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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너는 누구냐 묻지 않았다
족필(足筆) 낙화 귀가 너는 누구냐 묻지 않았다 혀무덤 모국어 산부인과 저 닭을 잡아먹자 물안개 신목(神木) 찔레꽃 꿩 운우지정 음모론 비천무 강물도 목이 마르다 단풍나무 인터넷 베짱이 뇌신 벽소령 안개 사우나 가을 소식 돌 탁좆 목련 제2부 뼈가 투명해질 때까지 누구에게나 암수한몸의 시절이 있었다 적막강산 쏘라기 낚시 도둑고양이 낮달 문창별 귓속말이 세상을 바꾼다 나비야 청산 가자 천적 나그네 한 여자가 지나갔다 마이산 무덤과 무덤사이 뼈가 투명해질 때까지 자음의 풍경 첫사랑은 화석처럼 저승새 산중문답 문수골 문수제 유마경 논두렁 우체통 내 그림자에게 길을 묻다 현주소 자궁 속에 잠들다 제3부 입산자의 노래 도반 활인검 쑥무덤 북두칠성 봐라, 꽃이다 환절기 다비식 초식동물은 비겁하다 달팽이 유배지의 풀꽃 고리봉 비석의 말씀 얘들아, 지리산의 아들딸들아 현무암 키만큼 다만 멈칫거릴 뿐 황새울의 꿈 자벌레의 길 칩거 길이 길을 막다 입산자의 노래 해설 | 이문재 시인의 말 |
이원규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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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길, 길의 몸을 갈망하다
수평/수직의 세련된 이데올로기 속에서 높은 고개는 터널로, 나루터나 계곡은 다리로, 산과 물과 마을을 에돌던 신작로는 넓은 직선도로로, 길의 몸은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지워져왔다. 바로 지금, 길의 몸은 ‘대운하 건설’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계획 앞에 다시 한 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시인의 통찰에 따르면 새는 제 보드라운 깃털로 공중의 길을, 물고기는 제 지느러미로 물속의 길을 지운다. 그러나 인간이 지나는 길은 그 지워짐의 사태가 극명하게 다르다. 시인은 황지연에서 을숙도까지 생명의 젖줄을 따라가며 회복되지 않은 채 울음의 정경만을 남긴 “얼굴 뭉개진 사내들”의 실체를 목격한다. 그러고는 우는 길 위에 중첩된 자신의 그림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워진 길은 그 울음의 정경을 각인한 시인의 그림자로 연속성을 얻는다. 사라진 길을 인식하는 그의 눈길이, 그의 몸길을 이끌어간다. 이와 같이 그는 발에 붓을 장착하고, 끝없이 걸음으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 ‘개발지상주의 토건민국’의 현실에 대한 체험을 두루 드러내고 있다. 발로 쓴다는 것, “족필”이 드러내는 시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시인 이원규는 다시 말해 ‘꽃잎 위에 정처를 쓰는 노숙자’이다. 그런데 “노숙자”란 누구인가? 같은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인간 부류를 구분 짓는 말들 중 하나, 우리 현실의 뼈아픈 실체, 그 “노숙자”가 아니다. 도시의 진탕이라는 그물 안에서 서로에게 더부살이하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바로 그물의 망점들이라면 오히려 서울역의 “노숙자” 역시 그 그물의 망점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 이원규가 지향하는, 자신을 일컫는 “노숙자”란 그와는 다른 의미이다. 그는 탁발 순례를 떠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언제나 일어나 걷는 노숙자가 되리라. 모두들 더 많이 가지고 끝없이 이기기만을 바라는 세상 속으로 버리고 버리며,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생의 길을 걸어가리라.” 그가 말하는 “노숙자”는 그물 밖의 새로운 주체를 보여준다. 시집의 해설을 쓴 이문재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자발적인 노숙자, 진정한 노숙자가 되어야 땅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산업 문명, 즉 속도와 이윤에 눈이 먼 경제적 인간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 생태적 인간이 일구는 세상이다. 바로 ‘땅에 뿌리박은 세상’, ‘발바닥이 곧 날개’인 세상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거기가 적게 소유하되 많이 존재하고, 자율적인 삶들이 모이되,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세상일 것이다.” 이를테면, 이원규는 그의 시 「족필」에서 신발을 벗어던지고 발바닥으로 길과 만난다. 「탁좆」에서는 가장 음습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어 거풍을 시킨다. 자연을 내면화하는 그의 시도가 진부한 서정의 양상으로 비춰지지 않는 것은 이 시들에 경쾌하게 움직이는 진정한 육체, 몸이 있기 때문이다. 귓바람으로 전해지는 “걸어서 만 리 길을 가본 자”의 기록 “길의 아들”이며 “바람의 사내”인 그는 자유와 유목이라는 현대 문화의 주류를 한발 앞서 이끈 주도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집을 떠나는 것이 성장이고, 새로운 집을 마련하는 것이 성장’인 현대 사회에서, ‘유목주의’마저 ‘개발’과 ‘소비’의 그럴듯한 명목으로 탈바꿈하는 세상에서, 세상과 같은 방식―같은 속도로 성장할 것을 강요받아온 우리에게 이 시인의 정처 없음은 다른 유목의 방식을 꿈꾸도록 권유한다. 이 시집은 ‘걸어서 만 리 길을 가본 자’의 기록이다. 그 먼 길에서 주워온 시들을 다시 시의 길 위에 방생할 때, 시들은 당신의 귓가에 바람으로 다가갈 것이다. “낮은 목소리가 세상을 바꾸”리라 믿는 그 시들은 “푸웃 풋, 열쇠 모양의 귓바람”(「귓속말이 세상을 바꾼다」 부분)이 되어 당신에게, 여전히 목이 마른 강물의 이야기를, 우는 돌의 이야기를, 삼보일배를 하며 나아가는 자벌레의 숨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이 시집의 마지막 시편 「입산자의 노래」는 거의 동시에 발간되는 산문집 『지리산 편지』로도 통하는 바람이다. 이제는 당신의 몸과 마음에, 귀에, ‘거풍’을 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