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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명랑만화의 지금을 대표하는 생존자
02 만화가 윤승운의 삶 03 명랑만화 작가로 본격 시작 04 말썽꾸러기의 시대적 부응, 요철 발명왕 05 맹꽁이 서당 , 만화를 에듀테인먼트로 06 서툰 그림, 꾸준한 그림 07 끊임없이 공부하는 만화가 08 평생의 라이벌이자 친구, 신문수와 윤승운 09 창작만화가회 그리고 심수회 10 윤승운의 어린이, 어린이만화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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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운은 기술적으로 원숙한 다른 작가들에 비해 완성도를 갖추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한 천재 같은 재능으로 그려내는 이들에 비해 자기 그림을 서툴다 여겼다. 『요철 발명왕』 저자 서문에서는 이 투고 시기를 두고 “그냥 재미 삼아 한 것으로, 얼마쯤 하다가 손을 떼려 했다. 바라던 바와는 달리 만화가로서 성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프로 만화가가 되겠다는 야무진 생각은 못해봤다”고 회고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야말로 ‘꾸준히’ 그리며 10년을 보냈다.
‘만화가 윤승운의 삶’ 중에서 재밌는 건 이 한심이와 꼴찌 두 캐릭터가 실제 인물을 모델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윤승운이 초등학교 시절 동네 목욕탕에서 봤던 사내아이들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무렵, 열한 살이 된 윤승운은 혼자 들른 목욕탕에서 먼저 와 목욕을 하고 있는 또래 남자애들 둘을 보았다고 한다. 한데 이 둘의 장난이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훗날 『두심이 표류기』 개정판의 저자 서문에서 윤승운은 그렇게 심하게 장난치는 아이들은 처음 봤다면서 “두 녀석은 나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탕 속의 물을 퍼내 상대방에게 뿌리며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었다”고 회고한다. ‘명랑만화 작가로 본격 시작’ 중에서 요철이와 조수 격인 맹물이는 언제나 황당무계하고 엉뚱한 발명으로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악동이다. 악동 둘이 사고를 치고 친구와 아버지를 비롯해 주변 사람이 내내 골탕을 먹는 구도는 윤승운표 명랑만화의 틀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요철 발명왕』은 그 시기에 그려 보던 근미래의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을 어린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반영해 그리고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말썽꾸러기의 시대적 부응, 『요철 발명왕』’ 중에서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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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운은 어린이들의 웃음을 책임지던 명랑만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명랑만화의 인기가 사그라든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팔려 나가는 스테디셀러 맹꽁이 서당이 그의 대표작이다. 스스로 서툰 그림, 못 그리는 그림이라며 늘 겸손해 하지만, 윤승운은 그 누구보다 명랑만화에 맞는 표현을 연구하는 작가였다. 어린이 만화 작가로서 “만화는 아이들이 보는 것”이라는 굳은 신념으로 시대 흐름에 부응하는 소재를 차용하고 변화에 대응해 내며 시대와 세대 구분을 뛰어넘어 사랑받았다.
윤승운 요철 발명왕(1975)과 맹꽁이 서당(1982)으로 명랑만화 전성기에 절정의 인기를 누린 작가다. 지금까지 이름이 회자되는 까닭은 단지 그 시기에 작품을 크게 흥행시켰기 때문만이 아니라 명랑만화 작가로서 끊임없이 자기 만화와 자기 장르에 보여 준 자세 때문이다. 그가 정의하는 명랑만화는 “폭소를 일으키는 만화”다. 그의 만화는 기본을 충실히 살리면서 한편으로는 단순하거나 평면적이지 않기 위한 온갖 장치들로 가득하다. |