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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9
제2부… 104 제3부… 198 제4부… 299 에필로그 마지막 회상… 378 영원한 예언자의 학대받은 사람들… 408 도스토옙스키 연보… 440 |
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DФёдор Михайлович Достоевски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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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비주의자가 아니다. 예감이나 점은 거의 믿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오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몇 차례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이 노인의 경우가 바로 그 예이다. 그 노인과 만났을 때, 왜 나는 그날 저녁 나에게 어떤 범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느꼈을까? 하기야 나는 그때 병에 걸려 있었다. 앓고 있을 때의 느낌은 언제나 대부분 믿을 수 없다.
--- p.10 노인은 기계적으로 뮐러를 바라보았고, 이제껏 표정 없던 그의 얼굴에 갑자기 어떤 불안의 징후가, 걱정스러운 동요가 나타났다. (…) 이 가난하고 노쇠한 노인의 겸손하고 고분고분한 서두름 속에는, 아담 이바니치를 비롯한 모든 손님이 이 일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바꿀 만큼, 연민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노인은 그 누구도 모욕할 생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거지처럼 어디서든 쫓아낼 수 있다는 비참한 처지를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 p.15 지나간 온갖 감정들이 지금도 이따금 나를 아프고 괴롭도록 흔들어 놓는다. 붓 아래에서 그러한 감정은 더 조용하고 조화로워질 것이며, 잠꼬대나 불안한 꿈 같은 느낌은 줄어들 것이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글을 쓰는 기계적인 동작만으로도 이미 바람직한 영향을 미친다. 사람을 진정시키고 냉정해지도록 만들며, 내 안에 잠든 과거의 작가적 습관을 일깨워 나의 회상과 병적인 꿈을 일, 즉 직업으로 바꾸어 놓는다. --- p.20 나는 그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렇다. 나는 고통스러웠다. 나는 진실을 알아맞히는 것이 두렵고 그것을 믿어야만 하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운명의 시간을 피하고 있었다. --- p.41 이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아주 괴롭고 견디기 힘든 공포였다. 그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히 정의할 수는 없지만 사물의 질서 속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해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이성적 근거를 비웃으며 거역할 수 없고 무시무시한, 잔인하고 가차 없는 사실로서 느닷없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 틀림없다. 이 두려움은 보통 어떤 이성적인 논거가 있더라도 더욱더 커지기만 하므로 지성이 그 순간 다른 때보다 더 명료하더라도, 이러한 감각에 저항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지성은 모든 권위를 잃고 무력해진다. 그리고 이 분열은 기다림의 불안한 고통을 증폭시킨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느낌도 어느 정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내 두려움은 그 위험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커졌다. --- p. 64 그 얼굴 표정이 진실해 보이지 않고, 언제나 계산하여 꾸며낸 것처럼 부자연스럽고 빌려 온 것 같아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으키는 나머지 진짜 표정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어떤 맹목적 확신이 들게 한다. 더 주의 깊게 보면, 사람들은 그가 언제나 쓰고 있는 저 가면 뒤에 악하고, 교활하고, 가장 이기적인 그 무엇이 숨어 있지 않나 의심하게 된다. --- p.118 이것은 우울한 이야기이다. 매우 자주, 눈에 띄지 않고 비밀스럽게 페테르부르크의 무거운 하늘 아래서, 거대한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에서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삶, 우둔한 이기주의, 서로 충돌하는 이해관계, 음울한 방종, 비밀스러운 범죄 등 무의미하고 비정상적인 삶으로 가득 찬 끔찍한 지옥 한가운데서 벌어지는 음울하고 괴로운 이야기인 것이다……. --- p.197 |
거대한 나무로 성장한 사상소설의 싹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는 언제나 두 가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더없이 학대받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신음, 그리고 남의 불행에 무관심한 이기주의자들의 비웃음……. 덧붙여 잔혹함과 상냥함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과 그런 그들을 높은 곳에서 무섭도록 냉담하게 내려다보는 오만한 사람들의 기척도 느껴진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절대로 그들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단지 선악(善惡) 관념만으로 그들을 단죄하고 내치지 않는다. 그 영혼 깊숙한 곳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은 ‘함께 살고 함께 괴로워한다’는 이른바 ‘동고(同苦)’ 정신이다. 이 소설은 제목처럼 학대받고 상처받은 불행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한 편의 애가(哀歌)이며, 도스토옙스키가 초기 작풍과 결별하고 새로운 예술 경지로 들어가기 위해, 괴롭힘 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눈물을 응집한 듯한 작품이다. 이렇게 볼 때 《학대받은 사람들》은 그의 과거의 총결산인 동시에, 앞으로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준비이다. 복잡한 플롯은 장편 형식에 대한 시도일 뿐 아니라, 나중에 거대한 나무로 성장한 사상소설의 싹을 이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층민의 비극적 삶과 고통, 갈등과 모순 《학대받은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서 손꼽히는 장편소설이다.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그의 대표적인 소설이며 근대 러시아를 뒤흔든 크나큰 사회적, 문학적 사건들, 즉 크림 전쟁과 러시아 패퇴, 농노제 폐지, 소설문학과 신문 잡지의 전성기 속에서 쓰였다. 19세기 중엽 러시아 수도 각 구역의 현실감 있는 묘사와 공간 설정을 통해 페테르부르크 상류 사회의 이중적 삶과 하층민의 고통, 그에 따른 비극적 갈등과 모순을 그리고 있다. 《학대받은 사람들》이란 제목은 그 시대 가장 사랑받는 문학적 테마를 의미한다. 죄 없이 불행해지고 밑바닥 삶으로 내몰린 하층민들, 그리고 욕심 많고 음흉하며 불행의 선동자인 부유한 상류층. 이 두 계층 즉 희생자와 범행자 사이의 갈등에서 대도시의 비참함이 야기된다. 이 작품은 잡지 〈시대〉 창간호(1861년 1월)부터 시작하여 일곱 달에 걸쳐 연재되었다. 이 소설은 비평가 도브롤류보프의 말에 따르면 당시 러시아 독자들에게 열렬히 환영받았다.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은 읽는 맛이 있으며, 거의 모든 사람이 그의 작품을 애독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절대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오로지 그의 작품만 이야기할 정도로 걸작이다. ……요컨대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은 올 한 해(1861년 현재까지)에 등장한 문학계 최고의 사건이다.……” 영혼의 고뇌, 그 처절한 몸부림 오직 돈과 쾌락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 발코프스키 공작의 악마적인 그림자를 배경으로 그 아들 알료샤, 공작에게 학대받은 이흐메네프 노부부의 딸 나타샤, 그 약혼자이며 화자로 등장하는 바냐(이반 페트로비치), 백만장자의 딸 카챠 등, 연약하지만 선의를 가진 인간들의 뒤얽힌 사랑 이야기가 본 줄거리를 이룬다. 스미스 노인과 그의 늙은 개의 죽음을 묘사한 첫머리 장면은 무척 유명하며, 이 격렬한 소용돌이 같은 긴 이야기는 공작의 남모르는 딸로서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미소녀 넬리의 비극적 결말로써 끝을 맺는다. 상당히 멜로드라마적인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바냐는 공상적인 꿈으로 가득 찬, 가난하고 병약한 작가이다. 그는 도리에 어긋나게 변덕과 악습을 일삼는 부유한 공작의 음모에 넘어간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진실하고 풍부하게 묘사된 인물은 이흐메네프 노부부이다. 스미스와 그의 딸, 그리고 손녀 넬리에 관한 일화는 지나치게 소설적이고 박진감이 부족하지만, 넬리에게도 도스토옙스키가 주장하는 시정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가혹한 주변 상황과 사악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망가진 상냥한 영혼의 고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미숙한 연애감정에 대한 고민 등은 독자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더없이 흥미로운 도스토옙스키 입문서 《학대받은 사람들》은 페테르부르크라는 음울한 도시가 풍기는 신비롭고 매력적인 분위기 속에서, 엽기적이고 비밀스러운 실마리를 하나씩 풀어가며 독자의 호기심을 마지막까지 강하게 사로잡는 드라마틱한 구성과 주요인물의 독특한 성격, 작가의 인도주의적 열정 및 엄숙한 도덕 등 도스토옙스키 예술의 근간을 이루는 여러 특징과 그 전형적인 수법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또한 작가가 문단에 갓 등단했을 때의 환경과 감회를 젊은 작가를 통해 이야기함으로써, 도스토옙스키로서는 드물게 자전적인 요소를 짙게 가미하여 그의 다른 걸작들과 달리 독특한 친근감을 준다. 이러한 친근감과 이야기의 소설적 흥미로 보아 《학대받은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위대한 예술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한 입문서로 더없이 적합한 작품이다. 도스토옙스키는 괴로움 속에서도 생명의 반짝임을 발견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작가였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생명의 반짝임을 지각할 만큼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의 인간적 언어의 보물은 이 같이 아찔하리만치 강한 행복감 속에서 태어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