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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빈터에서
하늘에 솟은 나무 바다에서 죽은 魂에게 情恨 序章·故鄕이 없는 얘기 내 고향 남쪽 바다 길고 어두운 젊은 迷路 情 인간적인 것의 파괴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인의 얼굴 한국인의 갈등과 해결 서로 외면한 삶과 죽음의 거리 떠도는, 헤매는 우리들의 넋 맺히면 풀어라 수필 생각, 인생 생각 바다에서 1 바다에서 2 바다에서 3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
金烈圭, 필명:김정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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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닐 때, 방학하여 귀성할 때마다 나는 “집에 간다”고 했다. 일부러 피한 것도 아닌데 고향이란 말을 써 본 적이 없다. 내 속에 아예 “내 고향”이란 말은 없었던 것도 같다. 그러고는 농촌이나 어느 두메에다 집을 둔 친구들이 “고향에 간다”는 말을 하는 것을 유심히 귀담아듣곤 하였다.
기차 타고 천 리. 먼 길을 달려가 P시(市)의 커다란 역사(驛舍)를 나서 보았자 서울과 달라진 게 없다. 커다란 시멘트의 ‘하꼬방’인 빌딩. 질주하는 굴뚝인 버스의 행렬(行列). 멍추처럼 쾽하니 뚫린 거리. 거기 서서 “아, 고향이여!”라고 했다 치자. 내가 정신분렬증(精神分裂症)에 걸려서 돌아왔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수많은 남들이 내 앞을 스쳐 갈 것이다. 그것이 나의 귀성도(歸省圖)다. 내가 “집에 간다”고 하지, “고향 간다”고는 하지 않은 곡절이 여기에 있을 듯하다. 나는 언제나 고향 없는 집에 돌아간 것이다. ---「序章·故鄕이 없는 얘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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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필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수필을 대표하는 주요 수필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김열규의 수필은 혼의 수필이다. 그 혼은 김열규의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넘나드는 자유의 혼이다. 그 혼은 어떤 경계에 머물지 않는다. 그 혼은 어떤 개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 혼은 그 자체로 자유롭다. 그 혼은 때로는 고향 영토를 향하기도 하며 때로는 저 너른 바다 한가운데를 향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혼은 그렇다. 우리들 존재의 기원을 향한다. 요컨대 김열규의 수필은 혼이요 자유이자 그 이상이다. 초지일관해 혼이 되어 자유가 되어 존재의 기원을 지향하는 김열규의 수필. 그의 수필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김열규의 수필이 혼의 수필이라면 그 혼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혼인가? 그 혼은 지구 세계를 뒤덮은 모던의 질서가 아닌 신화의 세계에서 비롯한다. 인간의 이성과 합리를 대리한다고 자부하는 모던을 김열규는 신뢰하지 않는다. 아니 김열규만이 아니다. 도대체 오늘날의 누가 이 모던을 예찬하며 신뢰하겠는가? 굳이 모던의 환부를 상상하는 모더니스트들의 예를 들지 않아도 될 일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제도처럼 보이는 모던은 인간의 본원적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아니, 이성과 합리가 결코 인간의 본원적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편의를 주는 모던의 질서는 인간의 비합리, 감성, 욕망의 영역을 불온하게 여기지만, 불행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싹튼다. 그렇기에 김열규의 수필은 상식처럼 보이는 모던의 질서가 과연 인간다운가를 묻는다. 또한 그의 수필은 모던의 질서가 과연 본원적 자유인가를 묻는다. 그의 수필은 모던의 질서 저 너머의 비합리, 감성, 욕망을 탐문한다. 제도로서의 모던이 간과하는 인간과 세계의 심층 구조를 김열규의 수필은 천착한다. 이런 맥락에서 김열규의 수필은 우리들이 너나없이 고향을 잃은 자들임을 환기한다. 김열규의 수필은 한국인의 수필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인이 누구인가를 묻고 이야기하는 수필이다. 그의 수필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복기한다. 그의 수필을 읽노라면 새삼스레 한국인을 새로이 알게 된다. 오늘날을 일컬어 세계화 시대, 국제화 시대라고들 한다. 까닭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묻는 일은 자칫 상고적 태도로 몰릴 수 있다. 그러나 김열규의 수필은 상고적 태도로 한국인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상고적 태도의 한국인론은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건 모던이 욕망하는 한국인론이다. 그러나 김열규의 한국인론은 그렇지 않다. 그의 수필은 신화주의적 상상력에 기대어 한국인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의 수필이 이야기하는 한국인은 신화적 한국인이라고 봐야 한다. 김열규의 시각으로 보자면, 모던이 욕망하는 한국인은 진짜 한국인이 아니다. 모던이 욕망하는 한국인은 근대 개념으로 주조된 한국인인 까닭이다. 물론 이와 같은 한국인을 온통 가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김열규가 숱한 수필에서 이야기한 한국인은 근대 개념으로서의 한국인이 아니다. 수필로 이야기하는 그의 한국인론은 그의 귀향과 함께 본격화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