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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다섯 시 급행열차… 9
2장 다른 세상에서 온 소녀… 30 3장 스벤티스키 씨네 욜카 축제… 80 4장 다가오는 운명… 113 5장 지난날이여 안녕… 158 6장 모스크바의 야영… 198 7장 여로… 248 8장 도착… 303 9장 바르이키노… 332 10장 거리에서… 367 11장 숲의 의용군… 393 12장 눈 속의 마가나무… 421 13장 여인상 있는 집 맞은편… 449 14장 다시 바르이키노에서… 500 15장 모두 끝나다… 556 16장 에필로그… 600 17장 유리 지바고의 시… 618 주요 등장인물… 666 인간은 모두 지상에 던져진 홀로가 아닌가… 674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연보… 688 |
Boris Leonidovich Pasternak
보리스 빠스쩨르나끄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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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재능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가 말했다. “지금은 온갖 그룹이니 협회니 하는 것이 유행이라네. 그들이 그렇게 무리 짓는 것을 좋아하는 건 그것이 재능이 없는 자들의 피난처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솔로비요프에 대한 귀의이든, 칸트 또는 마르크스에 대한 귀의이든 다 같은 거라네. 오직 개인만이 진리를 추구하고, 진리를 그저 적당히 사랑하는 자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법이지. 이 세상에 진정 귀의할 만한 대상이 있을까? 그것은 지극히 드물어. 내 생각에는 우리가 귀의해야 하는 건 불멸, 그걸 다른 이름으로 말하면 조금 강화된 삶, 곧 생명이지. 우리는 바로 이 불멸에 귀의해야 하네. 그리스도에게 귀의해야 한다는 뜻이야! 아, 역시 얼굴을 찡그리는군. 불행한 사람 같으니! 자네는 여전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군.”
--- p.17 “아니, 잠깐만! 내 생각을 이야기해 보겠소.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만일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는 맹수를 가두거나 없앨 수 있다면, 인류의 드높은 표상은 자기를 희생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채찍을 든 서커스의 맹수 조련사나 다름없을 것이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을 몇 세기 동안 동물보다 높여서 위로 올려놓은 것은 채찍이 아니라 음악이었다는 점에 있어요. 즉 무기가 필요 없는 진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음악의 본보기로서의 매력입니다. 지금까지는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도덕률과 그 격언이라고 생각되어 왔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리스도가 일상의 빛으로 진실을 설명하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이끌어 낸 비유로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밑바탕에 있는 건 유한한 인간들 사이의 교류는 영원한 불멸의 것이고, 생명은 상징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에는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 p.55 오, 이 어리석고 암담한 인간의 웅변보다는 이따금 자연의 침묵 속으로, 끝없이 길고 고된 노동 정적 속으로, 깊은 잠과 진정한 음악, 충실한 영혼으로 마음이 통하는 무언 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68 아직 질서가 남아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 위에 부유한 사람들이 마음대로 활개 치도록 허용되는 동안은, 대다수가 참고 견디는 것을 소수만이 누리는 이러한 횡포와 무위도식에 대한 권리가 얼마나 쉽게 진정한 개성과 독자성으로 받아들여졌던가! --- p.208 스트렐리니코프는 어린 시절부터 가장 고결하고 밝은 것을 지향해 왔다. 그는 인생을 거대한 경기장으로 여기고, 사람들은 거기서 정직하게 규칙을 지키면서 이상의 달성을 다툰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그는, 사회질서를 단순하게 생각했던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굴욕을 내면에 밀어 넣고, 언젠가 인생과 그 위선적인 어두운 원칙 사이의 심판자가 되어, 인생을 옹호하며 그것을 위해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그 환멸이 그를 비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혁명이 그에게 그 무기를 준 것이다. --- pp.299-300 내가 의무를 이행하고 사람들을 치료하며 글을 쓰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가난 또는 방황이나, 불안정 또는 빈번한 변화 때문이 아니라, 이를테면 미래의 새벽이니 새로운 세계의 건설이니 인류의 등불이니 하는 따위의 호들갑스러운 구호가 만연한 우리 시대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처음에 사람들은, 상상력이 정말 분방하고 풍부하구나!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말은 재능이 부족한 데서 오는 허풍일 뿐이다. --- p.341 어떤 사람이 기대했던 인물이 아닐 때나 그가 미리 만들어진 이미지와 다를 때는 기분이 좋아지지요. 하나의 유형에 속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종말, 그 사람에 대한 유죄판결이니까요. 만일 그를 어떤 범주 속에 넣을 수 없고, 또 그에게 전형적인 특징 같은 것이 없다면, 그가 하는 일의 반은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불멸의 씨앗을 획득한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거지요. --- p.355 삶의 개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인생 경험은 많이 쌓았을지 모르지만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그 정신, 그 영혼을 느껴 본 적이 없었던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직 자기네 손이 닿아 고상해지지 않은 것, 그래서 그들이 더 좋은 것으로 가공할 필요가 있는 원재료 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삶은 지금까지 원재료였거나 물건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삶 그 자체라는 것은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갱신하고, 영원히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기반입니다. 삶 자체는 당신과 나의 어리석은 이론을 훨씬 뛰어넘고 있는 거죠. --- p.404 그것은 세기의 질병이요, 시대의 혁명의 광기였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은 그들의 외관이나 말과는 달랐다. 양심이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구나 자신은 모든 것에 대해 죄를 지었고, 숨은 범죄자이며, 아직 적발되지 않은 사기꾼이라고 느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주 하찮은 구실만 있어도 상상력을 발휘해 자학의 향연을 벌였다. 사람들은 공상에 빠져, 공포의 작용뿐만 아니라 파멸적이고 병적인 애착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형이상학적인 무아지경 상태와, 그대로는 제동이 걸리지 않는 자책의 열정에 사로잡혀 자신을 스스로 비방 중상했다. --- p.546 자유롭지 않은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노예 상태를 이상화한다. 중세가 그러했고, 위선자들은 늘 그런 점을 이용했다. 유리 안드레예비치는 소비에트 지식인들 최고의 업적, 즉 그 무렵 말하던 대로라면 시대의 정신적 절정이라고 칭하는 정치적 신비주의를 참을 수가 없었다. 유리 안드레예비치는 논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그러한 인상을 친구들에게는 숨기고 있었다. --- p.5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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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자유, 사랑의 영원한 찬가
영화로 만들어져 대중들에게는 오마 샤리프와 줄리 크리스티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닥터 지바고》는 혁명과 이념에 희생되고 부서지는 개인의 꿈과 순수한 감성을 섬세하게 그려내 20세기 문학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문학과 영화를 넘나들며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러시아 귀족 사회에서 태어나 부족할 것 없이 자랐지만 1905년 러시아혁명과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1917년 2월 혁명과 10월 볼셰비키 혁명을 겪으면서 평생을 떠돌고 방황하며 혼란을 겪어야 했던 시인 의사 유리 지바고의 파란만장한 삶과, 열정적인 사랑의 서사를 노래한다. 전쟁과 혁명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에 대한 사랑과 동경, 아름다움을 놓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그 시대가 남긴 흔적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지식인의 전형인 유리 지바고는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분신으로도 볼 수 있다. 파스테르나크는 자신이 몸소 겪었던 혁명과 내전 무렵 시대 상황, 아내 지나이다와 연인 이빈스카야 사이를 오가며 나눈 사랑, 우랄 지방에서 보낸 경험 등을 바탕으로 한편의 장엄한 서사시이며 시대의 진실한 증언이기도 한 이 작품을 써내려갔다. 《닥터 지바고》에서 드러나는 지바고의 인생관은 자기 영혼의 독립성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는 간접적으로 혁명에 참여하지만, 철저히 아웃사이더로 행동하고 ‘참여’를 거부한다. 지바고는 혁명 또는 이념보다도 삶과 자유, 생명 그 자체를 사랑한 것이다. 《닥터 지바고》는 ‘반혁명적’이라기보다는 혁명적 이상이 어떻게 정치권력의 현실과 타협하느냐에 대한 미묘한 진단이라 할 수 있다. 전후 소설에 등장하는 관계 중에서 가장 강렬하다고 볼 수 있는 라라와 유리의 관계는 정의로운 혁명의 가능성에 대한 열정적 환상에서 비롯한다.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모두 완벽한 진실을 찾아 이루려는 투쟁이 이 작품의 원동력이다.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이상(理想)의 실패와 개인적, 정치적, 시적 원칙에 충성이 이어질 수 없는 어려움에서 이 작품의 짙은 애수가 드러난다. 예술 자유 사랑을 노래하는 파스테르나크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러시아(소련) 시인으로 모스크바의 부유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레프 톨스토이와 친구 사이였으며 톨스토이 말고도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피아니스트 스크랴빈이 그의 집을 찾아오고는 했다. 이렇게 전형적인 예술가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그는 자연스레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며 시인의 감수성을 키워나가 시인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다. 그의 시는 예술적 향기가 높고 세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시풍으로, 그 무렵 러시아 시단에 새바람을 불러왔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그의 시에 상징주의적 영향이 엿보이며, 동시대의 문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과 시적 주제가 고독한 지식인의 기분과 체험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세게 비난했다. 그의 시에는 ‘부르주아적, 병적, 염세주의적, 개인주의적’ 이라는 딱지가 덧씌워지기도 했다. 이토록 경직된 체제 아래서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중요시했던 파스테르나크는 정치를 덧없는 외부적인 현상으로 다루며, 인간의 정신과 감정, 창조력과 같은 영원한 요소들에 집중했다. 그가 창조한 지바고와 라라는 인간다운 본능과 존엄성을 지켜내고자 노력하며, 정치적 폭력에 맞서 그러한 가치들을 끝까지 지켜나간다. 개성의 자유와 내면의 영원한 가치를 좇는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은 이런 모든 것들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사랑은 인간에 대한 사랑, 예술 창조에 대한 사랑, 희생으로서의 사랑, 즉 그리스도적인 사랑이라는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며 작품 속에 짙게 배어 있는 ‘고독’의 색채와 더불어 더욱 깊게 다가온다. 파스테르나크는 인간의 덕성을 믿고 자연과 사랑을 예찬했다. 지바고는 오직 선(善)을 통해서만 최고의 선에 이를 수 있다 말한다. 강압과 억제, 공포와 획일화가 지배하는 사회의 그늘에서 시달리는 지식인의 항의와 내적 생활의 추구, 자유에 대한 끝없는 동경, 개인의 가치 존중 등이 작품 속에 오롯이 표현된 것이다. 육체를 초월 영혼을 찾는 지바고와 라라 《닥터 지바고》는 시인으로서 먼저 이름을 알렸던 파스테르나크 시의 주요 주제를 보다 폭넓게 담아냈다. 시로는 완전히 표현할 수 없었던, 보리스가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겪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드러낼 수 있는 형식으로서 한 편의 위대한 서사시이자 혁명에 의해 무너진 그리운 러시아 생활에 대한 작가의 진혼가이기도 하리라. 《닥터 지바고》는 어느 고독한 지식인의 연대기이지만 그 속에는 사회 각계각층을 대변하는 인물이 파노라마처럼 등장한다. 모든 사람은 복잡하면서도 상징적인 이야기의 한 부분을 이루며 저마다 얽히고설킨 운명으로 작품의 주제를 펼쳐나간다. 또한 러시아를 철저하게 사랑해 토착화되길 바랐던 파스테르나크는 유대인 사상을 그리스도 사상으로 전환해 그것을 러시아의 눈 내리는 광활한 겨울 땅을 무대로 넓히려 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이야기로 펼쳐지는 운명적인 만남과 우연들은 구약 이야기에 바탕을 둔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광대한 규모와 서사시적 전개는 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에 견줄만하다. 파스테르나크는 문학을 대중 교육 수단으로 다루는 것을 부정하고,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자연, 사랑, 삶, 고독을 자유스러운 형식 안에 담아냈다. 그렇기에 《닥터 지바고》는 오래전부터 이제까지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남아 있는 것이리라. 영화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시대와 국가를 뛰어넘어 여전히 진한 감동을 주는 《닥터 지바고》는 문학으로 만날 때 작가의 생각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감동 또한 한결 깊어질 것이다. 작품 속에 짙게 밴 인간에 대한 사랑, 예술창조에 대한 사랑, 희생으로서의 순수 인간적 사랑이 고독의 색채와 더불어 더욱 그윽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