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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차경(借景) 나무에서 연잎 떨어지다 동굴나비 베네딕트 사원에서 어두운 길들 눈빛 개나리 유감 집 잃은 달팽이 나뭇잎 탁본 숨은 연못 미늘 절망이 일상이라면 갈증 2부 어떤 방문객 낮달 고장 난 나침반 신호등의 향기 허공에 패를 놓다 죽음보다 강한 것 나팔꽃 의자가 앓고 있다 헛된 창가에 앉아 그림자들 후안(候雁) 감기지 않는 눈 목마른 마을 탄다, 바퀴를 굴려라 여름 바다 이장(移葬) 해부실을 나오며 3부 솜틀집을 지나며 봄 생각 빈두(Bindu), 귀로 나는 언제 돌아오려나 또 다른 왼발 환절기에 고삐를 다시 매어보다 일몰 구름 속의 산책 쓸모없는 일 저울 눈물과 함께 옮겨가는 페이지 미려에 대한 생각 4부 하남에서 백석을 생각하다 백야행 풍경을 듣다 맹인과 모란 거꾸로 매달린 사람 신전神殿 속의 낙서 바보 이야기 왜행성 134340에 부쳐 공터에서 가을밤 옛집들 그림자 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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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심한 마음 안쪽의 물결무늬”
세계사시인선 144, 박주하 시집 『숨은 연못』이 발간되었다. 이 시집은 박주하 시인(본명: 박인숙)의 두 번째 시집으로, 1996년 『불교문예』로 등단한 이래 시집 『항생제를 먹은 오후』를 펴낸 바 있다. 길고 오래된 호흡 한 줄기가 너를 길들였던 게 분명해, 수중에서 잠이 든 붕어는 돌멩이가 날아와도 꿈을 버릴 마음이 없어, 떨어지는 돌멩이를 유연하게 휘어주는 물의 마음을 믿기 때문이지, 당연히 그 연못을 만날 수 있어, 환상을 버리지 못한 노란 은행잎들이 후드득, 몸을 던져도 졸음에 겨운 붕어는 좀체 눈을 뜨지 않아, 은행잎들의 좌절을 부드럽게 돌려보내는 물의 사랑, 용서의 힘을 믿기 때문이지, 울지 말고 다시 연못의 맑은 얼굴을 들여다봐, 아무에게나 쉽게 문을 열어주진 않지만 언제나 투명하게 네 무늬를 비춰주고 있지 않니, 네가 바로 그 연못이야 ―「숨은 연못」 전문 박주하 시인의 연못이 만들어내는 물결무늬들은 시어와 시어가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서 파편화된 사랑의 그림자와 그 순환들로 이루어진다. 숨은 연못이자 바로 “너”인 시의 화자는 독백을 하고 있다. 물과 그 물 위에 비추인 무늬는, 다름 아닌 마음과 마음에 비추인 무늬인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마음의 연못에 고즈넉하게 투사된 삶의 숨은 풍경들을 아리지만 담담한 어조로 풀어낸다. 시인의 말 태어나는 순간부터 쓸쓸한 씨앗들이 있다. 귀퉁이가 이지러진 묵정밭 끄트머리에 던져진 존재에게 물은 늘 부족하고 바람은 반드시 혹독함을 지니기 마련이다. 고통이 삶의 이유가 될 순 없으나 일찍 불행을 맛본 씨앗은 어느새 고통에 익숙해져 있다. 거울 속의 사랑은 그 자체로 본영을 꿈꾸고 배반하는 허탈감을 반복한다. 자유롭지 못하여 생살을 파내고서라도 넓히고자 했던 공간에 마음들은 때로 영문도 모르는 채 끌려와 역사를 기록한다. 그 질긴 끌림들은 모두 같은 씨앗의 처음에서 번진 것이다. 고통의 크기만큼 행복이 감미롭다면 나는 아직 덜 고통 받았으므로 불행에 더 가깝다. 불우한 씨앗의 천성을 숨기지 못해 매양 흔들리는 나에게 물을 길어와 척박함을 돌봐준 다정한 당신과 사랑하는 현이, 진이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 2008년 12월 겨울강가에서 박주하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