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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은 한 언론사와의 한 인터뷰에서 “왜 만화가가 되었는가?”란 질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대답한 바 있다. 실제 김성환은 ‘돈을 벌기 위해’ 만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김성환은 1949년 18세의 고등학생 신분으로 ≪연합신문≫(1949.1.22, 양우정 창간)에 멍텅구리 를 연재하며 만화가로 데뷔했다. 이를 통해 학비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멍텅구리 는 14회까지 연재됐는데, 당시 다른 작가의 만화가 7∼8회 연재되다 중단되었던 것에 비추어 보면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후 김성환은 여러 잡지에 만화를 실을 기회를 얻게 된다.
‘서민에 의한, 서민을 위한’ 중에서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책상이 없던 형편이라 김성환은 방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렸다. 1949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혼자 연습해 그린 만화를 신문사에 보냈다. 학비를 벌어 볼 생각이었다. 이는 ≪연합신문≫에 실렸고, 이 일로 김성환은 만화가로 데뷔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18세’라는 어린 나이였다. 곧 김성환은 다양한 잡지에 만화를 실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 고바우 영감 의 탄생’ 중에서 고바우 영감 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동아일보≫에 연재되던 초기 1년여 동안은 생활 주변 소재를 담은 팬터마임 형식의 유머와 가벼운 세태 풍자를 담았다. 코믹 스트립의 네 컷 형식을 취한 만화로서 이는 당연한 것이었다. ≪동아일보≫ 1955년 2월 1일 자에 실린 첫 번째 만화는 고바우 영감이 추운 날씨에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화롯불을 쬐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곧 고바우 영감이 밖으로 나가 비닐하우스로 들어가고, 그 안에 있던 화분을 모두 밖으로 꺼내 놓고 하우스 안에 누워 햇볕을 쬐는 내용을 담아 웃음을 자아냈다. ‘풍자와 해학의 이중주’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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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은 시대의 권력 앞에 재치 있고 뚝심 있게 맞선 만화가다. 대표작 『고바우 영감』은 50년간 총 1만4139회가 연재되면서 한국 언론 사상 최장수 연재만화로 기록되고 있다. 김성환은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 현장을 예리한 감각으로 읽어 냈고, 풍자와 해학의 기법을 이용해 현대사의 이면을 고발했다. 『고바우 영감』은 만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한국 특유의 네 컷 시사만화 전통을 출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절묘하게 구사하는 은유의 화법 속에는 지금도 주목해야 할, 삶과 시대에 대한 통찰이 가득하다.
김성환 『고바우 영감』이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권위주의적 정부를 비판하면서 시사성을 띠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겁고 어두운 권력 앞에서도 특유의 재치와 유머 감각을 동원했다. 늘 재치와 유머감각을 이용해 복잡한 사회·정치적 사안들을 네 컷 안에 간결하게 응축했고, 직설적인 서술의 방식이 아니라 은유와 상징을 이용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가 활용하는 은유와 상징은 언론 탄압을 피하기 위한 영리한 전략이기도 했고, 만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이는 결정적 기제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