래 가져온 빵 조각을 입속에 욱여넣는”(「루시아의 딸들」) 절박한 인간의 몸짓이 국경 너머로 가느다란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상대가 파산할 때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모노폴리의 규칙은 독자로 하여금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인내하며 끌어모으는 자산, 시인이 제안한 게임 안에서 값이 매겨지는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헤아리게 한다.

“남편의 통제하에서만/낙원을 엿볼 수 있”는 화자, 시사는 비둘기 사냥법을 말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는다. 트랩에 놓인 암컷에게 달려드는 수비둘기를 낚아채는 사냥꾼의 손. 시사는 깨닫는다. 수비둘기 고기에 “입맛을 다시는” “남편과 아들” 역시 수컷이라는 것을. 이는 위계에 따라 폭력의 주체가 폭력의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시사는 살아남기 위해, 악을 유인하여 파괴하기 위해 “열심히 둥지 안으로 들어앉는다”. 극심한 억압하에 내면에 똬리를 튼 적개심을 숨긴 채 시사는 실낱같은 생존의 가능성을 탐닉한다. “시사의 아주 분명한 영혼이/비둘기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간다”(「시사 자키는 누구인가」). 이 기묘한 투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통과’를 거쳐 수행되는 주체성의 회복이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도 상상력을 발휘해 세계를 향한 ‘나’의 비밀스러운 언어를 획득하기. 이소호의 시에서 사회가 묵과한 범죄의 면면은 결코 대상화할 수 없는 타인과 ‘나’의 현실이다. 주사위가 던져지는 순간 운이 갈리고 운명이 결정된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의 죽음일 수 있다는 사실만이 자명하다. 비로소 깨닫게 되는 ‘그것’의 정체는 슬픔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슬픔을 통과했는가? 해석하거나 소비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타인의 슬픔에 이자가 발생했”(p. 144)다는 경고와 함께 수익자로 지목된 독자(‘당신’)는 스스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범람하는 기호 속에서 ‘나’를 구명하는 언어
슬픔의 은어로 연결되는 이방인들의 섬

미래를 앞다투어 나누어 보려던 그 사람들의 생각 따윈 빌려 오지 말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없지. 다만, 사랑이라고 불리던 그 나약한 진심은 알 수 없는 거잖아 만약 진심을 알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고개를 저었지 그건 불가능해 신파연극 본 적 있어? 입 모양을 벙긋대며 전형적인 슬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소비해왔잖아 그래서 지금 네 마음이 뭐라고 하고 있어?
-「레스보스 아일랜드」 부분

“돈을 주고 샀”으나 “영수증이 없다는 이유로/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도둑이”「나는 영수증이 없습니다」) 된 사람, “자격증이나 스펙이”(「안산에 있는 서울예술대학교를 나온 이소호」) 없어 취업 시장에서 홀대를 받는 사람이 있다. 시장에서 ‘정직’을 증명하는 것은 공인된 언어가 인쇄된 서류로 간단히 처리되지만 삶의 ‘정직’을 무슨 수로 증명할 수 있을까. 이 무거운 질문 앞에서 시인은 보란 듯이 이질적인 언어와 기호를 적극적으로 차용해 시를 써나간다. 이를 통해 제도적 질서가 포착하지 못하는 삶의 숨은 진실을 드러내며, 타자의 언어로 규정되어온 존재가 자신을 입증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 문명이 우리 삶에 침투한 이래 언어는 ‘명령’과 ‘수행’이라는 단순한 작동 원리로 환원된다. AI의 광범위한 사용을 두고 “우린 결국 도구가 되는 건가”(p. 165)라고 댓글을 다는 어느 개발자의 절망을 시인은 시집 전반을 통해 당당하게 물리친다. 코드 스위칭(「적극적으로 절망하기 운동 미국 지부-두머의 포스트」)으로도, 프로그래밍 코드(「적극적으로 외래어를 잘 쓰는 운동 한국 지부-판교」)로도, 사투리(「머라카노」)로도 가로막지 못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의 선언이다. 영어를 한글로 음역해 씌어진 「My name is 김치」에서 독자는 인상적인 문장을 마주한다.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은 뜻이다. ‘나에게는 이름이 있어. 네가 입을 열기 전부터 나에게는 이름이 있었어. 네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기 전부터 나에게는 이름이 있었어’. 자아의 대상화에 저항하면서 타자화된 ‘나’를 구출해 정체성을 되찾는 일. 이소호가 유감없이 보여주듯 그것은 곧 언어에 선행하는 사유로서 시가 지닌 본질적 역할을 고민하고, ‘나’의 고유한 언어로 세계를 다시 명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시집의 해설을 맡은 선우은실의 말처럼, 이소호의 시는 “저 먼 곳에서 벌어지는 죽음과 살상에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몫은 확실하게 존재”함을 가리킨다. 우리 각자가 세계와 깊이 연루되어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닌다는 깨달음은 정착하지 않은 언어의 가능성과 그로부터 출발하는 슬픔의 연대, 존재의 해방을 꿈꾸게 한다. 모노폴리를 플레이하며 만나는 55개의 국가와 다성의 목소리를 통과하는 동안 ‘진심’이라고 불러도 좋을 마음의 움직임이 감지된다면 “어쩌면, 이번에는, 한 번쯤은, 당신이 이길 수도 있”(부록, ‘모노폴리 금지 연대기: 뉴스 아카이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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