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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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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2

니콜로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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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colo Machiavelli,Niccolo di Bernardo dei Machiavelli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자 탁월한 정치이론가. 이탈리아(피렌체)의 관료이자 외교관이자 군사 전략가였으나, 말년의 저술로 정치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에서 몰락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록은 많지 않은데, 변변치 않은 교육 환경에서 홀로 역사와 정치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시절에는 말직으로 근무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서야 80인회의 사무국의 서기에 임명되었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곧 10인군사위원회의 사무국장과 서기를 맡았다.

1492년 피렌체가 ‘위대한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사망으로 통치력 부재 상황을 맞았을 때, 마키아벨리는 공화국의 외교관으로서 국운이 풍전등화인 피렌체를 살려내려고 강대국 사이를 필사적으로 오갔고, 국제 정치의 민낯을 낱낱이 목격하며 ‘강한 군대, 강한 군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청에 사절로 파견갔다가 만난 발렌티노 공작(체사레 보르자)에게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해줄 강력한 신생군주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체사레는 맥없이 병사해버렸다. 마키아벨리는 시민군 양성을 추진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메디치 가문이 군주로 돌아오자 공화국의 일꾼이었던 죄로 감옥에 갇혔다. 이후 특별사면을 받고 나와서 새 군주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필요한 경우에는 비도덕적인 수단도 행사해서 평화를 지키는 강력한 지도자가 되어라’는 조언을 담은 『군주론』을 썼다.

1506년에 피렌체 시민군의 조직을 계획하여 이듬해 9인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어 피렌체의 정복 전쟁에서 군대를 양성하는 책임을 맡았다. 1512년에 공직을 떠난 그는 산 카스치아노 근처의 저택에서 집필하며 루첼라이 가문의 소유인 오르티 오리첼라리 정원에서 여러 문인을 만났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요청을 받아 주로 통치론에 관한 글을 써 권력자들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그는 불우한 말년을 보내다 1527년에 사망했다.

대표 저서로는 『군주론』을 포함하여 『카스트루치오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결혼한 악마 벨파고르』, 『리비우스 역사 논고』, 『만드라골라』, 『우리나라의 언어에 관한 연구 또는 대화』, 『이탈리아 10년사: 1494~1504』, 『전술론』, 『카피톨리』, 『클리치아』, 『트리시노』, 『프랑스 사정기事情記』, 『피렌체 정부 개혁론』, 『피렌체사』, 『황금 나귀』, 『후회에 대한 권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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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正仁

버클리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30여 년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0년 정년퇴임했다.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 『한국 정치의 이념과 사상』(공저), 『넘나듦 (通涉)의 정치사상』, 『한국 현대 정치사상과 박정희』, 『죽음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교차와 횡단의 정치사상』(공저) 등을 썼고, 『로마사 논고』(공역), 『군주론』(공역), 『정치와 비전 1·2·3』(공역), 『평등이란 무엇인가』(공역),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공역) 등을 한국어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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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4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92쪽 | 94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5650170

책 속으로

오랫동안 동맹을 맺고 있던 로마인과 삼니움인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경위는 다른 강대국들 사이에 일어난 전쟁의 원인처럼 일반적인 것이었다. 통상 전쟁은 우연한 계기에 의하거나 아니면 전쟁을 도발하고자 하는 강대국에 의해 계획적으로 일어난다.
로마인과 삼니움인들 사이의 갈등은 우연히 시작되었는데, 왜냐하면 연이어 시디키니 인들 및 캄파니아인들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한 삼니움니인들로서는 로마인들과 싸울 하등의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리한 사태에 몰린 캄파니아인들이 로마인과 삼니움인들의 예상을 뒤엎고 로마에 원조를 요청하는 일이 일어났다.

따라서 로마인들은 캄파니아인들이 자신들의 세력에 의탁해왔기 때문에 캄파니아인들을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되었고 또 명예를 위해서라도 전쟁을 기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로마인들은 동맹인 캄파니아인들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동맹인 삼니움인들과 싸우는 것을 당연히 거부 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캄파니아인들을 그들의 속국 또는 보호국으로서 방위하지 못하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방위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오고자 하는 모든 민족들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로마는 자신의 목표를 평화가 아니라 제국과 영광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모험을 거부할 수 없었다. 제 1차 로마-카르타고 전쟁(포에니 전쟁)도 동일한 종류의 원인에 의해 발발했는데, 이 역시 로마인들이 우연히 시칠리아에 있는 메시니아인들에 대한 보호의 임무를 떠맡았기 때문이다.

---pp. 3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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