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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 내가 밀어낸 물결 / 물밑의 여름 / 물위의 치마들 / 산저호수 / 송추계곡 / 물위의 一泊 / 강화 밤 낚시 (이하 생략) 2. 금서 / 갈피 접힌 책 / 그 집의 낯선 남자 / 이 집의 어딘가에 / 저녁의 검은 개 / 누가 자꾸 내 곁에 / 어쩌자고, 봄날이 와서 (이하 생략) 3. 뜨내기들의 주유소 / 먼지들 / 불멸의 밤 1 / 불멸의 밤 2/ 불멸의 밤 3 / 사이보그 극장 1 / 사이보그 극장 2 / 사이보그 극장 3 (이하 생략) 4. 햇빛 밝은 소나기 / 소박비, 나를 그렇게 흔들어놓고 / 입산금지 / 길모퉁이 산타페 / 낯선 저녁 / 모천 / 푸른 점 (이하 생략) |
오정국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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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이렇게 40대 중반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한 것일까. 허깨비가 되어 벌판에 선 느낌이다. 두번째 시집 <모래무덤>이후 도시의 악몽에서 벗어나 존재의 얼룩을 더듬어보고자 했다. 생의 비극적 풍경들, 풍경 속에 깃들인 삶과 죽음의 들끓는 은유들, 그곳에 나는 투항하고자 한다. 슬프고 아름다운 삶의 얼룩, 거기 스민 죽음의 실뿌리들을 환하게 밝혀보고 싶다.
그동안 이 도시를 못 견뎌 산과 강과 저수지를 헤매고 다녔지만 자연은 나에게 위안을 주기는커녕 내 짧은 생을 비춰줄 뿐이었다. 정말 이런 생을 살아가야 하는가. 입에 물을 머금고 눈을 감는다. 나는 내 삶이나 시를 좀 출렁거려보고 싶었지만, 딱딱하고 어둡다. 이런 어둠이 내 삶을 이해시켜주는 오브제라면, 눈물을 훔치고 또 먼 길을 가야 하리라. 시집 원고를 정리하고 나니, 쓸쓸하고 허망하다. 내 삶이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육체를 지닌 인간의 비극일까. 눈을 감은 채 먼산을 향해 고개를 든다. --- 2001년 가을 오정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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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국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두번째 시집 {모래무덤}이 출간된 지 4년 만의 결실이다. 이번 시집의 [자서]에서 시인은 <두번째 시집 {모래무덤} 이후 도시의 악몽에서 벗어나 존재의 얼룩을 더듬어보고자 했다. 생의 비극적 풍경들. 풍경 속에 깃들인 삶과 죽음의 들끓는 은유들, 그곳에 나는 투항하고자 한다>라는 내용으로 시세계의 변화를 요약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시의 악몽에서 벗어나 존재의 얼룩을 더듬어보고자 했>던 마음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가? 먼저 자연의 풍경을 곁에 두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을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자연은 그에게 삶의 위안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그는 단지 자연의 <풍경 속에 깃들인/삶과 죽음의 들끓는 은유들>([저수지 풍경])을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그 은유들의 목록 중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밑>의 풍경이다. 그는 강이나 저수지의 바닥에 자신의 존재를 가라앉혀본다. 그곳에서 존재는 물위로 어른거리는 삶의 풍경을 낯설게 바라본다. 죽음의 바닥에 누워 <이목구비 다 지워버리고/한세상 바라보고 싶은>([물위의 一泊]) 마음가짐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밑바닥의 세계 또한 죽음의 세계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는 말라붙어 드러난 저수지 바닥에서 <진흙밭의 섬세한 실핏줄들>의 자취를 찾아낸다. 그 <실핏줄들>은 죽음을 겪거나 죽음 가까운 곳에서 마련될 수 있는 삶의 흔적이다. 그 흔적을 찾아나서는 시인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담아내는 은유가 <숟가락>이다. 시인이 <내 머리 두고 우는 곳마다/숟가락이 있다>고, 또는 <나 언젠가 이렇게 숟가락 입에 물고 사라져버리리>라고, 또는 아예 <숟가락은 나의 슬픔이며 기쁨이며 안식이며 무덤이다>([숟가락 입에 물고] 연작시편)라고 노래할 때, 그는 비워짐과 채워짐의 무수한 풍경들을 몸에 접붙이고자 하는 것이다. 숟가락을 입에 무는 몸짓은 삶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갈망과 깨달음을 체현한다. <도시의 악몽에서 벗어나 존재의 얼룩을 더듬어보>려는 시인에게 자연은 그렇게 커다란 숟가락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비록 그 숟가락 속에 이제는 기쁨보다 슬픔이나 절망이 더 담겨 있더라도 그것을 떠먹어야 하리라는 사실을 그는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 깨달음이 이 시집의 육체성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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