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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序
1부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나는 아무것도'의 이야기 철길 따라 흘러간 나팔꼬 칭야기 눈밭을 달려간 기차 이야기 강1 강2 겨울 강1 겨울 강2 띠 반달호수 두물머리 풍경 숨은 벽 눈사람의 전신 가시들 굶주림이 나를 키워 너는 또 가시연꽃으로 피어나서 일몰의 빈속 낙상 내 눈이 아니라면 2부 여름풀, 여름꽃 밤은 또 마타리꽃을 흔들며 해발 425m, 출렁거리며 깊어지던 해발 425m, 블랙박스 같은 해발 425m, 더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해발 425m, 상처 없이 빛나는 미완의 절필 금서 떠도는 사막 사막의 입구 사막에서의 하룻밤 씹던 껌을 씹듯 무넘기로 물 넘어가는 무넘기로 물 넘어오는 저런 꽃나무가 싫어서 끊어지지 않는 별사 1 끊어지지 않는 별사 2 그렇게 눈빛을 마주쳤으니 - 절벽의 꽃1 그렇게 눈빛을 마주치고는 - 절벽의 꽃2 3부 진흙들- 골목의 입구 진흙들- 도굴의 발자국 진흙들- 불타는 영원긔 가면 진흙들- 굶주린 입 진흙들- 일식 진흙들- 재의 길, 재의 몸 진흙들- 탕진의 열매 진흙들- 블랙리스트의 커넥션 진흙들- 청맹과니와 어처구니와 뚱딴지들 진흙들- 그냥은 이 저녁을 지나갈 수 없는 진흙들- 생긱과 죽음의 수렁 진흙들- 불려 나오지 못한 목소리 진흙들- 침묵의 수렁 진흙들- 저를 감추면서 저를 드러내는 진흙들- 봉인된 침묵 진흙의 시 파묻힌 얼굴 - 또는 매장된 시 작품 해설/ 고봉준 진흙이라는 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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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미지의 '바깥'에 매혹당한 자아의 숨결을 포착하는 작업
첫 시집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에서 세속 도시를 배경으로 그리움의 서정을, 두 번째 시집 『모래 무덤』에서 모래사막의 서걱거림에 비유해 현대 사회의 불모성을 그렸던 오정국은 이후 『내가 밀어낸 물결』과 『멀리서 오는 것들』에서 고통의 근원을 응시하는 내면의 서정을 펼쳐 보인다. 오정국의 초기 두 시집이 ‘나’의 목소리가 지배하는 자아의 언어라면 다음 두 시집은 ‘누가’라는 익명의 목소리를 시인이 대신 전달하는 복화술, 즉 비인칭의 언어였다. 이러한 경향은 ‘물’과 ‘진흙’의 이미지에 깊이 천착한 이번 시집 『파묻힌 얼굴』에서도 두드러진다. “어떤 날엔 어떤 말이 나를 불러내서/ 자욱한 눈발처럼 흩날리게 하고// 어떤 날엔 어떤 말이 나를 불러내서/ 삼복염천의/ 진흙마냥 들끓게 했는데”(「밤은 또 마타리꽃을 흔들며」)라는 시인의 고백에서 보듯 자아는 바깥에 있는 그 무엇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이에 자아는 목적 없는 무목적인 행위, 의지 없는 무위(無爲)의 행동을 반응으로 도출한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머리 위로 구름이 흘러왔다 책갈피를 펼치면 왜 여기에 밑줄을 쳤을까 싶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깜깜한 밤이 오고 불붙은 기차가 벌판 끝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무것도’의 이야기」에서 생각 없이, 말없이 있을 때 머리 위로 구름이 흐르고 기차가 지나간다. 책 속에는 나도 모르는 밑줄이 그어져 있다. 이렇게 ‘바깥’의 사건들 속에서 ‘나’는 매 순간 반복해서 죽는다. 존재의 죽음이 아니라 자아의 죽음, 주체의 죽음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나는 아무것도’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오정국은 이 무위의 기원이 매혹에 있음을 밝힌다. 매혹당할 때 자아는 ‘바깥’의 침입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내 머릿속을 흔드는/ 블랙박스, 해발 425m”(「해발 425m, 블랙박스 같은」)라거나 “무넘기로 물 넘어오는 저 순간들을 못 견디겠네”(「무넘기로 물 넘어오는」)라는 진술은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의 순간, 사로잡힘의 사건을 충실히 증언한다. 시집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주목할 만한 부분은 3부의 진흙 시 연작이다. 열다섯 편의 「진흙들」과 「진흙의 시」, 「파묻힌 얼굴―또는 매장된 시」로 구성된 진흙 시 연작은 마치 모자이크처럼 집요하게 진흙의 면면을 파헤친다. 진흙은 “몸이 근질근질하여 땅바닥으로 흘러내리”거나 “홍역 앓듯 열에 들떠 들썩거리는”(「진흙들―골목의 입구」) 등 끊임없이 꿈틀거린다. “얽고 얽히는, 물고 물리는 아수라의/ 진흙탕”(「진흙들―굶주린 입」)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흙은 단순한 시적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정의할 수 없는, 형태조차 가늠할 수 없는 야생의 상징이며 원초적 생명력에서 일상적 비유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유와 감각을 포괄하는 추상체이다. 또한 형태를 갖지 않기에 어떤 형상으로든 변이될 수 있는 잠재성이다. 진흙은 “손바닥으로 눌러서는 죽지 않는”(「진흙들―골목의 입구」) 완력을 보여 주며 “아직은 파헤칠 수 없는/ 미완의 둥근 봉분”(「진흙들―탕진의 열매」)처럼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즉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정복되지 않는 잠재성 자체라 할 수 있다. 진흙엔 얼굴이 없다. 그것은 너무 많은 얼굴을 숨기고 있다. 무형의 진흙에 파묻힌 얼굴은 익명의 존재가 된다. 그러나 오정국은 이 파묻힌 얼굴들의 숨결을 찬란한 매혹이라 읽는다. 막막한 부재 앞에서 오히려 생기가 돈다. “난생처음 두 눈 뜨고, 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진흙을 빠져나오는 진흙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