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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박주하
걷는사람 2021.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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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고요에 몸을 씻은 새
밤 택시
조용한 사람들
사람의 집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마라토너
심검
걷는 나비
칼날에 마음이 베일 때
죽은 몸을 붙잡고 우는 사람
지나가는 여자
빗방울들
추신
허공은 나무가 꾸는 꿈
언젠가 왔었던 바닥

2부 어디선가 사람이 오고 있다니,
저녁의 후회
두부를 먹으며
줄에 관한 생각
우산을 기다리는 일
잎 먼저 틔운, 꽃 먼저 피운,

우리들의 세계사
당신은 돌을 던지시오
불가피한 저녁
칠점사
고요가 가는 길
꽃잎 위에서 자란 바람에게
멀리서 오는 生
눈물을 마시는 나비

3부 오늘 저 석양은 누구의 기분일까
오늘의 석양
지나간 진심을 사랑하지 않았다
심장보다 높은 곳에
완연
웃는 사람
불 좀 켜 주세요
입장
어떤 당부
뜻밖의 말
백 년 여관
물방울의 벽
세상에서 가장 먼 곳
밝은 곳으로 자꾸 몸이 간다

4부 우리는 이제 더는 머물 곳이 없네
돌이 되는 세계
악몽
눈사람
지난밤 다른 심장
당신의 영혼을 주세요
신은 먼 곳으로 갔다
죽은 나무 아래에서
오월의 사람에게
새가 날아간 후
가을비가 내리는 동안
옛날 사람
심심한 날
우리는 안녕이란 인사도 없이

해설
칼갈이와 거문고를 품은 마음
―이경호(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1967년 6월 12일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났다. 숭의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6년 [불교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항생제를 먹은 오후』, 『숨은 연못』,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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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46g | 125*200*8mm
ISBN13
9791191262360

책 속으로

오래전 지하철 순환선에서
칼갈이를 팔던 남자를 본 적이 있다

뒤집개를 들고 서서
바이올린을 켜듯 칼 가는 시늉을 하던

칼을 들고 다니면 안 되니까
칼갈이의 성능을 보여 줄 수가 없어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던 그곳에서
귀보다 먼저 가슴에 꽂힌 목소리를

한 번도 잊고
두 번도 잊었는데
칼을 쥘 적마다 떠오른다

홀로 답이 되는 날이면
손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칼갈이를 찾는다
--- 「칼날에 마음이 베일 때」
――――――――――――――――――――――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붉어진 앵두 같은 일

시다 달다 말도 못 하고
핏방울 맺힌 혀끝으로만 굴리다가

밤길에 홀로 선
빨간 우체통에 얼굴을 들이밀고

남몰래 중얼거렸지
사랑한다, 너만 알고 있어라
--- 「추신」
――――――――――――――――――――――

외로움과 누추하게 마주 앉을 때
두부만큼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가던 게 또 있었던가

이렇게 묽어지려고 더 강해지는 길을
이렇게 사려 깊어지려고
흰 정성 한 톨 품어내는 끈기를
한 알의 콩은 알고 있었으니

고독은 부디
저 가을볕에 몸 섞는
단단한 콩알만큼만 여물어라
--- 「두부를 먹으며」 중에서
――――――――――――――――――――――

거문고에 줄이 없었다면
누가 줄을 튕겨 심연을 건드려 보았을까

어미가 줄을 놓아 주었으니
새끼도 그 줄을 타고 지상에 발을 들였겠지

탯줄을 감고 노래 부르고
탯줄을 타고 춤을 추고
한 올 한 올
서로를 튕겨 주는 믿음으로 즐거웠으나

약속에 매달리고
관계에 매달리며

그 줄 점점 얇아지고 가늘어졌으니
돌아갈 길이 멀고도 아득하여라

몸으로 엮었던 줄을 마음이 지워 버렸네
서로에게 낡고 희미해져
먼지처럼 가늘어진 사람들

요양원의 투명한 링거 줄에 매달려 있네
잃어버린 첫 줄을 생각하네
--- 「줄에 관한 생각」
――――――――――――――――――――――

날지 못하면 벌레에 가까운 생을 사는구나
바닥에 가까워지자 몸이 먼저 미천해졌다 나방들이 떼를 지어 몸에 달라붙었다 밤새 온갖 벌레들에게 몸뚱어리를 들볶이느라 사지가 뒤틀리고 가려웠다

벌레들의 세상에서 벌레들이 먹다 남은 밥 신세가 되자 가문 언덕의 나무 생각이 자꾸 아른거렸다 한 그루 나무의 일생으로 살게 될 거란 오래전 어느 예언도 떠올랐다

가지마다 잎을 틔우느라 저 나무들은 얼마나 목숨이 가렵고 아팠을까 자신의 육체로부터 달아나려다가잎들을 놓친 나무가 고요를 붙잡고 내려앉는다 오직 허공 하나를 꿈꾸며 꽃을 피운 게 나무의 죄가 되었나

그 숲에서 나는 터진 나무껍질 사이로 새어 나오던 나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 「허공은 나무가 꾸는 꿈」 중에서
――――――――――――――――――――――

지나간 진심들이 자꾸 무언가를 적어 보낸다 앞만 보고 걷는데 오늘의 진심이 자꾸 넘어진다

겨우내 눌어붙은 마음에 날개가 붙는 아, 지긋지긋한 진심들, 돌아서면 또 그만일 진심을 버리고 봄날의 오해를 택하는 건 아주 쉬운 일, 오해였다고 말할 시간은 오지 않을 테니 진심은 부디 사려 깊은 곳에서 견뎌라

진심의 입에서 냄새가 난다 순간의 일들이 뼈를 태우는 냄새, 그것은 오래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내는 고통의 냄새, 기억이 열렸다 닫히는 곳으로 지난날의 내가 자꾸 거짓말을 보내온다 나는 지나간 진심들을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 「지나간 진심을 사랑하지 않았다」 중에서
――――――――――――――――――――――

배롱꽃의 이별은 배롱나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일
오래전에 싹이 트고 자라 온 인연이 간신히 뜻을 이루고 생의 거처를 옮겨 가는 일
우연히 강이나 한번 보자고 바람을 따라나선 건 아닐 겁니다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모든 그리움도 태어나기 전부터 조각된 작디작은 꽃잎 같은 일
바람이 불 때마다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으니 어쩌면 꽃보다 못한 마음이겠으나

그것은 이별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시간에서 시작된 인연을 마침내 완성하는 것이라고

미련이 바닥에 내려와 닿기까지 마음은 끝끝내 생각을 세워 둡니다

--- 「완연完緣」 중에서

출판사 리뷰

‘탯줄’을 타고 나와 ‘링거 줄’에 매달려 떠나는 삶의 순환, 삶의 아이러니

걷는사람 시인선의 42번째 작품으로 박주하 시인의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가 출간되었다. 1996년 《불교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주하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다. 그의 지난 시집들이 시대와 불화하는 인간의 상실과 우울을 노래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상처로 얼룩진 다양한 마음들을 어루만지는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시집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에는 “침묵의 푸른빛”이 가득하다. 복잡한 세계 속에서도 잔잔하게 흐르는 것은 “울음밖에 배운 게 없는 텅 빈 마음”의 푸른빛이다. 시인은 마치 “고요에 몸을 씻은 새가/투명한 의자에 투명하게 앉아”(「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있는 것처럼 처연하고 깊은 시선으로 주변을 응시한다. 이러한 시선은 병들고 험한 세계와의 화해를 원하는 소망이기도 하다. 그는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값진 방”이라고 명명하면서 “그 방 하나를 들이려고 평생 집을”(「사람의 집」) 짓는 일을 시의 업(業)으로 삼는다. 박주하의 시편들은 세계를 수용하는 마음의 공감과 증언으로 응결된다.
그는 특히 꽃, 새, 나무, 구름과 같은 주변 자연을 바라보고 심상이 동화된다. 가령 “가지마다 잎을 틔우느라 저 나무들은 얼마나 목숨이 가렵고 아팠을까/……/오직 허공 하나를 꿈꾸며 꽃을 피운 게 나무의 죄가 되었나”(「허공은 나무가 꾸는 꿈」), “죽음이란 어쩌면 지는 저 꽃잎처럼 가볍고, 아름답고, 무정한 일”(「잎 먼저 틔운, 꽃 먼저 피운,」)이라는 고백은 자연과 삶이 가진 생태적 이치를 드러내는 증언이다.
또한 이번 시집에는 유독 ‘줄’, ‘날’과 같은 ‘선’의 이미지가 강조되는데, 배롱나무를 ‘눈 밝은 검객’으로 지켜보면서 “멀어지는 일들은 그대로 두세요/칼날은 칼등에 기대어 자라납니다”(「심검(心劍)」)라고 단언하거나, ‘지하철 순환선에서 칼갈이를 팔던 남자’를 본 이후로 “홀로 답이 되는 날이면/손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칼갈이를 찾는다”(「칼날에 마음이 베일 때」)라며 자조 섞인 한숨을 내뱉기도 한다. 이러한 의식은 「줄에 관한 생각」에서 좀 더 확장되어 언급된다. 보이지 않는 생(生)의 줄을 거문고 줄에 비유하여 “서로를 튕겨 주는 믿음으로 즐거웠”다고 표현하는 한편 “약속에 매달리고/관계에 매달리며/……/몸으로 엮었던 줄을 마음이 지워 버렸네”(「줄에 관한 생각」)라는 대목에서는 이율배반적인 인생사를 절묘하게 포착한다. 이처럼 ‘줄’은 ‘탯줄’을 타고 세상에 나온 사람이 결국엔 ‘링거 줄’에 매달려 세상의 끝을 바라보는, 인간의 짧은 생애를 축약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시인에게 다양한 ‘선’들은 날카로운 세계 속에서 한 인간이 상처받고 회복되어 가는 연속성을 관통하는 매개체가 된다.
이경호 문학평론가는 “거문고는 음역이 낮고 소리가 무겁고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며 “이런 소리 효과라야만 생의 근본을 뒤적이는 느낌마저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며 박주하 시인이 튕기는 한 줄의 노래에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 주려던 순간
지나온 계절의 쓸모를 반성하게 되었다

하마터면 저 여린 꽃잎을
무자비하게 사랑할 뻔했고
또 잊을 뻔했다

밀물 드는 가질 수 없는 말들이 많았다

손을 내밀지 않고도
마음이 겹치는 날들을 연습한다"

2021년 5월
박주하

추천평

박주하의 이번 시편을 읽는 것은 폐우물 속에 머리를 밀어 넣고 어둠을 주시했을 때 듣는 환청의 경험과 비슷한 값을 지닌다. 그 스산하고 아득한 울림은 기억나지 않아 안타까운 슬픈 꿈결 같기도 하고, 전생의 뒤안길을 배회하는 황폐한 영혼의 통점을 지시하는 성싶기도 하다.
“저 나무들은 얼마나 목숨이 가렵고 아팠을까”(「허공은 나무가 꾸는 꿈」)는 시집을 관류하는 생태의 비밀을 품는다. 이 낮은 톤의 음성은 타자를 향한 연민으로 가공되어 있을지언정, 과연 그것은 자기 연민의 시치미 떼기 형식이라는 점에서 막막한 자백과 다르지 않다. 때 되어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나무의 행위가 선택 이전의 것이듯, 그러한 인식은 배후에 숙명성의 징후를 짙게 드리울 수밖에 없다. 그녀의 자백은 시집 여기저기에서 다른 온도와 채도로 변형·생성된다. 때로 “읽자마자 잊히는 서문” 같은 날들 속에서 “먼저 저무는 법을 연습”(이상 「조용한 사람들」)하는 피로한 체념의 모습으로, 때로 “불 꺼진 방”에서 “집이 늦도록 슬픔(못-필자)을 빼”(이상 「사람의 집」)는 적막한 저항의 포즈로, 때로 자아를 지우기 위해 “더 깊이 어두워지는 맨발”(「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처럼 자의식의 위태롭고 하염없는 침전으로 나타난다. 또 그것은 “복사꽃 그늘 밑을 들춰 보”거나, “느릿느릿 끝나지 않는 환생을 기웃거리”(이상 「언젠가 왔었던 바닥」)는 장면에서 보듯이 체념도 저항도 자의식의 침전도 아닌, 그저 화려하고 덧없는 교란과 도착倒錯의 환상으로 물성화되기도 한다.
내성內省의 쓸쓸한 깊이와 처연한 환멸, 시집을 펼쳐 든 첫 번째 인상이다. 젊을 무렵, 어쩌면 화쇄류처럼 분류하는 운명에 가파르게 맞섰던 그녀의 그에 대응하는 자세가 이제 이처럼 외롭고 고즈넉하다. 인환人?의 봄날 저녁, 내부의 어둠을 응시하면서 전신으로 운명의 등피燈皮를 닦고 있을 박주하라는 텍스트와 개성은 더 화창하게 개어도 좋을 터이다. - 오태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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