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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내 안의 구로동
1. 기억 더듬기 ― 내 안의 구로동 2.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산업단지 3. 사이를 채우는 사람, 사람들 2부| 구로동 사람들 1. 행복의 조건 ― 이수진 그 여자의 구로동|불안정한 노동, 그리고 남편의 허황된 꿈|불치병에 걸린 남편과 살며 사랑하며|‘일다운 일’과 이수진의 행복 2. 일 잘하고, 일 좋아하는 노동자 ― 김의순 남자들은 집에 있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구로공단 노동자되기|친구 따라 강남가기, 노동조합 활동|공부는 못해도 일은 잘하는 노동자|새로운 일터 ‘생산공동체 한백’|생산공동체 한백의 실패를 딛고 다시 생산공동체 여우솜씨로|이주 노동자도 같은 노동자 3. 사람의 변화를 경작하는 사람 ― 윤혜련 화두, 삶을 변화시키는 활동|원죄, 대한민국에서 빨갱이 가족으로 산다는 것|어린 여성 노동자에서 구로동맹파업의 주역으로|대안을 찾아, 삶의 양식을 바꾸는 노동운동 4. 마법에 걸린 구로 말뚝이 ― 문재훈 100 문재훈을 사로잡은 마법들|여동생은 노동자, 오빠는 대학생|불쌍한 우리 아버지, 반무당 어머니|빈대떡 신사가 된 구로동|공순이와 공돌이를 대신한 이름, 비정규직 노동자|화려한 꽃보다는 든든한 줄기로 5. 나를 키우는 건 지역사회 활동 ― 하태한 122 구로의 개구쟁이, 하태한|새로운 삶, 지역시민단체 활동가|난 참 내세울 게 없어요|사회 문제에 민감했던 구로고등학교|아이 넷, 어른 셋, 두 가족 한 공동체|학부모 활동 속에서 성장한 중년 아저씨 6. 약은 약사에게, 구로는 구로 사람들에게 ― 박혜경 146 새로운 지역보건복지운동, 구로건강복지센터|남에게도 도움이 되고 나에게도 좋은 약사되기|나에게 좋은 약사라는 직업|가난해서 건강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실패의 경험과 동네 유리가게 아저씨 3부| 우리들의 구로동을 향해 1. 소통과 연대 2. 엘리트주의에 묻힌 대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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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시장은 굉장히 쌌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옛날만큼 싸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싸다고 하는데, 제가 느끼기에는 굉장히 많이 비싸진 것 같아요. 내가 어려워서 그런지.(웃음) 옛날만큼 싸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구로시장에서 사느니 이마트에 가서 사고 싶더라고요. --- p.34
썩을 년들이 만들기는 지들이 다 만들어 놓고 어디 내빼갔고.(웃음) 대성전기 다닐 때도 그냥 나름대로 노조 하면서 잘 만들었다 생각했지. 옛날에 조회 시간 10분 전에 안 오면 문을 잠가 버렸는데 노조가 생기고 나니까 그건 게 없어져서 좋다, 개선한 게 많아서 좋다 그랬는데, 좋은 점도 많았지. 고생한 것도 많았지만. --- pp.58-59 친구더러 “너 삐리지? 너 학삐리지?”라고 내가 물었어. 그랬더니 걔가 멈칫 하는 거야. 나중에는 그렇다고 얘기를 하더라고, 그럼 이런 친구들이 있으면 만들 수 있겠다고 해서 노동조합을 결성을 했지. --- p.90 예전에 노동조합 활동은 처음엔 목숨을 내놓고 했던 일이고, 그때는 그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사회가 많이 변해서 그때 싸웠던 게 많은 성과로 나타났다고 봐. 이제는 노동조합 활동은 내가 자신이 없어. 왜냐하면 나도 기성세대가 됐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현장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그 현장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는 자활 사업이 나한테는 맞고 하고 싶었고 노동조합에서 활동했을 때 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그런 사업이라고 보거든. --- pp.96-97 고참 노동자가 뒤통수를 탁 치면서, “야 이게 왜 우냐, 불을 맞았으니까 휘었을 거 아니냐. 그럼 불 맞은 데를 다듬어 줘야지” 하면서 조그만 망치로 타타타타 치니까 쫙 펴지더군. 마법 같았어. 아 이 사람 철학자구나. 나는 책에서 본 대로 원인이 있는 데서 풀어야 한다는 얘기는 좔좔 다 외는데 구체적인 일에서는 보이는 현상만 두드린 거거든. 이게 진짜 노동의 철학이구나. 배워야지 했어. --- p.100 아파트형 공장 들어가 보면 이른바 IT업종이라 하지만, IT업종도 정확하게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은 거의 드물고, 다단계라든가 부동산이라든가 조그마하게 마치 길거리를 접어 건물로 쌓아 놓은 것처럼 다양한 업종들인 거예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작업복이 바뀌었다는 건 확연해요. 옛날에는 말 그대로 작업복이었는데, 요즘은 정장이나 넥타이가 작업복이 되었죠. 그런데 그 아파트형 공장 하나가 옛날에는 큰 대형 공장 하나였던 거예요. 그 하나의 기업이 수백 수천 개로 찢어진 거예요. 그 외양은 화려하고 커졌지만, 그 안은 작고 왜소해진 거죠. --- p.112 처음엔 직원도 두 명, 주방도 두 명이 있었지. 한 여섯 달 지나니까 주방 보조 한 명이 줄었어요. 장사가 잘 안 됐단 소리지. 주방 보조가 하던 일을 내가 대신하게 됐고, 또 한 여섯 달 지난 다음에 주방장한테 노하우를 배웠어요. “혼자 하세요. 돈도 안 되는데.” 이러면서 주방장도 나가고. 주방장 겸 사장 겸인 나 하나와 서빙 두 명이 일했지. 조금 있다가 서빙도 한 명이 사라지고, 서빙 하나 나 하나 하다가 나 하나 남고. 그러다가 정리했지. 보이잖아요. 무너져가는 게. --- pp.132-133 무척 재밌었죠.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일도 하고 교실 같은 것도 많이 했거든요. 건강 교실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주간회의, 약국회의를 했어요. 회의는 근무 끝나고 해야 하니까 10시에 열죠. 그래서 10시에 끝나면 회의를 약국에서 하거나, 어디 빌려서 회의하고, 하다 보면 새벽 3시인 거예요. 3시까지 회의하고, 거기서 자고 오후 출근인 사람은 집으로 가고, 아침 출근인 사람은 거기서 몇 시간 자고 다시 출근하고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았죠. --- p.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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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만 목적으로 하지 않는 약국과 병원에서 친절하게 상담과 진찰을 받을 수 있다.
전문 지식이 더 많다고 해서 자기들만이 아는 언어로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다. 지역의 아이들이 더 바람직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을 목적으로 삼은 어린이집이 있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 아파트 값이나 재테크 이야기보다, 공동체적 삶을 동네에서 실천하는 것을 의논할 수 있는 이웃이 있다. 구로‘공단’에서 구로‘디지털산업단지’로 ‘구로’는 지혜를 상징하는 아홉 노인이 오랫동안 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구로공단이 형성되기 전 구로는 도심에서 추방된 철거민들의 주거지였다. 하지만 우리에게 구로는 구로공단으로만 알려져 있다. 1964년 수출산업공업단지 조성 법안이 제정되면서 1967년에 구로공단이 처음 만들어졌다. 도시 외곽의 철거민과 농촌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한국의 산업화를 떠받친 곳이지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노동자들은 공돌이·공순이라는 오명과 소외·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구로공단에 있던 많은 공장들은 더 낮은 임금을 찾아 중국 등으로 떠났고, 구로는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들과 IT업체 등 새로운 업종의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 굴뚝형 공장은 사라지고 높은 아파트형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2000년 2호선 구로공단역은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이름을 바꿨다. 삶은, 이야기 ― 구로공단과 구로디지털단지 사이 월드를 지키는 여섯 명의 사람들 이 글에는 여섯 명의 ‘삶 이야기’가 있다. 구로라는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산업화 과정에서 공순이와 공돌이로, 노동운동에 참여하며 거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는 동안 이 사람들의 삶도 변했다. 필자가 발로 찾아다니면서 취재하고 구술을 받아 적은 여섯 명의 이야기가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는 그 사이를 생생히 들려준다. 이수진은 구로에서 태어나 자라 사무직에 취직했지만 사무직이라는 자부심은커녕 사람을 사이에서 스트레스만 받았다. 지금은 동네 무료 공부방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일다운 일을 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김의순은 농촌에서 풍족하게 자랐다. 가난한 농촌 총각과 결혼하면서 구로에 정착했고, 구로공단에서 기혼 여성 노동자로 일했고 노동조합도 했다. 지금은 착취 없이 일한 만큼 가져가는 생산공동체의 노동자다. 윤혜련은 구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구로공단의 노동자로 일했다.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해 구속되기도 했다. 지금은 구로삶터자활후견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문재훈은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하려고 구로에 왔다.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구로를 20년이 넘도록 지키며 노동자들을 상담하고 교육하고 있다. 하태한은 구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용산전자상가에서도 일하고 컴퓨터 가게도 운영하고 횟집도 해봤다. 하지만 매번 실패했다. 구로초등학교 학부모회 활동을 하면서 하태한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보람을 느낀다. 구의원 선거에 시민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지금은 구로시민센터에서 상근 활동을 하고 있다. 박혜경은 우리네약국 약사이자 구로건강복지센터 이사장이다. 20대 중반에 구로에 와서 노동자와 아이들 장애우 등 의료 소외 계층의 건강을 지켜주려고 한다. 가난과 소외, 슬픔과 기쁜, 좌절과 희망이 교차하는 이 여섯 사람의 구로동 연가를 죽 따라가면, 우리의 지난 시절과 곧 다가올 미래가 언뜻언뜻 보인다. 그렇게 우리들의 삶은 이어져왔고 또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지갯빛 희망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당신의 희망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