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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티베트―솟음, 혹은 내리꽂힘
제2부 미얀마―안팎에서 서성거리다|<쉐우민>선원에서 제3부 미얀마―미얀마의 아침은 새벽 세 시다 제4부 크레타―크노소스 궁전에서 제5부 카라코람 하이웨이―탁실라에서 우루무치까지 제6부 동해―떠도는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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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가만 퍼져오는 엷은 입김. 아래로아래로 나른하게 하강하는 잦아듦. 누군가 부드럽게 나를 쓰다듬는 따뜻한 손. 그것은 축복 같기도, 달램 같기도, 부름 같기도 하다. 이 기운들은 특정한 어떤 장소와 만났을 때 즉각적으로 내게 전달되는 파동이다.
―〈미얀마-미얀마의 아침은 세벽 세 시다〉중에서 사람과의 만남이 인연이듯 어느 한 장소와의 만남도 인연이다. 수많은 장소 가운데 내가 이곳을 택했다는 것―이곳이 나를 부른 것인지도 모르겠지만―그것은 이 장소와 나의 필연적 만남이다. 십 년 오십 년, 혹은 수 세기에 걸쳐 끈끈하게 나를 당겨 내 발걸음이 도달한 여기. 이곳은 그러므로 나의 혈육과도 같다. 나는 이 땅의 초목과 산천, 그리고 처음이나 낯설지 않은 작고 가무스름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민다. 모두 안녕? ―〈카라코람 하이웨이-탁실라에서 우루무치까지〉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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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혼재
시인의 발길이 닿는 곳은 과거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곳들이다. 수만 년 흐른 강, 수만 년 깊어진 호수, 수만 년 솟아 오른 산, 수만 년 다져진 길…. 억겁의 세월을 지낸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온 인간 삶의 자취들을 마주한 순간에도 그는 과거형을 쓰지 않는다. 대신 짧게 끊어 쓴 현재형의 문장 사이사이에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 속에 온갖 상념들이 떠돌고 있다. 그가 지나온 과거의 ‘그곳’들은 ‘오늘을 꾸물꾸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와 미래가 흐르고 있는 공간이다. ‘그곳’의 시간은 멈추어져 있지 않으며 여전히 제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다. 우리가 책장을 넘기는 이 순간에도. 우기가 되면 집도 모래도 사라지고 한바탕 씻고 씻기고 나면 다시 또 모래가 쌓이고 떠돌던 사람들이 찾아들고 헐렁한 집이 삐그덕거리고 시간은 또 그렇게 강과 사람과 나무와 하늘 세상 모든 것들을 부추기며 흐른다 삶이 구절구절 흘러간다. - ‘이라와디 강’ 중에서 ‘지나가다’ ‘머무르다’ ‘지나가다’와 ‘머무르다’ 사이에 있는 것은 쉼표일까, 마침표일까. 시인이 만난 티베트의 유목민들, 미얀마의 사미승들, 파다웅족 여인들, 동해 북평 장터의 상인들…이들은 지금 여기의 우리들에겐 우리 삶 밖의 주변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우리는, 끊임없이 떠도는 유목민에게조차도, 그저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여행자일 뿐이다. 이 에세이 속에는 수많은 지나감과 머묾의 교차점이 존재한다. 시인은 그 교차점 위에서 관찰자적 시점으로, 자기자신과 대상에의 감정이입을 피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려 한다. 떠오른 단상들은 주변인으로서의 생각일 뿐이며 마음의 이끌림은 드러내지 않는다. 대상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에게도 빠져들지 않음으로써, 글을 읽으며 그의 발길을 따라가는 독자들에게도 생각의 공간을 허여한다. 이는 ‘멀리 그리고 분명히 보는’ 유목민의 모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