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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자들의 집
역자 해설: 환멸의 미로에서 탈주를 꿈꾸다 기예르모 로살레스 연보 |
Guillermo Ros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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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바깥에는 〈보딩 홈〉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나는 이곳이 내 무덤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삶에 절망한 사람들이 흘러드는 변두리의 한 보호소. 대부분이 미친놈들이었다. 더러는 승자들의 삶을 망치지 말고 외롭게 살다 죽으라며 가족들이 버린 늙은이들도 있었다. --- p.7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잖니.」 나는 그녀를 이해한다. 여섯 달 전, 쿠바의 문화, 문학, 음악, 스포츠, 역사, 철학, 이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쳐 나와 마이애미에 온 이래, 나는 세 번이나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정치적 망명자가 아니다. 총체적 망명자다. 이따금 브라질이나 스페인 혹은 베네수엘라나 스칸디나비아 반도 같은 곳에서 태어났더라도, 그 거리, 그 항구 그리고 그 목초지로부터 탈주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잘 지낼 게야.」 고모가 말한다. --- p.8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새로 들어온 미친 여자 하나가 앉아 있다. 내 또래쯤 되는 여자다. 그녀의 몸은 삶의 무게에 잔뜩 찌들어 보이지만, 여전히 풍만한 느낌이 남아 있다. 나는 그녀 옆에 가 앉는다. 나는 주위를 살펴본다. 아무도 없다. 모두들 아침 식사 중이다. 나는 그 미친 여자 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녀의 무릎에 손을 올린다. 「그래요, 나의 천사.」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한다. 나는 손을 더 위로 움직여 그녀의 넓적다리에 이른다. 그녀는 아무 저항 없이 내가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둔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목사는 바울, 고린토, 데살로니카에 대해 설교하는 중이다. 나는 손을 더 위로 움직여 그 미친 여자의 음부에 이른다. 그곳을 꽉 움켜쥔다. 「그래요, 나의 천사.」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말한다. 「이름이 뭐죠?」 내가 묻는다. 「프란시스예요, 나의 천사.」 --- pp.78-79 「나의 천사.」 그녀가 말한다. 「공산주의였던 적이 있나요?」 「응.」 「나도요.」 둘 다 침묵한다. 이윽고 그녀가 말한다. 「초창기 시절에요.」 나는 기둥에 머리를 기댄 채 혁명의 초창기에 부르던 오래된 찬가를 작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우리는 콘라도 베니테스 여단. 우리는 혁명의 전위 부대. 그녀가 노래를 이어 부른다. 저 높이 치켜든 책으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세. 온 쿠바에서 문맹을 퇴치하세. --- pp.119-120 보딩 홈! 보딩 홈! 이 보딩 홈에 산 지도 어언 3년이 되었다. 늘 죽고 싶어 하는 1백 살쯤 된 노인네 카스타뇨는 계속 소리를 질러 대고, 계속 지독한 오줌 냄새를 풍긴다. 산송장의 귀부인 이다는 매사추세츠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언젠간 자신을 데려갈 거라는 꿈을 계속해서 꾸고 있다. 국제 정치에 정통한 미친놈 에디는 텔레비전 뉴스에 계속 매달려 있고,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야 한다며 계속 목청을 높이고 있다. 애꾸눈 영감 레예스는 유리 눈알에서 계속 고름을 흘리고 있다. 아르세니오는 계속해서 명령하고 있다. 쿠르벨로는 우리에게 착복한 돈으로 부르주아의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다. 보딩 홈! 보딩 홈! 나는 영국 시인들의 시선집을 펴고 「지옥의 격언」이라는 블레이크의 시를 읽는다. --- p.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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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윌리엄 피게라스는 쿠바에서 작가로 활동했고, 젊은 시절 쿠바 혁명에 투신했으나 카스트로의 폭정에 환멸을 느껴 미국으로 이주한 인물이다. 윌리엄은 몸과 마음이 망가져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한 지 오래며, 미국의 친척들에게도 찬밥 신세가 되어 사설 보호소인 보딩 홈에 맡겨진다. 그는 그곳에서 쿠바 이민자들의 끔찍한 생활과 미국 사회의 비참한 이면을 목격한다. 미국 사회의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들이자 어디에도 뿌리 내리지 못한 채 부유하는 표류자들. 이들의 돈을 착취하는 쿠르벨로 원장, 원장이 없는 사이 보딩 홈의 2인자를 자처하며 강간과 학대를 일삼는 아르세니오, 공산당 정부에 재산을 몰수당한 부르주아 노파 이다, 아무 데나 오줌을 갈기고 젊은이한테 얻어맞으며 생활하는 노인 레예스, 그리고 피자집에서 일하며 스스로를 노예라 부르는 미국인 룸메이트 루이……. 그러던 어느 날 프란시스라는 여자가 보딩 홈에 들어온다. 정신병을 앓는 그녀는 보딩 홈 사람들을 날카로운 스케치로 그려 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윌리엄과 프란시스는 보딩 홈에 자신들 명의로 맡겨진 돈을 찾아 두 사람만의 보금자리를 꾸릴 계획을 세운다. 암담하게만 보이던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생기를 띠며 약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의 새 출발은 보딩 홈의 주인인 쿠르벨로 원장의 탐욕과 주위 사람들의 몰이해로 좌절된다. 탈출에 실패하고 정신 병원에 입원했던 윌리엄은 프란시스를 찾으러 다시 보딩 홈에 가지만, 프란시스는 가족의 손에 이끌려 그곳을 떠나고 없다. 그녀는 메모 한 장 없이 그림들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보딩 홈의 요리사가 여느 때처럼 아침밥을 먹으라고 소리치며 소설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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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쿠바 문학의 가장 빼어난 성과로 평가되는, 기예르모 로살레스의 『표류자들의 집』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168번으로 출간되었다. 1987년 〈보딩 홈Boarding Home〉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표된 『표류자들의 집』은 쿠바 출신의 작가인 주인공 윌리엄 피게라스가 마이애미의 사설 보호소 보딩 홈에서 보낸 지리멸렬한 고통의 나날을 건조하고 간결한 필치로 그려 낸 자전적 성격의 소설이다. 쿠바 카스트로 정권의 전체주의와 아메리칸드림에 몰두한 미국 내 쿠바 이민자 사회의 무관심, 양쪽 모두에 반발한 이중의 망명자로서의 시선이 날카롭게 드러난 이 작품은 쿠바 망명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못하는 비운을 겪었다. 그러다 2003년 스페인의 출판사가 재발굴하여 마침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고 그 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011년 한국의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쿠바와 미국, 그 어느 땅에도 뿌리박기를 거부한 작가 기예르모 로살레스, 그가 생전에 남긴 단 한 권의 책 기예르모 로살레스라는 이름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1980년 카스트로 정권은 마리엘 항구를 열어, 반체제 인사를 추방함과 동시에 쿠바를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탈출을 허락했다. 로살레스도 이때 미국 마이애미로 이주한 쿠바 난민 〈마리엘리토Marielito〉다. 1946년 아바나에서 태어난 로살레스는 10대 시절부터 혁명에 투신해 농부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혁명이 달성된 후에는 기관지 「메야Mella」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젊은 시절에 발병한 정신 분열증이 악화되어 수차례 입원을 거듭하고 혁명의 변질에서 오는 환멸로 괴로워하다, 결국 미국행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일찌감치 마이애미에 정착해 있던 친척들은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로살레스를 홀대하고 마이애미의 사설 보호소 보딩 홈에 맡긴다. 그리하여 로살레스는 마이애미의 보딩 홈과 정신 병원, 호텔을 전전하게 되는데, 그가 미국에 도착한 지 7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 바로 『표류자들의 집』이다. 탈출구 없는 비극적 현실을 증언한 이 작품은 로살레스에게 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선사한다. 로살레스는 이 작품으로 미국 내에서 스페인어로 쓰인 작품에 수여하는 〈황금 문학상〉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 옥타비오 파스의 시상으로 거머쥐며, 출간과 함께 문학·예술 잡지 『마리엘Mariel』지와 인터뷰도 하게 된다. 하지만 문단의 평가와는 별개로 작품의 보급은 미흡했고 판매 결과는 참담했다. 로살레스는 그 후로도 정신 분열증을 앓으며 계속해서 글을 쓰지만, 자기 환멸에 사로잡혀 불태우거나 찢어 없애기를 반복해 그 후로 단 한 권의 책도 남기지 못한다. 결국 그는 1993년 마이애미의 어느 보딩 홈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살아 있는 동안 로살레스가 온전한 형태로 남긴 작품은 단 두 작품뿐이었다. 그중 하나가 1968년 〈아메리카의 집 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영광의 토요일, 부활의 일요일S?bado de gloria, Domingo de resurrecci?n』이었다. 이 작품은 그가 죽은 뒤 이듬해에 〈위반의 게임El juego de la viola〉이라는 제목으로 일반에 소개되었고, 『보딩 홈』은 초판이 발행된 지 16년 만에 〈표류자들의 집〉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표류자들의 집』은 열린책들이 2009년 말 펴내기 시작한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의 168번째 책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젊고 새로운 감각으로 다시 태어난 고전 시리즈의 새 이름으로, 상세한 해설과 작가 연보로 독자들의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 한편 가볍고 실용적인 사이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현대적 감각을 살렸다. 앞으로도 열린책들은 세계 문학사의 걸작들을 「열린책들 세계문학」 시리즈를 통해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낡고 먼지 쌓인 고전 읽기의 대안 불멸의 고전들이 젊고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목록 선정에서부터 경직성을 탈피한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본격 문학 거장들의 대표 걸작은 물론, 추리 문학, 환상 문학, SF 등 장르 문학의 기념비적 작품들, 그리고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한국의 고전 문학까지를 망라한다. 더 넓은 스펙트럼, 충실하고 참신한 번역 소설 문학에 국한하지 않는 넓은 문학의 스펙트럼은 시, 기행, 기록문학, 그리고 지성사의 분수령이 된 주요 인문학 저작까지 아우른다. 원전번역주의에 입각한 충실하고 참신한 번역으로 정전 텍스트를 정립하고 상세한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를 더하여 작품과 작가에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했다. 품격과 편의, 작품의 개성을 그대로 드러낸 디자인 제작도 엄정하게 ?도를 걷는다. 열린책들 세계문학은 실로 꿰매어 낱장이 떨어지지 않는 정통 사철 방식, 가벼우면서도 견고한 재질을 선택한 양장 제책으로 품격과 편의성 모두를 취했다. 작품들의 개성을 중시하여 저마다 고유한 얼굴을 갖도록 일일이 따로 디자인한 표지도 열린책들 세계문학만의 특색이다. 이 책에 대하여 무심한 세상에 맞서 기예르모 로살레스는 우리에게 이 고통스럽고 사납고 시적인 증언을 남겨 놓았다. - 「르 피가로」 로살레스의 작품은 쿠바의 전체주의라는 유산의 잔상과 함께, 마이애미의 일상적 비참함에 대한 날카롭고도 믿을 만한 묘사를 보여 준다. - 「내셔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떠올리게 하는 충격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작품. - 『퍼블리셔스 위클리』 『표류자들의 집』은 내가 읽어 본 중에 가장 슬픈 소설일 것이다. 아주 명료하게 쓰인 글이어서, 눈물이, 그것도 진짜 눈물이 페이지들에서 똑똑 흘러나온다. - 『리뷰 오브 컨템퍼러리 픽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