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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제1기 죽음은 삶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작은 종양 덩어리 / 좋은 소식은 아니야 / 항암 학교에 가다 / 이 정도니 다행이네 / 인간은 맹점을 볼 수 없다 / 유언장 작성 / 어둠 속에서 제2기 담담하게 일상을 채워가는 것이 삶에 대한 예의다 슬픔의 잿빛을 닮은 무언가 / ‘플리즈’라는 마법의 단어 / 엄마, 나의 엄마 / 순례자 / 불량품 / 지난한 검사가 시작되다 / 한 무리의 코끼리 / 벼랑 끝을 정찰하다 / 베니의 소원 / 애인 구함 / 튜머 보드 / 엄마와의 북클럽 / 자주색 집 / 마이오피아 / 앨범 제3기 내가 죽음을 준비하는 법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열다섯 가지 징조 / 화장터 / 엄마의 신발 / 붉은 악마 / 두 번째 장례식 / 흉터 / 통증 / 슬픔에 젖은 / 환상특급 / 어느 날, 방사선 치료실 / 오래 머무르고 싶어 제4기 이 삶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우울한 하루 / 파멸이란 이름의 작은 돌덩이 / 완벽한 소파 찾기 / 브라이트 스팟 / 마지막 파리 여행 / 이상한 꿈을 꾸다 / 우리의 삶은 통제된 불씨와 같다 / 모든 일이 슬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 배틀그라운드 대로에서 / 또다시 꿈을 꾸다 / 엄마의 기일 / 믿음 / 잔해더미 / 예행연습 / 죽음을 기억하라 / 종양부담 / 꼬물라 / 찬란한 시간 에필로그 |
NINA RIG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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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전화로 암이란 단어를 입에 올린 후부터 지난 며칠 동안 내게 찾아든 이 낯선 평온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남편의 두 눈에 어린 두려움을 읽으면서 어쩐지 안심이 되기도 했다. 결국 벌어졌어.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나쁜 일 말이야. 나쁜 일이 벌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우거진 숲 속에 자리한 작고 깊은 연못처럼 어쩐 일인지 내 가슴속에 아름다운 공간 하나가 생겨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좋은 소식은 아니야」중에서 당연히 다들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가 결코 오지 않을 거라는 거짓말을 믿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용기를 내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 피가 흐르고 나서야 날이 잘선 칼날에 베였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지만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칼날에 베이기 훨씬 전에 고통이 먼저 찾아든다는 걸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소파에 몸을 말고 누운 엄마는 오늘 저녁 새 어쩐지 더욱 작아진 것만 같았다. “괜찮을 거야.” 엄마는 잠에 취해 말했다. “사랑한단다.” 요즘 우리가 북클럽 모임을 마칠 때 하는 말들이다. 사랑해. 우리는 엄마를 사랑한다. 다만 이 말을 왜 이제야 서로 하게 되었을까? ---「엄마와의 북클럽」중에서 죽음이 눈앞에 찾아와도 엄마의 불같은 성격이나 유머, 반항적 기질은 여전할 터였다. 몇 주 후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너무도 엄마다운 말일 것이다. 나 정말 지랄 맞게 뚱뚱하네. 그렇지만 요즘 엄마는 내면의 강인함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고, 그것은 바로 내가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했다. ---「자주색 집」중에서 그 어떤 것도 미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지금은 제대로 된 소파를, 질 좋은 가죽에 뼈대가 튼튼하고 자연과 생명력 을 느낄 수 있는 소파를 찾는 데만 집중하고자 한다. 한때나마 살아 있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새기게 해주고, 우리의 손길로 온기가 빚어지고 우리의 부재로 식어가는 소파를 찾아야 한다. 또 하나, 우리 가족 모두를 수용할 만큼 크고 널찍해야 한다. 우리가 나눌 사랑과 우리에게 닥칠 절망, 서로 몸을 부비며 견뎌낼 위로의 시간까지, 앞으로 다가올 미래 속에서 우리를 지탱해줄 만큼 커야 한다. 죽음과 슬픔까지도 담아낼 수 있도록. ---「완벽한 소파 찾기」중에서 숨을 쉬는 게 어렵고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나는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 차림으로 데크와 이어진 계단에 앉아 볕을 쪼였다. 눈앞에는 삶이, 찬란한 시간이 놓여 있었다.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몽테뉴가 속삭였다. ---「찬란한 시간」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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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삶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야기는 ‘작은 종양’이라는 의사의 말과 함께 시작한다. 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시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하게 가정을 꾸려가며 살던 니나 리그스는 2015년 유방암 검사 결과를 전해 듣고 이 나쁜 소식을 어떻게 하면 아무렇지 않게 가족들에게 전할까 고민에 빠진다. 그러고는 엄마의 몸에서 암이 발견되었던 몇 해 전 그날을 떠올린다. 친할아버지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셨고 친척들 가운데 몇 명이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만큼 그녀의 집안은 유방암 가족력이 있었다. 불길한 집안 내력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결국 유방암 판정을 받자 조금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불확실한 것이 많다는 사실뿐이다.”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 6개월. 그녀 앞에 놓인 삶의 시간이었다. 초반에는 치료가 가능할 것처럼 보였지만 이 공격적인 암은 그녀의 삶을 빠르게 잠식해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의 실체는 그녀의 삶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어린 아들이 당뇨병 진단을 받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리고 다발성 골수종 투병을 해온 엄마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다. 담담하게 일상을 채워가는 것, 그것이 삶에 대한 예의다 니나 리그스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은 채 한 발씩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녀는 “나는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완벽한 날 한가로이 여유를 누리다가, 어느 순간 따스한 바람 속에서, 마른 잔디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 속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속에서 한겨울 추위와 슬픔을 느끼는 경험을 했다.”라며 시종일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표현했다. 계속되는 항암화학요법과 부작용에 힘들어 하는 중에도, 사전의료 의향서와 유언장을 작성할 때도, 유방절제술을 받았을 때도,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져 괴로운 순간마저도 재치 넘치는 유머와 삶에 대한 애정으로 이 모든 것을 마주했다. 저자는 에머슨과 철학자 몽테뉴의 글에서 자신만의 위안을 찾았다. 에머슨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자연 속에서, 그리고 우리 일상이라는 보다 작은 세계에서 아름다움과 마법을 찾아나갔다.”라고 생전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몽테뉴 역시 삶이란 죽음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며 저자는 책 속에서 이렇게 적었다. “내가 양배추를 심고 있을 때, 죽음에 대해 전혀 떠올리지 않고 있을 때, 내가 죽은 후 남겨질 미완의 정원마저 걱정할 새 없이 죽음이 내게 찾아오길 바란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로 삶을 채워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 “너무 두려워 말고 이 책을 읽으세요.” 2017년 2월, 니나 리그스가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에 한 말이다. 그녀는 시한부 삶 속에서도 지나친 감상이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솔직하고 담백한 어조로 아이들의 할로윈 의상과 새로 산 소파 등의 일상 이야기부터 랄프 왈도 에머슨과 몽테뉴의 에세이까지 아우르고 있다. 유방암 투병으로 고통을 겪고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 같은 감정에 얽매이지 않는다. 암과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닌, 암에도 굴하지 않고 삶을 사랑하는 태도를 잃지 않는 진정한 승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니나 리그스에게 닥친 불치병과 죽음의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지만, 결국 이 책은 비극적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사랑의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허락된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로 삶을 채워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