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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붕대 감은 성자 2 오아시스 모임 3 피맛 4 내가 다리를 벌리면 너는 가위를 집어넣으렴 5 그가 나를 데려다주리라 6 천국을 현현하는 여자 7 참으로 복된 밤 8 피로 맺은 계약 9 성가신 먹구름 10 밤낚시 11 안개 12 해를 보여드릴게요 13 애도의 절차 14 이브가 태어나다 15 포식과 향연 16 괴물일까, 성자일까 17 마지막 합일 에필로그 작가후기 |
Park Cha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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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은 가위를 내려놓았다. 링거병에서 튜브를 뽑아냈다. 튜브에 들어 있던 링거액이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링거바늘에서 피가 역류하는 것이 보였다. 상현은 입에 물고 힘껏 빨아당겼다. 압력이 부족한지 피가 올라오다가는 다시 내려갔다. 상현은 아예 바닥에 누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최대한 힘껏 빨아당겼다. 피가 들어오고 있었다. 효성의 피가. 살아 있는 자의 피가 상현의 몸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상현은 꿀떡꿀떡 소리를 내며 피를 마셨다. 효성의 뜨끈한 피가 식도를 지나 위에 차오르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 「피맛」 중에서
강우의 웃음소리에 태주는 빈정이 상했다. 강우는 저녁나절의 사건은 새카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속옷까지 내보이며 엎어지게 만들더니…… 지도 수컷이라고, 다른 놈이 제 여자 힐끔거리는 건 못 보겠다고…… 부린다는 호기라는 게 기껏…… 태주는 강우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분한 마음으로 씩씩대거나 치욕스러워 눈물을 흘려야 마땅하지만, 태주는 강우가 한심할 뿐이었다. (……) 억울함 때문에 분노했던 심장이 텅 비어버리는 이 순간을 태주는 번번이 사랑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그 텅 빈 심장에 어느 결엔가부터 확고히 자리잡은 감정이 있었다. 그것은 권태였다. 강우의 코끝에서 야무지게 콧물을 훔쳐내는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 「내가 다리를 벌리면 너는 가위를 집어넣으렴」 중에서 “이러다 우리 둘 다 지옥 가요.” “나는 신앙이 없어서 지옥 안 가요.” 지옥 구경이라도 한번 시켜줘요. 여기만 하겠어요. 당신은 지옥이 어떤 데인지 결코 알 수 없는 사람이에요. 나는 지옥을 잘 알아요. 지옥을 보여줄까요? --- 「그가 나를 데려다주리라」 중에서 태주가 두 손으로 상현의 얼굴을 감싸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상현은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어느 것이 지옥이고 어느 것이 천국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 지금,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태주의 품이 천국이라는 사실이었다. 피부로 느낄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이 사실들. 언제나 막연하기만 했던 천국이 이렇게 감각적으로 현현한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상현은 힘이 차올랐다. “시간 없어요…… 안아주세요, 빨리.” 상현은 착한 아이처럼 태주를 와락 끌어안았다. 텅 비어 있던 몸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기쁨으로 온몸이 뜨거워졌다. 상현은 결심했다. 내 앞에 천국을 현현하는 이 여자. 이 여자를 위해 순교를 하겠다고. --- 「천국을 현현하는 여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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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와 욕망을 넘나드는 핏빛 사랑 이야기
“당신을 안고 내가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이란 바로 이런 거예요 나락으로 내려갈 수는 있어도 높은 곳으로 다시 올라갈 수는 없는 것…” 기적을 갈구하는 병든 자들 앞에 어느 날 홀연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남으로써 스스로 기적을 실현시킨 한 남자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그를 성자라 부르며, 병든 몸을 치유 받고자 모여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정체 모를 피를 수혈 받아 흡혈귀가 되어버린 신부 상현. 하지만 “매일 세끼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처럼 상현에게도 필요한 피의 양이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피가 필요했고, 피를 구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했다.” 살인하지 말라는 신의 계명과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육체적 현실 앞에서 갈등하던 상현은 결국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 있는 친구 효성의 피와 고아인 자신을 돌보아준 노신부의 피를 빨아 먹으며 흡혈귀로의 삶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친구 강우의 아내인 태주를 다시 만난 상현은 자기 안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에 눈을 뜨고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희열에 탐닉하게 된다. “어느 것이 지옥이고 어느 것이 천국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 지금,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태주의 품이 천국이라는 사실이었다. 피부로 느낄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이 사실들. 언제나 막연하기만 했던 천국이 이렇게 감각적으로 현현한다는 이 사실만으로도 상현은 힘이 차올랐다.” 한편 태주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신을 길러준 라여사의 집에서 라여사의 병약한 아들 강우의 아내가 되어 ‘간호인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신경질적인 라여사와 어린애 같은 강우 사이에서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며 제 안의 욕망을 다스리지 못해 밤마다 맨발로 달리고, 실밥가위로 제 살을 뜯어내며 권태에 찌든 삶에서 탈출을 꿈꾼다. “태주는 거칠게 서랍을 열고 실밥가위를 꺼내들었다. 허벅지에 대고 슬쩍 눌러보았다. 무언가 흥분이 되는 느낌이었다. 스윽슥 긁다가 가위를 허벅지에 푹 쑤셨다. 피가 흘렀다. 고통이 밀려왔다. 태주가 바라던 쾌락이 거기에 있었다. 고통과 쾌락은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무력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밤, 태주는 상현과의 강렬한 만남을 통해 짓눌린 일상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줄 한줄기 빛을 발견한다. 생의 벼랑 끝에서 만난 두 남녀는 거부할 수 없는 매혹적인 사랑 속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가고, 결국엔 두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강우를 살해할 계획을 세우는데…. “상현은 처음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피에 목말라 있을 때에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태주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주 앞에 기적 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들에게 사랑의 선물이 아닌 파국을 알리는 신호가 되고, 결국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부르고, 피는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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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인 소재와 스토리로 개봉 전부터 전 세계를 열광시킨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를 소설로 만나다 두 나라, 세 세기, 네 작가가 만들어낸 하나의 소설『박쥐』 이 영화의 이야기는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에 ‘아주 느슨하게’ 기초하고 있다. 19세기 프랑스의 서민생활을 묘사한 사실주의 문학이 한국에서 영화화된다. 이 영화는 20세기에 구상되어 21세기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게 또 다른 작가에 의해 소설화 되었다. 두 나라, 세 세기, 네 작가가 만들어낸 하나의 이야기. 이것이 소설 『박쥐』다. ― 박찬욱 감독의 ‘작가후기’에서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소설 『박쥐』의 첫 발원지는 19세기 프랑스다. 이미 몇 세기 전에 무덤 속에 묻힌 유럽의 한 소설가가 21세기를 살고 있는 한국의 한 영화감독에게 흘리듯 떨구어준 아주 작은 씨앗 하나. 그 씨앗이 새로운 상상력과 시간을 양분 삼아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열매를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다. 불륜과 살인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로 자연주의 문학의 서설이 되었던 에밀 졸라의 소설에서 시작해 박찬욱, 정서경의 시나리오를 통해 ‘흡혈귀가 된 신부’라는 새로운 캐릭터로 태어났고, 영화 「박쥐」의 이미지를 보지 못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소설 『박쥐』로 변신을 거듭했다. 시간과 공간과 장르를 뛰어넘어 하나의 상상력으로 맺어진 네 예술가의 합작품이 바로 소설 『박쥐』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이 갖는 의의가 남다르다. 소설 『박쥐』는 흡혈귀가 된 신부와 그 친구의 아내. 극한의 상황에서 만난 두 남녀의 위험한 사랑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잔혹한 사건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 죄의식과 욕망의 다양한 양상을 잔혹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냈다. 작가의 도발적인 상상력, 섬세한 심리묘사, 치밀하고 생생하게 직조된 인물들, 빈틈없는 문장이 빛을 발한다. 이 소설에서는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은 살아있지만 사건들의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생겨났고, 대사의 양보다는 캐릭터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영화와 다르다. 박찬욱 감독이 『테레즈 라캥』에 영감을 얻어 영화 「박쥐」를 만들었다면, 이 소설 또한 「박쥐」의 시나리오에 영감을 얻어 새롭게 창조된 독립적인 작품이다. 영화가 개봉되거나 흥행에 성공하여 원작 소설이 주목받는 일련의 ‘스크린셀러’ 가 ‘소설의 영화화’ 과정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관찰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이번 작품은 ‘영화의 소설화’라는 점에서 두 매체를 비교해 보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소설 『박쥐』를 통해 영화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