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윤혜정의 다른 상품
|
백인 소녀 미아는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의 낡은 모자를 쓰고 다닙니다. 모자를 통해 미아는 언제나 할아버지의 지혜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지요. 미아가 할아버지의 모자를 쓰고 학교에 온 날, 흑인 소년 아바디가 미아의 반으로 전학을 옵니다. 반 아이들은 아바디의 피부가 검다고 놀려 대지만, 미아는 멋진 머리카락과 반들반들한 피부,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아바디에게 호감을 느낍니다. 미아와 아바디는 학교에 갈 때도 집에 갈 때도 함께 합니다.
어느 날 둘은 놀이터에서 어떤 글자를 발견합니다. 아직 글자를 다 깨우치지 못했던 두 아이는 그 말이 비밀 암호라고 생각합니다. 미아는 공책에 그 말을 적어 가, 아빠에게 말의 뜻을 묻습니다. 아빠는 그 말이 ‘외국인은 나가라!’라는 말이라며 아주 나쁜 뜻이라고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장난이 심한 아이들이 아바디를 ‘까만 원숭이, 깜둥이, 연탄장수’라고 놀립니다. 아바디와 아이들은 싸움을 하게 되고, 선생님에게 혼이 납니다. 아바디는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미아에게 화를 내고 둘의 사이는 서먹해 집니다. 며칠 후, 공책 검사를 하던 선생님이 미아의 공책에서 ‘외국인은 나가라!’라는 말을 발견합니다. 선생님은 미아가 그런 나쁜 말을 썼다고 생각하고 야단을 칩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모두 오해를 받는 미아를 보며, 아바디는 용기를 내어 미아의 편을 들어 줍니다. 둘의 사이는 다시 조금씩 가까워지지요. 그리고 얼마 후, 아이들은 또다시 아바디를 놀려 댑니다. 이번에는 미아도 가만있지 않고 아바디의 편을 들며 아이들에게 대항을 합니다. 다음 날, 아바디는 미아가 쓰고 다니는 증조할아버지의 모자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오고, 둘은 손을 꼭 잡고 힘차게 학교로 달려갑니다. |
|
1. 아바디는 단지 피부색이 다를 뿐이라고!
- 눈 속에 별이 들어 있는 것처럼 눈이 반짝거리는 아바디! ‘썩은 모자’는 돌아가신 증조할아버지의 낡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백인 소녀 미아를, ‘까만 원숭이’는 아프리카에서 전학 온 흑인 소년 아바디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친구들은 자신들과는 조금 다른 두 아이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피부가 검은 아바디를, 아이들은 쉽게 자신들의 세계에 끼워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기에 더욱 잔인할 수 있는 아이들은 아바디를 보며 ‘까만 원숭이, 연탄장수, 깜둥이, 목욕도 안 하는 더러운 아이’라고 놀리지요. 하지만 미아는 다릅니다. 편견 없는 눈을 가진 미아는 아바디를 보고, 반짝이는 눈을 가진 멋진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두 아이는 서로에게 오해를 하기도 하지만,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며 둘의 우정은 더욱 단단해 집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백인 소녀 미아와 흑인 소년 아바디 사이에 진짜 우정이 시작된 것이지요. - 외국인은 나가라! 어느 날 미아와 아바디는 공원 바닥에 쓰인 ‘외국인은 나가라!’라는 글귀를 발견합니다. 읽을 줄 몰라 적어둔 이 한 줄의 글귀가 미아와 아바디의 관계를 돈독히 만드는 매개체가 됩니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냉대는 미아와 아바디가 살고 있는 독일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단일민족 국가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인종차별 문제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순수 혈통’, ‘혼혈’과 같은 용어와 그에 담겨 있는 인종적 우월 관념은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얼마 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 위원장 레지 드 구테)는 인종차별철폐조약과 관련, “한국은 단일민족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27개항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민족단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같은 영토 내에 살고 있는 서로 다른 민족, 국가 그룹들 간의 이해와 관용, 우의 증진에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과 아시아인을 합성한 말, 코시안은 보통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 산업의 중요한 일꾼이 되었고,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많은 혼혈아들이 우리 초등학교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이나 혼혈아들에 대한 우리의 나쁜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편견 어린 시선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집니다. 순수한 아이들의 눈에서 편견이라는 장막을 걷어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