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아서왕과 역사
2. 전설의 창조 3. 아서의 생애 4. 봉건 제도의 기사도 5. 문학의 환상적 개화 기록과 증언 / 참고 문헌 / 그림 목록 / 찾아보기 / 사진 제공 |
채계병의 다른 상품
|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소설에서 퍼시벌이 말한 바와 같이 '기사 서임권을 갖는 왕' 아서는 국가적 차원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군주의 소환에 즉각적으로 응하지만, 전쟁이 없는 평시에는 저마다 자신들의 고유한 임무를 계속 수행한다는 봉건적 이념의 책임자였따. 아서 집권기에 궁정은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였다. 기사 서임을 받을 나이가 된 젊은 사람들은 왕에게서 자신들의 무기를 직접 하사받기 위해 반드시 궁정으로 들어와야 했다. 초기 길혹물에는 아서를 색슨족이나 로마인들과 싸워서 승리를 거둔 다음 자신의 병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장군으로 자주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아서는 전설적인 성 캐멀롯에서 무술 시합을 벌이거나 연회를 주관하는 비활동적인 왕으로 전락되고 만다. 그는 여느 기사들처럼 위험한 모험에 뛰어들기에는 너무나 고귀한 인물이었다. 또흔 그는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모든 사람의 중심 역할을 해야했다. 13세기의 몇몇 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왕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특히 모든 부를 기사들과 함꼐 나누는 넉넉함과관대함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기사들은 하나 둘 궁정을 떠나버리고 만다. ---pp. 70~71 |
|
헨리 2세가 완성시킨 가공인물 아서왕을 둘러싼 기록과 문헌의 진실 추적!
이 책은‘아서왕이 실존 인물인가? 가공 인물인가? 라는 의문점에서 출발한다. 아서왕의 전설이 잉글랜드의 최초 이주민이자 스톤헨지 등을 만든 신비한 고대 문명을 일으킨 종족인 켈트족의 기원설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아서왕이 앵글로 색슨족에 맞서 싸운 켈트족의 왕이라는 설과 켈트족 신화의 신이 변형된 설이라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아서왕이 살아 숨쉬었던 장소나 전투가 벌어졌던 규모 등으로 짐작만 할 뿐 어떤 주장들이 맞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서왕의 전설에 기독교적인 전통이 가미되면서 원탁과 성배의 개념은 다른 색깔을 띠게 된다. 원탁은 처음부터‘상석이 없으며 모든 기사가 동등하다’는 상황을 상징하고 있었지만 그 후 원탁의 개념은 좀더 추상적으로 변화되었다. 원탁에 참여한다는 것은 기사 자신이 개인적인 위업과 기사도로 특징짓는 엘리트 기사에 속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켈트 신화에서 탄생된‘아서’는 헨리 2세의 정치적 의도와 기독교적인 전통이 가미되면서 ‘아서왕’으로 재탄생되었다. 수세기를 거치면서 그는 기독교의 수호자이자 기사로서의 완전무결한 모델로 우리에게 각인된것이다. 아서왕 전설의 기원을 역사적인 사실과 각 문헌을 통해서 아서왕이라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유추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구성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기록과 문헌으로 역추적해 보았던 ‘아서왕’은 당대가 낳은 희생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 기사의 낭만과 모험이 담긴 영웅 판타지의 근간, 아서왕! 보검 엑스캘리버와 원탁의 기사의 전설에 얽힌 조작된 신화와 진실속으로 떠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